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헌법과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 …." (국가인권위원회, 2024년 1월 23일 보도자료,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 전면 제한하는 학교생활규정 개정 권고 해당 학교 불수용' 일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 23일 낸 보도자료 마지막 부분이다. 지난 5일, 지난해 12월 29일과 10월 11에도 같은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가 나왔다. 대상 학교는 여러 지역 중학교와 고등학교들이다.
인권위는 일부 학교가 '생활 규정'(학교 규칙) 개정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관련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힌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관련된 '생활 규정'은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를 '전면 제한'하는 부분이다. 휴대전화를 아침에 걷어서 학교 문을 나서기 직전에야 돌려주는 학교가 대상이다.
인권위는 보도자료 덧붙임 자료로 해당 학교에 보냈던 권고 결정문을 공개했다. 판단 근거는 간단하다. 헌법 위반이다. 결정문에서 언급된 헌법 조항은 제10조 행복추구권, 제37조 제2항 과잉금지 원칙, 제18조 통신의 자유이다. 인권위 결정문은 국제법규인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16조와 제28조 제2항, 교육기본법 제 12조 제1항,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도 근거로 제시했다.
[대한민국헌법]
제 6조 ①…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제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37조 ②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16조 어떠한 아동도 사생활, 가족, 가정 또는 통신에 대하여 자의적이거나 위법적인 간섭을 받지 아니하며 또한 명예나 신망에 대한 위법적인 공격을 받지 아니한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헌법은 가장 기본이 되는 규범이다. 아울러 다른 법규보다 가장 우선해 적용되는 법이다. 헌법 제10조 '인간 존엄성 존중' 규정은 '민주 공화국'과 '국민주권'을 선언한 제1조만큼이나 중요하다. 평등과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조항이다. 헌법 기본권 부분 배치 순서도 이를 고려했다. 한낱 학교 규칙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학교 규칙 지키라며 헌법과 국제규범 무시하는 모순
비인간 동물과 자연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하지만, 아직도 각종 일터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존엄을 무너뜨리면서도 자신이 '범법자'임을 알지 못하는 때가 많다.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면서 비인간 존재와 공생하는 세상을 꿈꾸기는 어렵다.
현실에서 학교를 움직이는 커다란 두 가지 근거가 있다. 하나는 과거 경험이다. 대놓고 말하면 '하던 대로'이다. '내신', '진급 사정' 등 법령 어디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말이 지금까지 학교 안에 단단히 터 잡은 이유다.
두 번째는 교육청과 교육부 공문이다. 공문이 발휘하는 위력은 대단하다. 법령과 배치되는 공문 내용도 지켜야 한다고 믿는 교육 관료들이 있을 정도다. 교육부가 보낸 여러 기관의 설문조사 협조 공문 한 장에도 학교장이 교사를 닦달하는 장면이 아직도 목격된다.
그런데 유독 공문이나 국가 기관의 지시와 권고가 통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학생 인권 침해다. 협조 공문을 들이밀며 공무원의 자세를 들먹이던 관료들도 태세를 전환해 헌법과 법률, 국제규범은 안중에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따위'는 말할 것도 없다. 교육청도 공문만 보내고 역할을 다했다며 뒷짐만 진다.
학교 생활 규정을 통한 학생 권리 침해 현상은 교육부 공문으로 움직이는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생활 규정을 바꾸라는 교육부 고시는 정해진 기한이 도래하기 전, 학교 규정을 바꾸기 전에 집행에 들어간다. 하지만, 인권위 공식 권고는 '거부'하는 용기를 보인다.
교복을 입지 않은 학생에게, 휴대전화를 내지 않은 학생에게, 지각이나 결석한 학생에게, 학교와 교사는 학교 규칙을 들이민다. 정작 규정 한참 위에 있는 헌법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아니 무시하고 어긴다. 규칙을 지키라면서 상위법인 헌법과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교육부 고시라는 추가된 무기
교육 당국, 일부 교사들까지 현실을 내세워 학생의 권리를 침해해도 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부정하는 말이다. 전근대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권위 주장은 분명하다.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을 지키라는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 조항 제목은 '학생의 인권보장'이다.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서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다. 교육기본법 제12조 제1항은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평생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라고 규정한다.
"학생의 일반적 행동 자유권 및 통신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도록 … 관한 부분을 개정하기를 권고합니다."(2023년 4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주문 일부, 2024년 1월 24일 국가인권위 보도자료 덧붙임 자료)
"… 학교 내에서 휴대전화의 소지·사용을 제한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 학생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교육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 (2023년 4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일부, 2024년 1월 24일 국가인권위 보도자료 덧붙임 자료)
위 인용 글은 지난 23일 인권위 보도자료에 첨부된 2023년 4월 12일 결정문 일부다. 인권위 결정문은 '권고'라는 형식적 한계도 있지만, 내용도 보수적인 수준이다. 학생들에게 어른들, 교사들과 똑같이 휴대전화 사용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학교에서 소지하고 사용하는 행위 모두를 전면적으로 규제하는 규정을 고치라는 매우 '제한적' 권고이다.
그동안 학교의 대응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한 규정이라는 것이다. 둘째, 불법 촬영, 수업 중 사용 등 학생들이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 가지 논리가 추가됐다. 지난해 교육부가 내놓은 고시(교육부 고시 제2023-28호,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다. 고시에는 '필요 시 휴대전화 분리 보관 허용'이 포함됐다. 인권위 권고를 거부한 어떤 학교도 모든 학생의 권리를 제한하는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할 헌법 근거는 들지 못했다.
이미 실패가 확인된 신자유주의는 '교육도 상품'이라고 했다. 교사는 '공급자'가 됐고, 학생과 보호자는 '소비자(수요자)'로 자리매김 됐다. 아직도 '수요자'라는 말이 교육기관 공문과 논문 일부에 떠돈다. 학교는 효율을 최고 가치로 둔 기업이 됐다. 그 과정에 학교를 포함한 교육 당국도 함께했다.
그러나 교육은 상품이 아니고, 학교는 기업이 아니다. 효율과 단기적 성과를 맨 앞에 내세울 수 없는 이유다. 시간이 걸려도 '교육적으로' 의미 있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제 휴대전화는 일상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배움을 연결하는 중요한 '기계' 가운데 하나다. 직장에서 휴대전화를 수거한다면 어떤 감정이 생길까? 실제로 그런 곳들이 일부 있다. 그런 곳에서 업무 효율이 올라가더라며 다른 회사나 국가 기관에서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금지하면 어떻게 될까? 점심시간에도 직장 상사나 기관장의 허락을 얻어 사용해야 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학생은 다르다', '학교를 성인들이 모인 곳과 비교하는 일은 부적절하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곳이 출발점이다. 학생도 존엄과 가치를 가진 인간이고 국민이다. 학교, 교육 당국을 포함한 국가는 그 존엄성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
우리 헌법 어디에도 학생의 권리를 정부와 학교가 함부로 침해할 수 있다고 적혀 있지 않다. 더구나 학교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다. 가르침과 배움은 '강제'와 어울리지 않는다. '학생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