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편집자말] |
올 초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췌장에서 만들어지는 아밀라아제 수치가 높게 나와, 복부 CT 검사를 했다. 조형제를 맞고 난생처음 CT 기계 안에 누워있으니 별별 생각이 떠올랐다. 췌장암은 늦게 발견된다는데… 만약 암이면 어떡하지… 항암 과정은 힘들겠지… 친정엄마보다 먼저 가는 불효를…. 걱정은 상상의 나래를 펴서 나는 이미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 별 이상이 없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동안 걱정으로 마음졸이며 보낸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웠다. 검색창에 '걱정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을 쳐보면, 각종 연구 결과가 나온다. 걱정의 40%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3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다, 22%는 사소한 걱정이다 등등.
가장 최근인 2020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의 미셸 뉴먼 연구팀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 중 무려 91퍼센트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왜 끊임없이 걱정하는 것일까?
"혹시 ~하면 어떡하지?"
책 <걱정이 많아 걱정입니다>는 우리가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부터 걱정이 신체건강에 미치는 영향, 걱정을 멈추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저자인 영국의 심리학자 그램 데이비는 30년 넘게 걱정(worry)과 불안(anxiety)에 관한 연구를 해왔으며, 영국 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전문가다.
별것 아닌 걱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혹시 ~하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이다. 핸드폰 배터리가 금세 방전되면 어떡하지? 그래서 중요한 전화를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받지 못한 전화 때문에…. 불길한 생각이 또 다른 불길한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걱정은 파국화(catastrophizing) 된다.
파국적 걱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해결책을 생각하지 않고, 나쁜 결론만 머릿속이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다. 걱정이 파국화로 진행되기 전에 '걱정 버튼'을 꺼야 한다. "~하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을 "그럼 이제 뭘 하면 되지?"로 바꿔보자.
예상되는 결과에 어떻게 대처할까에 초점을 맞추면, 부정적인 걱정에서 문제 해결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한다. 핸드폰이 방전될까 걱정이라면, 충전기나 보조배터리를 챙기기 혹은 중요한 연락은 앞당겨서 하기 등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이다.
걱정에 대한 이중적 태도
많은 사람이 '걱정 버튼'을 꺼야 한다고 수긍을 하면서도 걱정을 멈추지는 않는다. 걱정이 나쁜 일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은 걱정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 걱정했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일이 자주 반복되면 걱정은 나쁜 일을 막아준다는 신념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걱정은 본인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까지 통제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친정어머니가 종이신문에서 매일 찾아보는 '오늘의 운세'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가끔 '오늘의 운세'를 찍어서 나에게 카톡으로 보낸다. "나무에 돈 꽃이 피는구나", "목적을 달성하고 성취감을 맛볼 듯" 등 기분 좋은 말에는 기대감이 생기지만, "먼 길을 떠나지 마라", "운전을 멀리하라", "구설수 조심" 등 부정적인 메시지에는 신경 쓰인다.
'오늘 만남에서 말실수하는 것은 아닐까?', '차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이 생긴다.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런 걱정은 내 행동에 제약을 가져오게 된다. 나 또한 걱정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걱정은 타고난 천성이 아니라 '학습된 습관'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걱정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성적인 걱정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활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면장애, 불안장애 등을 일으키며 신체 건강까지 공격한다. 책에는 하버드 대학 로라 쿠브잔스키 연구팀의 결과가 인용돼 있다.
이 연구팀은 1975년부터 1995년까지 남성 노인 1,750명을 대상으로 걱정과 관상동맥질환과의 관계를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20년 동안 걱정 수준이 높은 사람은 관상동맥질환에 더 잘 걸린다는 사실 발견했다. 우리가 흔히 투덜대는 "걱정돼 죽겠어"라는 말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저자는 건강한 삶을 위해서 걱정을 줄이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거나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경우엔 바로 '걱정 버튼'을 끄기, 걱정거리를 글로 써서 객관적으로 거리두기, 긍정적 이미지 상상하기, 부정적인 뉴스를 보는 시간 줄이기 등등을 권한다. 책의 각 챕터 뒤에는 '나의 걱정 단계 측정', '내가 주로 걱정하는 분야 파악하기' 등 걱정을 완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워크숍이 부록으로 실려있어 도움이 된다.
걱정은 대개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걱정이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과정인지 아니면 걱정이 걱정을 낳아 근거없는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충실하면서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볼 때, 파국적 상황으로 몰아가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올해에는 '걱정 버튼' 끄는 훈련을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