현재 각급 학교에서는 겨울방학 기간이다. 학년별 정규 교육과정도 거의 마무리된 시점이라 학생들이 학습 부담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을 즐길 기회이기도 하다. 마음껏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할 수도 있고, 가족들과 박물관 견학이나 여행을 갈 수도 있으며, 고등학생이라면 아르바이트를 통해 경제활동에 참여해 볼 수도 있다. 방학은 학생들이 학기 중에는 쉽게 할 수 없었던 활동을 함으로써 내면을 살찌우고, 체력을 키울 수 있으며, 체험을 통해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방학을 방학답게 잘 보내고 있을까.
여전히 학습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과 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오랜 세월 학생들과 함께했던 퇴직 교사로서, 자녀를 키워 본 학부모 경험자로서 학생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방학을 이용해 부족한 교과 학습을 보충하고 신학기에 배울 새로운 교과 내용을 예습하는 것은 학생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 학습 흥미를 느끼면서, 자기 주도적으로 하는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자기 발전을 가져오므로 칭찬하고 격려해야 한다. 다만 학생 자신의 학습 의욕보다는 학부모의 의사에 따라, 교과 학습에 건성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매년 증가하는 사교육비... 학생이 원하나, 학부모가 원하나
한국 학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둘밖에 없는 자녀가 성공해서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 높은 교육열로 나타나는 것이다. 영유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아들딸을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진학시키기 위해 많은 교육비를 들이면서 자녀 교육에 공을 들인다.
지방대학보다 '인서울', '인서울' 중에서도 SKY, 요즘은 SKY보다 의학 계열로 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런 자녀에 대한 열망이 공교육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아 사교육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매년 증가하여 2022년도에는 25조 9538억 원이나 된다. (2023년도 통계자료는 올라오지 않음). 과히 천문학적인 수치다. 퇴직교사인 나는, 공교육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학부모들의 많은 사교육비 지출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공교육이 제대로 역할을 못해서 학부모들의 사교육 의존도가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일정 부분 그런 측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학교에서의 학습만으로도 자녀의 진로가 희망적으로 보인다면 굳이 비싼 비용을 치르면서 사교육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육은 사교육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사교육은 학생들의 학습 수요만 충족시키면 되지만, 공교육은 학생들의 지식교육뿐만 아니라 인성교육까지 교육 전반을 포괄한다. 내가 은퇴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교육 목표도 '바른 인성과 지성을 갖춘 미래 인재 육성'이었다.
현행 대학입시 제도와 학교 환경에서 자녀의 진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학부모들의 기대를 학교의 공교육만으로 충족시키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공교육이 사교육의 수요를 온전히 학교 안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고 선생님들이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정규 수업 시간에는 교육과정에 따른 수업을 하고, 방과후학교 수업에서는 입시 대비 교과 수업이나 예체능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또한 자습실이 마련되어 있어 방학이나 야간에도 얼마든지 자율학습이 가능하다. 학생들이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학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주객전도의 상황
그렇다고 사교육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학습 내용이나 예체능 과목은 사교육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교육이 공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면 좋으련만, 작금의 상황은 어떤가. 주객이 전도되어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학부모들도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싼 사교육비를 충당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학부모들이 자녀의 입장에서 좀 더 심사숙고해 주기를 바라고 싶다.
나의 교직 경험에 의하면 자녀가 원해서 사교육을 받기보다 학부모의 판단에 따라 사교육을 받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다시 말하면, 자녀의 학습 필요가 아니라 학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불안 심리나 기대 심리가 크게 작용하여 사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학습 스트레스가 심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라고 한다. 심지어 학업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아이도 있지 않은가.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학업 성적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도 나타나는 효과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고1 때 교과성적 등급이 대체로 큰 변동 없이 고3까지 이어진다. 사교육을 받아 상위 등급으로 올리려고 해도 한계가 있으며,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꾸준히 공부하는 학생은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혹 예외적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의 크게 오르는 학생이 있기는 하다. 눈에 띄게 학업 성적이 좋아져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제자가 있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아 그의 사정을 잘 안다.
그 제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성적이 중간 정도 되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2학년 때부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가르치는 사회 과목에 두각을 나타내서 교내에서 마주칠 때마다 격려해 주었다. 1학년 때와 달리 성적이 오르는 이유를 물으니 꿈이 생겼다는 것이다. 법조인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하다 보니 학업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끝내 흥미를 느끼지 못한 수학은 포기를 했지만, 인문계열 학생으로서 사회와 국어 과목의 성적은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렸고, 지방대학 법학과에 진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사법고시에 응시하여 1차는 합격하고, 사법고시가 폐지되는 바람에 2차는 제대로 치러보지 못했지만, 모교의 로스쿨에 진학해서 역시 수석으로 졸업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은 서울의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로서 활동하고 있는데,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꿈이다. 어떤 꿈을 꾸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행동 방향은 달라진다. 사교육을 받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그 꿈이 무엇인지부터 자녀들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아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개성과 적성이 있고, 재능이 있다.
그 꿈이 무엇이든 아이들의 꿈을 지지하고 키워주는 방향으로 도와주면 좋겠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들어봄으로써 학습 동기를 찾아보고 꿈을 이루는 과정을 탐색하여 자녀에게 학업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이 마지못해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행복한 겨울방학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