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가 취미인 아이가 물고기 잡기에 몇 차례나 실패해서 시무룩해 있는 걸 보다 못해 게잡이를 제안했다. 어디서 게가 물고기보다는 잡기 쉽다는 소리를 듣고 아이한테 말했더니 지난여름 캠프에서 민물 가재를 잡아본 경험까지 떠벌리며 관심을 보였다. 행동대장 아내가 게를 잡을 수 있다는 뉴포트 바닷가 호텔을 찾아 바로 예약했다.
게를 잡으러 가겠다고 여행을 저지르긴 했지만, 우리는 게잡이에 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인터넷으로 뒤지니 게잡이 유튜버가 잡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줬다. 게잡이용 철망에 미끼를 넣어 던졌다가 건지면 무더기로 잡힌다는 과정이 너무 간단해 우리 같은 초보자도 쉽게 도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우리가 묵을 호텔에서 미끼랑 장비까지 다 빌려주니 부담 없이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우선 나와 아내 이름으로 갑각류, 조개잡이 면허를 두 개 샀다. 12살 이하 아이는 면허 없이도 그냥 잡을 수 있었다. 면허 하나에 12마리까지 던저니스 크랩을 잡을 수 있다고 해서 세 명이 36마리를 잡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세웠다. 게를 담을 아이스박스도 큼지막한 걸로 미리 준비했다. 아이는 그 많은 게를 잡아서 먹을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도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여행 날, 우리는 뉴포트 바닷가로 게 사냥을 나섰다. 신이 난 우리의 기대와 달리 가는 길에 비바람이 몰아쳤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게잡이는커녕 여행 내내 호텔 방 안에 처박혀 지내야 할지도 몰랐다. 모처럼 계획한 가족여행이 망할 것 같아 잔뜩 걱정하는 아이를 간신히 달랬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밤새 퍼붓던 비가 거짓말같이 그치고 게 잡기 딱 좋은 날씨가 되었다. 맑은 하늘을 보자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춤까지 췄다. 오늘은 어복이 좀 따라주려나.
집에서 마련한 음식으로 아침 요기를 때우자마자 우리는 호텔 로비로 가서 게잡이에 필요한 도구부터 빌렸다. 철제 어망, 미끼와 길이를 재는 자를 수레에 담아 선착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일찍부터 나와 게를 잡고 있었다. 이 호텔은 게잡이 전용 선착장이 있었지만, 자리가 몇 개 남지 않아 서둘러야 했다. 투숙객 대부분은 게 잡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로비에서 받아온 미끼를 열어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튀김과 쇠고기 덩어리였다. 살점이 살짝 붙어 있는 뼈는 약간 의외였다. 아이가 게나 가재는 물속 '시체 처리반'이니까 좋아할 거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우리는 묵직한 철제 어망에 튀김과 고기뼈를 적절히 나눠 담고 던질 준비를 했다.
아이와 나는 양쪽에 서서 게망을 나눠 잡고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앞뒤로 흔들었다. 갑자기 아이의 몸이 휘청거리며 바다로 쏠렸다. 깜짝 놀라 아이의 몸을 본능적으로 잡고 안으로 끌어당겼다. 아이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수영도 못하는데 아이가 바다에 빠지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가족이 함께 땀흘려 얻은 소중한 수확
유튜브로 볼 때는 쉬워 보였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철망을 던지고 건져 올리는 것도 버거웠다. 초보 어부인 우리에겐 어렵고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비디오에서 배운 지식을 어업 현장에서 실천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유튜버가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데 아이가 자꾸 건져보자고 보챘다. 선착장에서 달리 할 일도 없었기에 15분도 안 되어서 게망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끌어올린 게망 안에 게 몇 마리가 들어와 있었다. 탄성이 절로 터졌다. 이렇게 쉽게 게를 잡을 수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기쁨도 잠시였다. 무겁고 뻑뻑한 철망을 다시 여는 것도 어려웠다. 게다가 게들이 철망에 찰싹 달라붙어서 떼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집게다리에 물릴까 봐 아이는 손도 못 대고 쩔쩔맸다. 나도 겁났지만, 뒷발질하는 게와 씨름하다가 몇 번의 시도 끝에 게를 잡을 수 있었다.
잡은 게를 확인하니 던저니스 크랩은 하나도 없고 레드락 크랩만 몇 마리 있었다. 그마저도 너무 작아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망도 실패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니 한두 마리씩 잡히기 시작했다. 아이는 게임기를 만지던 꼬막손으로 게망을 척척 열었다. 아내도 장갑을 끼고 게망을 대차게 끌어당겼다. 자연인과 거리가 먼 아내도 오늘 하루는 어부로 변신했다.
오전 내내 우리가 열심히 잡은 레드락 크랩을 하나씩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았다. 원하던 던저니스 크랩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땀흘려 얻은 소중한 수확이었다. 아이와 게를 잡으며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동안 전자기기에 아이를 뺏긴 기분이었는데 자연에 나와 아이와 가까워졌다.
하나 됨을 느낀 경험도 좋았지만, 목표했던 던저니스 크랩을 잡지 못한 건 여전히 아쉬웠다. 주위를 살피니 다른 사람들은 던저니스 크랩을 몇 마리라도 잡고 있었다.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던저니스 크랩 얼마나 잡으셨어요?"
"서너 마리 정도."
"저희는 던저니스 크랩은 구경도 못 했어요. 근데 미끼는 뭐로 하셨어요?"
"우린 미끼로 닭다리만 써요."
아이오와주를 떠나 오리건주로 은퇴했다는 노부부는 게잡이가 재밌어서 벌써 세 번째 왔다고 했다. 그분들의 노하우는 '닭다리'였다. 다양한 미끼를 써봤지만 닭고기로 했을 때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닭고기 미끼를 쓰는 팀이 꽤 많았다. 배운 건 바로 써먹어야 하는 법이다. 저녁으로 먹으려고 가져온 닭다리를 미끼통에 과감히 추가했다.
