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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군사도발 및 한국의 강력한 맞대응 의지 천명과 함께 역내 긴장이 점차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다루는 언론 보도를 보다보면 가장 빈번히 언급되는 표현 중 하나가 '억제 강화' (예컨대, 대북 억제 강화, 확장 억제 강화 등)인데, 이는 현 정부의 공세적인 대북 정책 기조를 분명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사전적으로 억제란 상대방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단념시키는 것을 뜻한다. 국제정치에서 보통 군사적인 의미로 자주 쓰이는 억제 개념은, 상대국이 애초부터 무력 도발을 할 수 없도록 보복 위협을 확실히 한다던지, 상대국이 도발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대이익을 최소화시키는 일련의 기제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억제 '강화'라는 표현에서 '억제'라는 것이 다다익선 (多多益善)이라는 뉘앙스를 전달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단순히 외견상으로는 무기를 더 많이 배치하고, 군사 위협에 보복 위협으로 맞불을 놓는 것이 국민으로 하여금 마치 안보 불안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억제의 성공이라는 것은 측정하기 매우 어려운데 그 이유는 한 국가가 전쟁 및 무력 충돌을 피하려는 동기는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사적 억제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전쟁이나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 군사적 억제는 실패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억제, 특히 상호위협에만 기댄 억제는 공포의 균형이 우리를 어떻게든 보호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기초해 있는 불완전한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억제가 다다익선이 아닌 또 다른 이유는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다. 만약 남북모두 사실은 전쟁을 할 계획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지금 주고받는 말폭탄과 군사 태세 강화는 단순한 무력의 과시일 것이다. 그럼에도 막을 수 없는 건 오판과 오산 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충돌 및 확전이다. 역사적인 예를 보면, 1983년 미국-나토의 에이블 아처 훈련(Exercise Able Archer) 중 정보판단 오류와 지도자의 편견으로 소련과의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었고, 이는 억제가 얼마나 인간의 잘못된 판단 앞에 무색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한반도에는 남북 연락 채널이 단절되어 상호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유사시에 서로의 진짜 의중을 파악하고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의 반응 하나에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면 국지전에서 전면전, 전면전에서 핵 사용 위협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북한 해안포 사격 뉴스 시청하는 시민들 북한의 해안포 사격으로 서해 최북단 백령도와 연평도에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5일 오후 인천 중구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북한 해안포 사격 뉴스 시청하는 시민들북한의 해안포 사격으로 서해 최북단 백령도와 연평도에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5일 오후 인천 중구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기에서 우리에게 함의점을 줄 수 있는 글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서 2023년 11월에 발간한 < 타이완과 억제의 진정한 원천 Taiwan and the True Sources of Deterrence: Why America Must Reassure, Not Just Threaten, China >인데, 이 글의 골자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간 억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위협(threat)만이 아니라 보장(assurance)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장이란 '위협은 상대방의 행동에 따라 철회될 수도 있고, 강화될 수도 있다'라는 즉, '위협은 완전히 조건적일 것이다'라는 의사를 전달할 때 성립된다. 군사적 위협뿐만 아니라 보장 제공은 상대국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상대국이 일방적으로 파괴적인 해결책에만 집착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예컨대 효율적인 억제란,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쏜다'라는 위협만이 아니라 '그대로 멈춘다면 쏘지 않겠다'라는 보장을 동반했을 때 성립되는 것이라고 이 글의 저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는 어떨까? 앞서 밝힌 위협과 보장의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과 북한은 말 그대로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쏜다'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지금 무력 위협을 멈춘다면, 나도 멈출 것이고 외교적이고 평화적인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라는 의지를 어느 한 쪽이라도 먼저 전달하는 보장의 기류이다. 또한 이것이 지난 4-5년간 부재했던 상호 신뢰 재구축의 불씨를 지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첫 단락에서 언급했던 억제의 목표를 잘 생각해야 할 때이다. 우리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목격한 것처럼, 전쟁은 죽음과 상처만 남기는 파국일 뿐이다. 억제는 전쟁을 막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수단에 집착하느라 본질적인 목표를 흐리는 것은 크나큰 모험임과 동시에 재앙이다. 억제 자체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위협만으로 점철된 억제는 다다익선이 아닐 뿐더러, 안보 위협을 해소할 만병통치약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며 이 글을 마친다. 

#억제#평화#한반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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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였고, 동북아시아 안보에 대한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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