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마현 당국이 현립 공원 '군마의 숲' 소재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를 강행하자 일본 언론도 비판하며 철거 중지를 촉구했다(관련 기사 :
일본 극우 등쌀에 '조선인 추도비' 철거... 마지막 헌화).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은 30일 사설에서 조선인 추도비 철거와 관련해 "급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폭거"라며 "즉시 중지할 것을 야마모토 이치타 군마현 지사에게 요구한다"라고 밝혔다.
조선인 추도비는 '종교적·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건립되었으나, 2012년 행사 참가자가 '강제연행'을 언급했다는 점을 극우단체들이 문제 삼아 철거를 요구했고, 군마현 당국이 2014년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했다.
추도비를 관리하는 시민단체가 소송을 제기했으나, 2022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군마현 당국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하면서 철거가 확정됐다.
"전쟁 이전 일본 미화하는 풍조 강해져"
그러나 아사히는 "강제연행 발언 논란이 있고 난 후 시민단체도 약 10년간 추도비 앞에서 집회를 자제하면서 문제가 없었고, 건립 당시에는 군마현 의회가 만장일치로 찬성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시아의 평화와 우호를 바라는 내용을 새긴 추도비"라며 "시민단체 뒷다리를 잡는 듯한 형태로 추도비를 철거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한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한 군마현 당국 처분이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철거까지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며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악영향을 고려하지 않아 승복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었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전쟁 이전의 일본을 미화하는 풍조가 강해지는 가운데 일부 세력의 항의를 받은 군마현이 정치적 중립을 방패 삼아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고 있다면 역사 왜곡을 돕는 것"이라며 "매우 위험한 사태"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가 철거 지시에 불응하자 군마현 당국은 이날 공원을 폐쇄하고 추도비를 철거하는 행정 대집행을 시작했다.
군마현 도시정비과장은 비석 앞에서 대집행 선언문을 낭독한 뒤 철거 공사를 시작했고, 추도비에 부착된 판을 떼어내 시민단체 측에 전달했다. 또한 철거 비용 3천만 엔(약 2억7천만 원)을 시민단체 측에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추도비를 철거해도 전시 중에 조선인을 노동에 동원한 역사적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며 "우리의 마음과 사상이 권력에 꺾이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일 정부 "지자체가 판단... 논평 삼가겠다" 답변 회피
또 다른 진보 매체 <도쿄신문> 헌법학 전문가인 후지이 마사키 군마대 교수의 말을 빌려 "행정 대집행은 현저하게 공익에 반하는 경우에만 인정된다"라며 "시민 생활에 영향이 없는 추도비를 대상으로 행정 대집행을 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후지이 교수는 "비석을 둘러싸고 소동을 일으키면, 철거로 이어진다는 나쁜 전례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마모토 지사는 "역사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깨진 것이 철거의 원인"이라며 "사법부 판단에 따르지 않는 공익에 반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한계에 도달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추도비 철거 공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군마현 현청과 공원 앞에서는 철거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한 시민은 "추도비를 철거한다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기억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인 것 같다"라고 지적했고, 또 다른 시민도 "굳이 돈을 들여 철거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한편, 일본 정부 대변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회견에서 추도비 철거 관련 질문에 "지방자치단체가 판단한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사안으로 알고 있어 정부로서는 논평을 삼가겠다. 자세한 것은 군마현에 문의하길 바란다"라고 답을 피했다.
우리 외교부는 "이 사안이 양국 간 우호 관계를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