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현장 달려간 尹·韓, 직접대화로 갈등 '조기 진화' 공감대 (연합뉴스)
尹대통령·한동훈 만났다…서천시장 화재 현장 함께 점검 (중앙일보)
尹·한동훈, 서천시장 화재현장 함께 점검…갈등 봉합 되나 (TV조선)
윤 대통령, 한동훈과 나란히 서천 화재 현장 방문 (JTBC)
정면충돌 이틀만에…尹·한동훈 서천 화재현장서 만났다(뉴스1)
23일 오후 포털사이트에서 '서천 화재 현장'으로 뉴스를 검색한 결과, 많은 언론들이 화재 현장의 모습이나 피해 상인들의 목소리보다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만남을 더 중요하게 다룬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제목만 훑어보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서천에서 만났다'가 핵심 주제처럼 보인다.
야당을 비롯해 보수 논객, 일부 누리꾼들까지 '한 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갈등 봉합을 꼭 화재 현장에서 해야만 했느냐'며 질타했지만, 이를 지적하거나 언급한 언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분노하는 상인들'이 사라졌다
이날 <연합뉴스>는 서천 화재 현장에서 항의하는 피해 상인들의 사진을 '포토 기사'로 보도했다. 해당 기사가 네이버 뉴스에 최초 게재된 오후 3시 26분에는 '윤석열 대통령에 분노하는 피해 상인들'이라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오후 3시 55분에 확인했을 땐 '항의하는 피해 상인들'로 바뀌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분노하는'이라는 문장이 삭제된 것이다.
<연합뉴스> 사진기사 제목은 바뀌었지만, 서천시장 상인들이 분노하고 항의한 대상은 '윤석열 대통령'이 맞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상인들은 화재가 발생한 전날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화재 현장에서 밤을 새웠다. 상인들은 오전 7시쯤 현장에 도착한 김태흠 충남지사가 "오늘 윤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께서 여러분의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방문 예정"이라고 하자, 이 말만 믿고 윤 대통령을 기다렸다. 상인들은 2층에서 기다렸지만, 윤 대통령은 1층에만 머물다가 돌아갔고 결국 상인들은 윤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 밤을 새운 피곤한 몸을 끌고 오후 1시 30분까지 윤 대통령을 기다렸던 상인들은 "밤을 새우고 아침부터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냥 갔다"면서 "상인들을 만나지 않으려면 여길 뭐 하러 왔나. 불구경하러 왔냐"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항의하는 피해 상인들'이라는 제목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피해 상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고자 했다면 '대통령에 분노하는'이라는 문장을 굳이 빼야 했는지 의문이다.
부적절한 언론의 서천 화재 현장 보도
이외에도 관련 언론 보도 중 몇 건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의 <화재현장 달려간 尹·韓, 직접대화로 갈등 '조기 진화' 공감대>라는 제목에 담긴 '조기 진화'라는 말은 화재라는 재난 상황에 빗대 두 사람의 갈등을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일보>는 <尹이 입은 점퍼, 韓과 특검때 함께 입던 패딩이었다>는 서천 화재 현장을 방문한 윤 대통령의 패딩을 다루면서 '한 위원장과 함께 특검에서 활동하며 즐겨 입었던 옷'임을 강조했다. 설 대목을 앞두고 화재 피해를 당해 망연자실한 상인들이 다수 존재함에도 피해 현장보다 '대통령의 패션'이라는 가십성 주제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이 기사 또한 문제적 보도란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의 <한동훈 "열차에 자리 있습니까"… 윤석열 "같이 올라가자>에는 "강추위에 눈바람이 거세 현장 경찰 인력도 우산을 썼지만, 한 위원장은 우산을 쓰지 않은 채 윤 대통령을 기다렸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대체 이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한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현장의 생생함을 스케치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시장 점포 대부분이 불탄 상황에 한동훈 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만남에 강한 서사를 부여하는 듯한 문장이 과연 적절했을까.
지난 22일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불참이 '감기 기운'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국민과 약속한 행사에 대해 30분 전에 불참을 통보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대통령이 불과 하루만인 23일에는 새벽부터 '화재 진압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폭설과 한파를 무릅쓰고 직접 서천시장까지 갔다. 전날과는 너무 다른 행보였지만 이를 주요하게 지적하는 보도는 찾아 보기 어려웠다.
21일부터 시작된 윤석열-한동훈 파열음은 정치적으로 보면 굉장한 뉴스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만나는 그림 또한 언론들 입장에선 중요한 사안으로 판단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어제 현장은 두 사람의 만남보단 화재 현장 상인들의 피해와 목소리에 집중했어야 했다. 만약 두 사람의 행보를 전하는 것에 뉴스 가치를 더 부여했더라도, 그 장소가 왜 화재 현장이었는지는 지적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은 장소에 대한 지적은 물론 윤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피해 상인들의 분노의 목소리 또한 외면했다.
사실 이날 현장에서 부적적했다고 비판 받는 장면은 또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서천 화재 현장에서 대통령의 말에 박수를 치는 모습이 부적절했다"면서 "상인들을 위로하려는 방문이 아닌 정치적 목적을 위한 쇼나 사진 촬영용"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이 갈등을 봉합하려고 만날 순 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서천 화재 현장이어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두 사람은 물론 언론 또한 잘못된 장소에서의 만남이었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동시에 피해 상인들의 절규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