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부가 설 선물을 보내면서 불교계에는 술과 육포 대신 꿀과 표고채를 보냈지만, 십자가가 그려진 포장재와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문을 동봉했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은 1일 조계종을 찾아가 사과했다.
설 명절을 맞아 전국으로 발송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부부의 선물은 백일주, 유자청, 잣, 쇠고기 육포로 구성됐다. 대통령실은 지난 1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불교계 등을 위해서는 아카시아꿀, 유자청, 잣, 표고채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선물상자에는 국립소록도병원 입원 환자들의 미술 작품을 인쇄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한센인들이 소록도의 풍경과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포장재에 인쇄된 그림 중에는 십자가가 달린 교회와 성당 그림도 있었다. 또 하나님을 향한 한센인의 기도문도 동봉됐다. 불교계를 위해 술과 고기를 빼고 대체 품목을 보냈지만, 포장재와 기도문은 선물상자에 그대로 포함됐다.
불교 관련 매체들은 이같은 선물상자가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각 종단 수장 등에게 배달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큰 결례" 대통령 비서실장, 조계종 총무원장 찾아가 사과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은 1일 오후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가 총무원장 진우 스님에게 사과했다. 이 비서실장은 "저희들이 좀 많이 부주의하고 또 생각이 짧아가지고 큰스님들께 보내는 선물에 다른 종교의 표식이 들어가고, 이래서 저희들이 큰 결례를" 범했다면서 배송이 완료되지 않은 선물은 회수해 포장을 바꿔 다시 배송하겠다고 밝혔다.
이 비서실장은 "(이미) 받으신 분들께도 저희들이 좀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다시 조치를 하도록 하겠다"라면서 "저희들이 많이 부족하고 생각이 많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결례를 용서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
진우 스님은 "지난번에도 한 번 이제 그런 다른 정부에서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비서실장님이 직접 오셔서 이렇게 해명하시고 또 사과까지 해 주셔서, 그때는 그게 좀 부족해가지고 우리 종도들이 굉장히 좀 섭섭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명의의 설 선물로 육포가 불교계 인사들에게 전달된 일을 가리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진우 스님은 "근데 오늘 이렇게 빨리 오셔서 이렇게 직접 말씀해 주시니까.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이게 무슨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종도들에게 조금 이해를 구하고, 저도 이렇게 선의를 보여주신 부분에 대해서 이제 상당히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대신 이제 다음부터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그렇게 조처를 해 주시고"라고 당부했다.
포장재 '소록도 테마'와 유자청은 김건희 여사 행적과도 관련
대통령이 설 선물 포장재에 '소록도 테마'를 적용하게 된 것은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1월 소록도를 방문한 일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김 여사는 국립소록도병원을 방문해 그림을 통해 아픔과 외로움을 이겨온 한센인들을 만나 위로한 바 있다. 이번 설 선물에 포함된 고흥 유자청은 김 여사가 소록도를 방문해 환자와 의료진에게 선물한 품목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 이름으로 나간 선물이 물의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22년 12월 윤 대통령 명의로 소년‧소녀가장, 100세 이상 노인, 현장 근로자 등에게 견과류 선물을 보냈다. 하지만 아몬드, 호두, 건자두, 피스타치오는 미국산, 땅콩, 호박씨는 중국산 등 수입산 일색이어서 선물을 받은 농민들이 분통을 터뜨린 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