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정치야!(Stupid, It's the politics)"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19일(현지 시각)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 문구였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를 패러디해 한국 정치권의 행태를 비판했다.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4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뒤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김동연 지사는 이날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세상 돌아가는 거, 경제 문제, 민생 문제, 국제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이 고민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며 무거운 심경을 토로했다.
김동연 지사는 지난 20일(현지 시각) SNS에 올린 글을 통해서도 "여러 부문에서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역주행하고 있다. 잘못된 경제정책, 거꾸로 가는 기후변화 대응. 불안한 외교 노선, 위협받는 한반도 평화, 팽개쳐진 민생, 거기에 더해 나라는 쪼개져 싸우고 있다"면서 "정치가 경제를 흔들고, 정치가 경제를 골병들게 하고 있다. '폴리코노미(Policonomy)' 딱 지금 우리의 모습이고,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다"라고 성토했다. '폴리코노미'는 정치(Politics)와 경제(Economy)의 합성어로, 경제가 정치에 휩쓸려가는 현상을 말한다.
앞서 김동연 지사는 SNS 라이브 방송에서 "세계경제포럼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도전과제가 필요할지를 알 유익한 기회였고 네트워킹의 가장 큰 장이었다"면서 "세계는 국제정치, 지정학적 위험 요인, 교역 감소, 협력을 고민하고, 반도체 칩 전쟁, 생산형 AI와 신재생에너지 활용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준비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출장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지사는 이어 "지금 역주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많은 부분을 정주행으로 바꾸면서 속도를 내고,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좋은 토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면서도 "마음이 무겁다"라고 세계경제포럼 참가 소회를 밝혔다.
김동연 지사는 7박 9일간의 해외 출장 기간 총 4차례에 걸쳐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세계경제포럼에서 얻은 성과와 만난 인사들, 느꼈던 점 등을 도민에게 직접 알리는 등 적극적인 소통에 나섰다. 지난 13일 해외 출장에 나선 김 지사는 세계경제포럼 참가에 이어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뒤, 21일 귀국한다.
세계 경제지도자, 유니콘 기업 CEO 동시에 만나 교류... 샘 올트먼과도 협력 논의
세계경제포럼은 세계의 저명한 기업인·경제학자·정치인 등이 모여 경제문제에 관해 토론하고 국제적 실천 과제를 모색하는 최대의 브레인스토밍 회의다. '세계경제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권위와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초청된 인사들만 참석할 수 있다. 김동연 지사는 국내 지방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올해 포럼에는 국가원수급 60명, 장관급 370명 등 역대 최대 규모인 3천 명 이상의 세계적 인사가 참석했다.
김동연 지사는 포럼에서 보르게 브렌데 세계경제포럼 이사장, 압둘라 빈 투크 알 마리 아랍에미리트(UAE) 경제부 장관, 요하임 나겔 독일연방은행 총재,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브라이언 캠프 미국 조지아주지사, 척 로빈스 시스코 시스템즈 회장,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 등 50여 명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 분에 걸쳐 환담했다.
경기도 측은 "김동연 지사의 표현대로 전 세계 정상급 인사들이 한 공간에 모인 '물 반, 고기 반' 같은 황금어장 속에서 경기도와 대한민국 미래에 도움을 줄 인사들과 교류하고, 토론하며 관계를 맺었다"며 "일일이 찾아가며 만나기에는 불가능한 인사들이고, 숫자"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측은 김동연 지사의 세계경제포럼 참가 중 가장 큰 성과로 세계경제지도자모임(IGWEL)에 참석해 경제 현안에 대한 논의와 교류 기회를 얻었다는 점을 꼽았다. 김 지사는 주요국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국제기구 대표 등 초청된 정상급 인사만 참석할 수 있는 세계경제지도자모임 경제 세션에 참가했는데, 이번 세계경제포럼에 참가한 전 세계 지방정부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초청을 받은 한국 인사였다.
김 지사는 회의 참가 직후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고 매우 인상적이었다. 현재 한국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에 너무 동떨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김동연 지사는 전 세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이상이고 창업한 지 10년 이하인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 대표자 90여 명이 모인 '이노베이터 커뮤니티' 간담회에도 참가했다. 김 지사는 이날 참가자 가운데 유일한 정부 인사로, 유니콘 기업 CEO들과 인사를 나누고 경기도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세계경제포럼은 크게 세계경제지도자모임과 '이노베이터 커뮤니티' 간담회로 나뉘는데, 김동연 지사는 포럼 참가자 중 유일하게 두 모임에 동시에 초청을 받아 참석한 인사가 됐다.
