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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한 위원장이 등장하는 장면은 지난 2023년 7월 한 위원장의 대한상의 제주포럼 강연이다. 해당 강연에서 한 위원장은 이 전 대통령의 농지개혁에 대해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이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다른 나라였을 것"이라며 "농지개혁은 6·25 전쟁 직전 대부분 마무리됐는데, 북한의 침략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영화 속 한 위원장이 등장하는 장면은 지난 2023년 7월 한 위원장의 대한상의 제주포럼 강연이다. 해당 강연에서 한 위원장은 이 전 대통령의 농지개혁에 대해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이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다른 나라였을 것"이라며 "농지개혁은 6·25 전쟁 직전 대부분 마무리됐는데, 북한의 침략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 법무부 유튜브 갈무리

"제가 나오던데요?"

12일 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발언이다. 이어 한 위원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되는 데 굉장히 결정적인,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하신 분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농지개혁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며 "그분의 모든 것이 미화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시대적 결단이 있었고, 그 결단에 대해 충분히 곱씹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속 한 위원장이 등장하는 장면은 지난 2023년 7월 한 위원장의 대한상의 제주포럼 강연이다. 해당 강연에서 한 위원장은 이 전 대통령의 농지개혁에 대해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이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다른 나라였을 것"이라며 "농지개혁은 6·25 전쟁 직전 대부분 마무리됐는데, 북한의 침략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농지개혁이 6·25 전쟁 이전에 마무리? 이승만도, 미국도 부정


한 위원장은 농지개혁이 6·25 전쟁 직전 대부분 마무리됐다고 말했지만, <우남 이승만 연구>를 펴낸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가 발표한 '한국 농지개혁 재검토'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농지개혁은 6·25 전쟁 직전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 단계에 있었다.

정 교수는 해당 논문에서 이승만 대통령 비서실 문서를 분석해 농지개혁에 대한 이승만의 지시사항을 찾아냈다. 6·25 전쟁이 발발한 뒤인 1950년 10월 15일, 이승만은 농림부장관에게 "이남에 대한 농지개혁은 중지되었으니 여하히 진행함이 가한지 속히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한 위원장의 주장대로 농지개혁이 전쟁 발발 이전에 마무리되었다면 이러한 지시를 할 이유가 없다.

1953년 8월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국이 작성한 '대한민국의 토지개혁'이라는 이름의 보고서 또한 "농지개혁법령의 시행은 1950년 4월에 시작되었으나 전쟁 개시로 연기되었다. 농지개혁은 1951년에 재개되었고, 1952년 중반에 이르러 농지개혁 계획은 실질적으로 종결되었다"며 농지개혁이 전쟁 발발 이후에 마무리됐다고 파악하고 있었다.

농지개혁 연기한 이승만에 북한 토지개혁 여파 우려한 미국이 반대 나서
  
 한편 전쟁 발발 이후 농지개혁은 다름 아닌 이승만에 의해 연기될 예정이었다. 1950년 10월 19일 미 중앙정보국(CIA) 비망록에 따르면 이승만이 1년간 농지개혁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며 "한국의 정치·경제 생활에서 그들의 전통적 지배지위를 유지하려는" '지주계급'들의 압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고했다.
한편 전쟁 발발 이후 농지개혁은 다름 아닌 이승만에 의해 연기될 예정이었다. 1950년 10월 19일 미 중앙정보국(CIA) 비망록에 따르면 이승만이 1년간 농지개혁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며 "한국의 정치·경제 생활에서 그들의 전통적 지배지위를 유지하려는" '지주계급'들의 압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고했다. ⓒ 역사비평사
 
한편 전쟁 발발 이후 농지개혁은 다름 아닌 이승만에 의해 연기될 예정이었다. 1950년 10월 19일 미 중앙정보국(CIA) 비망록에 따르면 이승만이 1년간 농지개혁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며 "한국의 정치·경제 생활에서 그들의 전통적 지배지위를 유지하려는" '지주계급'들의 압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러한 지주계급의 반발을 의식한 이승만이 10월 15일 농지개혁의 신속한 재개를 지시하는 대신 재개 가능 여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이승만의 판단에 의해 농지개혁이 1년간 연기되었다면 한국 농지개혁은 재개되기보다 중단되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이승만의 농지개혁 연기를 반대하고 나선 건 바로 미국이었다. 미 경제복구위원회는 이승만의 농지개혁 연기 결정을 반대하며 농지개혁법 지속 및 시행을 선호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미국의 반대에 이승만은 연기 결정을 번복하고 "농지개혁법안을 오랫동안 끌고 나가서 실시되지 못했다는 비평이 있었던 바 지금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을 신선하게 진행하려는 벽두인 만큼 농지개혁법안을 우선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농지개혁 실시에 적극적이었을까. 이는 전쟁 발발 이후 북한이 점령한 지역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의 여파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1951년 1월 작성된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의 보고서는 "이미 실시된 북한 토지개혁의 폐기에 분개할지도 모를 농민들의 반발 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해 농지개혁의 신속한 실행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해당 보고서는 북한이 점령지에서 실시한 토지개혁이 한국의 농지개혁에 비해 농민들에게 불리하다고 평가하며 한국의 농지개혁이 더 우월하다고 강조했으나 "대한민국 토지개혁 계획에 대한 주된 비판론은 실행 지연"이라며 한국의 농지개혁과 달리 불과 2개월이라는 점령기간 동안 북한이 토지개혁을 신속히 완료한 것에 대한 한국 농민들의 동요가 있을 것을 우려했다.

"농지개혁에서 이승만 중시 관점은 역사성과 역사적 맥락 무시한 것"
 
 정 교수는 농지개혁에 있어 이승만을 중시하는 관점에 대해 "이승만과 그 통치체제에 대한 미화를 추구하면서 기존의 전통적 연구들이 중시했던 한국 농업·농민 문제의 역사성과 농지개혁의 추진동력·역사적 맥락 등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농지개혁에 있어 이승만을 중시하는 관점에 대해 "이승만과 그 통치체제에 대한 미화를 추구하면서 기존의 전통적 연구들이 중시했던 한국 농업·농민 문제의 역사성과 농지개혁의 추진동력·역사적 맥락 등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 역사비평사
 
이처럼 한 위원장의 발언과 달리 농지개혁은 전쟁 발발 이전에 마무리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승만은 전쟁 발발 이후 농지개혁의 연기를 결정했으나 미국의 반대에 무산됐다.

해당 논문에서 정 교수는 "전쟁으로 중단된 농지개혁이 재개된 것은 미국의 정책적 판단과 북한점령기 토지개혁의 영향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또한 정 교수는 농지개혁에 있어 이승만을 중시하는 관점에 대해 "이승만과 그 통치체제에 대한 미화를 추구하면서 기존의 전통적 연구들이 중시했던 한국 농업·농민 문제의 역사성과 농지개혁의 추진동력·역사적 맥락 등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한동훈#농지개혁#이승만#정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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