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항에 써있는 '준용한다'라는 용어를 準用이 아닌, 遵用으로 읽거나 適用으로 해석해 버리고 실무에 쓰여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엄청난 갈등과 혼란만 야기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우리 사회 주택임대차현장에서 3년여동안 지속돼 왔다. 구체적으로는 2020년 개정된 주택임대차법 중 신설 규정인 계약갱신요구권(이하 갱신청구권) 중도해지 문제에서 벌어진 현상이다.
변호사, 부동산 중개인, 정부, 유관기관, 언론까지 어처구니없는 오독과 자의적인 유권 해석을 거리낌 없이 진행해 일선 부동산 현장은 소송까지 난무하는 아수라장판이다.
국회는 지난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면서 갱신청구권이란 조항과 중도해지 규정을 신설했다. 문제는 중도해지 조항이 현장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살펴보면 그저 웃음밖에 안 나온다.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6조3의4항(갱신청구권사용의 중도해지)을 보면 6조2항을 준용(準用)한다고 딱 한 줄로만 기술돼 있다. 6조2항은 묵시적갱신의 중도 해지이다. 묵시적갱신이란 최초 계약 만료 후 추가 계약서 작성없이 자연스럽게 연장된 것으로 임차인에 한해 중도해지권을 보장해 왔다. 묵시적갱신에서 임차인은 언제든지 중도해지를 통보할 수 있고 3개월 후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개정법 통과 이후 일선 현장이나 법률 상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서울시 자료, 언론 기사에서는 갱신청구권 중도 해지와 묵시적갱신의 중도 해지를 동일시하는 일이 3년동안 벌어져왔다. 갱신청구권사용 임차인은 법에 따라 3개월 전 통보하기만 하면 그냥 계약 종료할 수 있다고 다들 아무렇지 않게 떠들고 있다. 법에 적용이 아닌 준용이라고 기술돼 있는데도 말이다.
개정법은 준용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그 둘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시적갱신의 중도해지를 갱신청구권 중도해지에 무조건적으로 적용해버리고 있다. 개정법이 준용하라고 한 이유는 아마도 갱신청구권사용 중도해지에도 여러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어 묵시적갱신의 중도해지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예를 들어 갱신청구권을 사용했으나 만기일을 정한 갱신청구권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작성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이에 묵시적갱신의 중도해지를 무조건적으로 적용해 버리면 필연적으로 위헌 법률 소지가 발생하게 된다.
국가가 민간의 사적 계약에 과도하게 간섭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 개정법은 준용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부동산 현장은 준용한다를 적용한다로 이해하는 중이고 이로 말미암아 임대차 시장은 당사자 간 갈등과 분쟁이 횡행하는 중이다.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준용에 대한 한국어사전 및 한영사전(DAUM 검색)의 풀이를 그대로 소개한다.
1. 필요한 경우 조금의 수정을 가하여 적용시키다 2. 일정한 표준이나 기준에 준하여 사용하다 3. apply with necessary modifications
정부입법지원센터는 준용과 적용의 차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있다.
특정 조문을 그와 성질이 유사한 규율 대상에 대해 그 성질에 따라 다소 수정하여 적용할 때 이를 '준용'한다고 표현한다. 반면에 어떤 사항을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문을 조금도 수정하지 않고 그와 성질이 같은 다른 규율 대상에 사용할 때는 '적용'한다로 표현한다.
갱신청구권 사용의 중도 해지와 관련해 묵시적갱신의 중도 해지 규정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한국어사전과 정부입법지원센터가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하겠다.
이를 전제한다면 갱신청구권을 행사했으나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는 묵시적갱신과 성질이 유사하니 한국어사전의 2를 따르면 되고, 만기일을 정한 갱신청구권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명했으면 1의 경우를 따라야함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사전적 정의를 전제로 한다면 "준용한다는 표현은 그냥 적용한다는 개념이에요"라고 했던 정부 유관기관 관계자나 전문가들의 이제까지의 독선적 태도가 한심스러워 보일 따름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갱신청구권사용의 중도 해지에 대한 오독과 자의적인 해석이 준용이란 단어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용어사전 대로 한다면 준용한다고 했으니 '필요한 경우 조금의 수정을 가하여 적용시켜야'만 한다. 물론 필요하지 않으면 기준에 준하여 사용하면 된다.
다행히도 법무부와 국토교통부가 당시 발간한 개정법 해설집에는 수정을 가한 내용이 있다. 개정법해설집 'Q&A 11'은 갱신청구권사용 중도 해지에 대해 묵시적갱신의 중도 해지를 설명하면서 친절하게도 묵시적갱신의 중도 해지에는 없던 단서조항을 추가해 놓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단서조항조차 국토부, 서울시, 법무부 산하기관이 웃기지도 않는 해석을 지속하고 있다. Q&A 11을 보면 하단에 '# 단, 임차인은 계약해지를 통보하더라도 계약만료 전이라면 3개월간 임대료를 납부해야함'이라고 분명히 쓰여있다. 법률에서 '단'이라고 쓰여 있으면 조건을 붙인 단서 조항이거나 예외 조항을 의미하며 '~해야 함'이라면 강제 또는 의무 규정임을 일반인들도 알고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기관들은 민원인들에게 이를 효력발생 전 나머지 3개월간 임대료 잘 내라는 권고사항 또는 주의사항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설명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정부기관이 이러하니 일선 부동산 상담이나 법률 상담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세상에 단서 조항이 권고 또는 주의 사항이라 주장을 하는데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정부 설명 대로라면 전세 보증금 묻어놓고 거주하는 세입자에게 효력 발생 전 3개월간 임대료를 별도로 강제 납부하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데 독자 여러분은 이게 이해가 가는가? 이 단서 조항은 쓰여있는 그대로 읽으면 임차인에게는 해약금인 조항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갱신청구권 관련해 묵시적 갱신의 중도 해지를 준용하라고 규정하면서 이 단서 조항을 충족하고 계약 해지를 통보하게끔 하는 수정 사항을 만든 것이다. 역으로 단서 조항 이행을 충족하지 않으면 중도해지 통보는 원인 무효 행위로 보는 것이 적절한 풀이라 하겠다.
필자와 같은 일반인도 쉽게 이해하는 걸 정부는 물론이고 전문가들이 엉뚱한 해석을 남발, 시회 혼란을 조장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싶다. 이런 오독과 자의적인 해석으로 3년여간 고통을 받았을 임대인과 임차인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냥 읽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겠다.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비난하지 말고, 남의 말 듣지말고, 제발 그냥 읽고 읽은 그대로 행하시라고 임대차인들에게 충고드리는 바이다. 3년여간 지속된 이 혼란은 이제라도 빨리 수습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