드디어 던저니스 크랩을 잡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게만 잡다가 가기가 아쉬워서 뉴포트 시내로 잠시 나왔다. 부둣가를 걷는데 멀리서도 고막을 찢는 듯한 바다사자 괴성에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아이는 악취와 고성 때문에 귀와 코를 틀어막으면서 바다사자를 유심히 관찰했다. 아마도 게를 잡아먹는 바다사자를 경쟁자로 여기고 경계하는 듯 보였다.
선착장에 돌아오자마자 게망부터 건져 올렸다. 아이가 줄을 잡아 올리는 폼도 제법 익숙해졌다. 장갑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힘차게 끌어올린 게망에서 게가 가득했다. 크고 실한 레드락 크랩이 많이 잡혔다. 양동이에 게가 가득 모이자, 아이의 얼굴에 드디어 미소가 피어났다.
"게임보다 이게 더 재밌어요."
"정말?"
"직접 보고 만지니까 더 생생해요."
"태블릿 화면에서 보는 거랑 다르지?"
"비디오로 볼 때보다 몇 배나 힘들어요. 마트 수족관에서만 보던 게를 직접 잡을 수 있는 게 신기해요."
처음엔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녀석이 게를 쳐다보며 농담까지 늘어놓았다. 아이가 게망에 딱 붙어서 옴짝달싹하지 않는 게를 '스파이더맨'이라고 이름붙였다. 내가 간신히 떼서 양동이에 던졌는데 다리를 주욱 뻗어서 입구 위에서 버티고 있었다. 스파이더맨 게는 체조선수처럼 다리로 활짝 벌리고 양동이 위에서 고난도 기술을 펼쳤다. 우리는 웃으며 '스파이더맨 게'의 묘기를 한참 지켜봤다.
닭고기 미끼로 바꾼 덕분이었을까. 우리도 던저니스 크랩을 드디어 잡았다. 환호를 지르며 확인했지만, 최저 기준 14.6센티미터에 못 미치는 크기라 풀어줬다. 어쩌다가 큰 놈이 잡혔는데 잡아선 안 되는 암컷이라서 바다로 되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던저니스 크랩 한 마리도 못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밀려왔다.
게들이 먹성이 좋아서 미끼도 바닥났다. 닭다리를 사러 마트에 다녀오면서 호텔 부엌에서 던전니스 크랩을 삶는 어떤 가족을 보자마자 아이가 대뜸 말을 걸었다.
"아저씨, 그거 던저니스 크랩 맞죠?"
"응, 방금 두 마리 잡았어. 한번 볼래?"
아이가 무심코 던진 질문에 아저씨가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아저씨는 아이가 자세히 볼 수 있게 통에서 게를 꺼내서 보여줬다. 아이가 유심히 게를 살피더니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는 던저니스 크랩을 이렇게 가까이 보는 건 처음이에요. 저희는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우리도 사흘 동안 잡은 거 전부 합쳐야 6마리 정도밖에 안 돼. 던저니스 크랩을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중요한 건 게 몇 마리 잡은 게 아니었다
하루에 36마리를 잡겠다는 우리의 꿈은 허황된 꿈이었다. 실망하는 아이를 위로하며 마지막 희망으로 남은 닭고기를 게망에 가득 채웠다. 잠시 쉬러 호텔 방에 들어왔는데 아이가 갑자기 으슬으슬 춥다고 했다. 아이가 하루 종일 거의 쉬지 않고 선착장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했으니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마음 같아선 더 잡아보고 싶었지만, 게잡이를 접을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선착장으로 돌아와 게망을 건지는 순간에 던저니스 크랩 한 마리가 들어 있음을 확인했다. 망을 열고 자로 재어보니 제한 크기를 넘겼다. 드디어 던저니스 크랩 한 마리를 잡았다! 아프다던 아이도 기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날뛰었다. 하루 종일 선착장을 오가며 쌓인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게 아이가 없었다면 게잡이 같은 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거다. 살아있는 게를 맨손으로 잡고, 삶아서 내장까지 제거하는 수고를 하게 될 줄이야. 게를 잡기도 무서워하는 아이를 도와주려니 아빠로서 용기를 내야만 했다.
낚시보다는 쉬운 줄 알고 시작한 게잡이로 고생을 제대로 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아빠로서 아이한테 좋은 경험도 시켜주고 멋지게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게망을 여닫는 것도 제대로 못 한다고 아이한테 핀잔만 들었다. 헤매기는 아내나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부모·자식 관계가 아니었다. 함께 고생하는 동료였다. 같은 지붕 아래에 살아도 각자 관심사가 달랐던 가족이 아이의 취미 때문에 하나로 뭉쳤다.
게잡이 여행에서 우리는 게만 잡은 게 아니었다. 게를 잡는 고생 속에서 동료애가 생겼다. 나도 아이의 취미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부족해도 노력하려는 아빠의 마음을 아이도 더 헤아려 주는 것 같았다.
첫술에 배부르랴. 일이 순조롭게 풀렸으면 배우는 것도 없다. 실수투성이로 게잡이를 해보니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다음에 오면 더 잘할 수 있다고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아이를 발견했다.
게를 몇 마리 잡은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게잡이에 소극적이던 아이가 점차 주도적으로 변화하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꿈이 유튜버였던 아이가 이 경험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틈틈이 찍어온 비디오는 아이의 유튜브 데뷔작이 되었다.
아이는 커가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부모로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겠다는 생각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고생하는 경험이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고생하며 스스로 배울 수 있게 곁에 있어주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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