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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박장범 KBS 앵커와 대담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박장범 KBS 앵커와 대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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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앞두고 7일 밤 방송된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를 두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윤 대통령이 밝힌 입장, 진행자의 질문 수준은 실망을 넘어 참담한 수준이었다.

당초 방송 소식이 알려진 뒤 대다수 국민이 가장 주목한 관심사는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입장 발표였다. 야당과 진보 언론뿐 아니라 여권 내 일부 인사와 보수 언론 또한 사과나 최소한의 유감 표명을 강권해 온 터라 적어도 '송구하다'는 발언 정도는 나올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대신 윤 대통령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 1년이 지나서 이렇게 이거를 터뜨리는 것 자체가 정치 공작"이라며 여당이 줄곧 외쳐온 '정치 공작' 주장에 동감을 표했다. 이어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다"라고 김 여사를 감싸는 듯한 발언까지 보탰다.

또 윤 대통령은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이런 일을 예방하는 데는 (제2부속실이)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며 "제2부속실이 있었더라도 제 아내가 내치지 못해 자꾸 오겠다고 하니까 박절하게 막지 못한 것인데 그렇다면 제2부속실이 있어도 만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은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두고 "제 아내가 앞으로 국민들께서 걱정 안 하시도록 사람을 대할 때 좀 더 명확하게 단호하게 해야 된다"라며 김 여사 개인 차원의 처신이 중요한 것처럼 마무리했지만, 이 사안은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다. 설령 김 여사가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직접 사과하고 법적 문제가 있으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단순히 김 여사 개인의 문제로 국한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상 이 문제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갈등만 보더라도 김 여사가 단순히 대통령의 배우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이번 대담에서 대통령이 직접 감싸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서 '대통령 위에 영부인'이라는 농담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고 여기게 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대담은 윤 대통령 입장에서 소위 '김건희 리스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이미 지난 몇 달 동안 침묵과 적반하장으로 일관해온 만큼 송구스럽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보수 언론의 호응은 불 보듯 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대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국민도 어쩌면 '그래도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있구나'하며 조금은 누그러들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 천재일우의 기회를 저버린 건 다름 아닌 윤 대통령이다. 이 문제에 대해 사과의 필요성도, 김 여사의 잘못도 없다고 여긴다면 그에 따른 민심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때가 돼서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부부싸움 하셨나" 처참한 질문의 수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박장범 KBS 앵커와 대담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박장범 KBS 앵커와 대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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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입장 외에 이날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장면은 '진행자'가 선보였다. 당초 KBS와 신년대담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박민 사장이 취임한 이후 바뀐 KBS를 지켜봐 온 이들로부터 우려가 속출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우려는 적중했다.

대담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한 가지로 축약하면 '질문할 게 정말 이것밖에 없었나'였다. 윤 대통령 답변에 대한 재질문이나 날카로운 질문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질문의 양상은 윤 대통령에게 극히 호의적으로 흘러갔다. 

특히 박장범 앵커가 9번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좀 더 생산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있지 않나 이런 목소리도 나온다"고 묻자,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이 행정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여야의 충분한 숙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들이 많이 아쉽다"고 답했다. 민주화 이후 역대 최다 거부권을 행사한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에 대해 여야 간의 숙의 부족을 탓했다면 '그래도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거부한 대통령의 책임도 있지 않냐'고 묻는 것이 제대로 된 언론이라고 본다. 그러나 박 앵커는 곧바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대통령실 출신 인물들의 총선 출마에 관한 질문 또한 마찬가지다. "당내 공천 과정에서 이른바 대통령실에 후광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물어보자, 윤 대통령은 "후광이 작용하겠나"며 "공정하게 룰에 따라서 뛰라고 그렇게만 했다"고 말했다. 이런 답변이 나왔다면, 자연히 대통령실이 '사천'을 언급하며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은 것 또한 물을 법 했지만 박 앵커는 또다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물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갈등에 대한 질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이 이상했다. 화재현장을 두 사람의 관계봉합을 위해 이용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와중에 "서천 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동훈 위원장이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만나는 모습이 보도가 됐고 또 그 이후에 대통령실 오찬을 하면서 그 얘기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는데, 봉합된 거다, 2차전이 남아 있다 이런 이제 정치 분석도 나온다"고 한 박 앵커의 언급은 적절한가.