김동연 지사는 또 유니콘 기업 대표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챗GPT 개발자로 유명한 샘 올트먼(Sam Altman) 오픈AI CEO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향후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경기도와 혁신가들' 특별 세션 열려... 세계적 스타트업에 경기도 투자 요청
세계경제포럼 측이 김동연 지사를 위해서 예정에 없던 유니콘 기업 특별 세션을 만든 것도 눈길을 끌었다.
김동연 지사는 '경기도와 혁신가들(Gyeonggi and the Innovator)'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특별 세션에 중재자(모더레이터)로 참여해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경제와 첨단산업의 중심"이라며 경기도에 대한 투자를 요청했다.
김 지사는 "한국의 실리콘밸리인 판교테크노밸리를 중심으로 20개 이상 지역거점에 66만㎡(20만 평)의 창업 공간을 조성하는 '판교+20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창업하거나, 투자할 수 있는 유망한 벤처스타트업이나 좋은 협력 파트너를 찾는다면 경기도가 최적의 장소"라고 강조했다.
세션에 참가한 스타트업 대표들은 "경기도 스타트업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첨단모빌리티산업과 관련해 한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 등의 긍정적 반응을 보여 향후 투자유치 가능성을 높였다.
이 밖에도 김동연 지사는 글로벌 자동차 부품기업인 보그워너사의 폴 파렐(Paul Farrell) 부사장과 만나 경기도에 대한 투자유치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세계적 과학기술기업 독일 머크 그룹의 카이 베크만(Kai Beckmann) 일렉트로닉스 회장(CEO)과도 만나 전자재료 부문의 경기도 투자를 요청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아시아 정상급 인사, 국제기구 수장들과도 교류 관계 확대
김동연 지사는 포럼 동안 아시아 지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대표자들을 만나며 국제교류 강화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먼저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대통령과 조세핀 테오 통신정보부 장관을 만나 "싱가포르 대학에 경기도 청년을 보내고 싶다"며 교류 강화를 제안해 호응을 얻었다.
김 지사는 또 중국 랴오닝성 리러청 성장과 재회해 신뢰를 다졌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경기도-랴오닝성 자매결연 30주년 기념식을 하고 경제·관광·문화·인적교류 분야의 전면적 협력 강화를 약속하는 '자매결연 30주년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리러청 성장은 "이번 다보스 포럼의 주제가 신뢰 회복인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서 좋다"고 기쁨을 표시했다.
에크나스 신데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총리와도 만나 양 지역 우호협력 강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신데 총리는 김동연 지사에게 세계적 반도체 기업과 협력할 수 있도록 경기도의 도움을 요청했으며 김 지사는 협력 약속과 함께 에크나스 신데 총리의 경기도 방문도 제안했다.
김 지사는 또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과도 만나 국제에너지기구와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했다. 비롤 총장은 "세계경제포럼 에너지자문위원장으로서 내년 포럼에 김 지사를 강연자로 초청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앞서 김동연 지사는 세계경제포럼과 경기도에 4차산업혁명센터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경기도는 오는 5월 '인간과 지구를 위한 한국혁신센터'라는 이름으로 4차산업혁명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4차산업혁명센터는 세계경제포럼에서 각 국가 또는 지역과 협의해 설립하는 지역협력 거점 기구로 전 세계 18개가 있다. 경기도는 민간 부문뿐 아니라 대학 등 학계와 협력해 기후변화, 스마트 제조업, 스타트업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보라색 리본' 달고 해외 출장길 오른 김동연
한편 김동연 지사는 이번 해외 출장 중에도 국내 주요 현안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선 김동연 지사는 지난 13일 출장길에 오르면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를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 배지를 착용했다. 지난 9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8일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스위스 현지에서 접한 김 지사는 SNS를 통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을 거부'하십시오"라고 촉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정책에 대해서도 "왜 기업이 이미 했던 것, 앞으로 20년 동안 하는 것을 합쳐서 재탕, 삼탕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원전은 핵심"이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원전은 'RE100'의 신재생에너지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세계 트렌드나 이 부분의 내용을 잘 모르는 무식한 얘기"라고 직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