게다가 두 사람 사이 갈등에 대해 "한동훈 위원장이 잘하고 있는 것 같나"라고 묻는 건 대체 뭘 위한 질문인가. 이미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이 사실이라고 인정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의 당무개입이 아니냐'는 질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국민이 궁금했던 게 과연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단순한 평가였을까?

엉뚱해 보이는 질문은 이외에도 많았다.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에 대해서도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며 "지지율이 잘 나오면 대통령도 신이 나실 텐데 국민들이 야속하나"라고 물었다. 지지율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면, 경제불황을 비롯해 여론조사에서 국민이 부정평가의 이유로 꼽은 여러 사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입장을 물어봐야 하지 않았을까.

처참한 질문의 수준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을 다룰 때 더욱 두드러졌다. 명품가방을 명품가방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조그마한 백"이라고 칭하는 데서 박 앵커의 고심이 느껴졌다. 명품가방 수수 영상이 아닌 "김건희 여사를 만나서 그 앞에 놓고 가는 영상"이라고 말하는 데서는 실소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야권은 물론이고 여권 내부의 사과 요구나 국민의 비판 여론은 언급하지도 않은 채 정치 공작이라는 여당의 의견에 동의하냐고만 물었다. 심지어 명품가방의 행방은 끝내 입에 담지 않았다. "그 이슈 가지고서 부부싸움 하셨냐"는 마지막 질문은 그야말로 화룡정점이었다.

KBS는 과연 어느 나라 방송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 녹화를 마친 뒤 박장범 KBS 앵커에게 집무실 책상에 놓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선물인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명패를 소개하고 있다. 이 명패는 지난해 5월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을 마치고 귀국하며 건넨 선물로 트루먼 전 미국대통령의 좌우명을 새긴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석열이형네 밥집 영상에서 '집무실 책상에 두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트루먼 대통령의 명패를 언급한 바 있다.
▲ "The BUCK STOPS here!" 명패 소개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 녹화를 마친 뒤 박장범 KBS 앵커에게 집무실 책상에 놓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선물인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명패를 소개하고 있다. 이 명패는 지난해 5월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을 마치고 귀국하며 건넨 선물로 트루먼 전 미국대통령의 좌우명을 새긴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석열이형네 밥집 영상에서 '집무실 책상에 두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트루먼 대통령의 명패를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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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관련 질문에서는 듣기 안 좋은 얘기나 비판적인 여론은 꺼내지 않은 것이 눈에 띄었다. 박 앵커는 "대통령 임기 시작한 이후에 국내적으로도 해외에서도 가장 후한 점수를 주는 게 바로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이라고 운을 뗐다. 진행자에겐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까지 한 부산엑스포 참패는 외교와 무관한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엑스포 얘기는 이번 대담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대일외교에 대해 "대통령 윤석열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결심을 가지고 결행했나"는 질문은 있었지만 대일외교를 향한 수많은 비판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이 식민지배에 대한 아픈 기억들이 다 있기 때문에 반일에 대해서는 박수 치고 좋아한다.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일본을 향해 접근할 때는 상당히 매서운 눈초리로 바라본다"는 박 앵커의 발언은 과연 한국의 공영방송에서 할 얘기인가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윤 정부의 대일외교를 향한 국민의 비판은 감정적인 반일이라는 얘기인가.

대미외교와 관련해 반도체나 배터리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처방안을 묻기보단 "아메리칸 파이는 미리 준비한 것인가",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후) 외국 순방할 때 상대국에서 노래 좀 해달라는 요청이 실제로 많나"라고 물었는데, 과연 그게 한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에게 할 최선의 질문이었는지 궁금하다.

이번 대담은 KBS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으로서의 숙명을 저버렸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본다. KBS는 윤 대통령이 특별대담의 대상으로 자사를 선택한 것에 자부심을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은 그토록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는 윤 대통령이 KBS를 택한 이유를 이제 알 것만도 같다.

태그:#윤석열, #박장범, #KBS특별대담,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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