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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같은 아파트 사는 친한 언니와 절연할 뻔 한 일이 있었다. 한 달여 남은 이사 사실을 남편을 통해 알게 만든 것이 화근이었다.

언니에게 말할 기회를 틈틈이 엿보다가 이젠 말해야지 결심하던 찰나, 버스에서 내리던 첫째가 언니의 아들이자 친구인 OO이에게 우리 곧 이사간다고 신이 나서 말해 버린 것. 갑작스레 흘러든 충격적인 소식에 귀를 의심한 언니는 아이들 데리러 갔던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남편은 하는 수 없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둘째아이와 집으로 들어온 내게 남편은 떨리는 눈빛으로 그 소식을 전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흑빛이 된 나는 바로 휴대폰을 집어 언니에게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보냈다.

"언니 내가 말하려했는데 타이밍이 자꾸 안 맞는 바람에... 갑자기 집 전세계약이 만료되서 급히 구하게 되어 이사가게 됐어."

그 말에 언니는 "나 지금 너무 충격먹어서 답을 못하겠어"라는 말만 남기고 그 밑에 달린 구구절절한 부연설명은 앞의 1을 굳건히 유지한 채 다음날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전 아이 유치원 같은 반 친구로 인연을 맺은 뒤, 신기하게도 같은 고향에 졸업한 중학교까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둘 사이의 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유치원 하원버스가 도착하면 우린 늘 함께 였다. 서로의 가정사도 시시콜콜 알고 있고 서로의 동선마저 속속들이 공유하는 어쩌면 남편보다 막역한 사이였다. 그리고 늘 내게 습관처럼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넌 안 지 이년밖에 안 되었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야. 우리 아이도 친구를 너무 좋아하고 진정한 친구래. 우리 오래오래 여기서 학교도 같이 보내고 잘 지내자."

언니가 얼마나 정을 깊이 주었는지 알기에 이사라는 말을 꺼내기가 더 어려웠던 것이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은 명백히 내 잘못이라 생각해 몇 번이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카톡방에 줄줄이 늘어선 1들이 사라지고 기다리던 답이 왔다.

"나는 너를 친동생이나 다름없이 가까이 생각했는데 너는 아닌 것 같아 너무 서운했어. 이사간다는 말을 미리 해주었다면 이토록 서운하진 않았을 거야."

나는 그 말에 가슴에 무언가 걸린 듯 턱 막혔다. 나는 나름대로 충격을 줄까 봐 고심하다 말을 못한 것인데. 언니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절대 멀어서 그런 행동을 한게 아닌데. 괜히 늦게 말해서 오해를 산 것이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고 지내며 서로를 생각하는 심리적 거리를 자로 잰듯 똑같이 맞추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고. 상대의 마음이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 건 참 위험한 일이구나 하고.

나는 내 선에서 최대한의 친밀함을 표시해왔고 상대가 상처받을까 배려한다는 것이 상대는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인간관계가 참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어쩌면 인간관계라는 건 자기식 대로 상대방을 생각하는 자기중심성때문에 어려운 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그래도 이년간 이어온 관계 마무리는 잘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도 언니가 너무 가깝다고 생각해서 언니의 충격받은 얼굴을 보는 게 힘들어 말꺼내기가 두려웠어. 내 선에선 최대한 언니에게 최선을 다해왔어. 절대 멀게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야. 이사 사실을 미리 알리지 못한 내 생각이 짧았어. 미안하고 또 미안해."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그전과는 다르게 언니의 카톡이 바로 왔다.

"속마음 말해줘서 고마워. 맞아 니 말대로 사람 사이의 친밀도는 서로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내가 충격먹을 것을 배려해서 미룬 것이고 나는 그 행동을 나를 멀리 생각해서 미루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생각에 속상해서 난 몇 날 며칠을 울었거든. 이제 마음이 살짝 누그러졌어."

인간관계라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내 선에서 상대를 향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자신이 정한 기준에 그만큼 못 미치면 서운하고 실망하게 된다. 

한결 부드러워진 언니의 답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나는 옆에서 놀이터를 가자는 첫째 아이의 성화에 못이겨 밖으로 나갔다. 시소를 타자는 아이의 말에 나란히 시소에 오른다. 늘 그렇듯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내가 앞으로 이동하고 아이는 맨 끝으로 가서 앉는다. 그제서야 맞는 수평에 신나게 발을 구르며 시소를 타다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관계도 그런게 아닐까? 감정의 깊이가 조금 더 무거운 사람이 앞으로 가고 가벼운 사람이 조금 더 뒤로 가야 수평이 맞는 게 아닐까 하고. 자신의 기준에 비추어 누가 중심에서 더 가깝고 멀고를 따지기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배려하며 즐겁게 관계의 시소를 이어가는 것. 살면서 우리가 자주 당면하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에서 크게 상처입지 않고 오랜 연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그나마의 해결책일 것이다.

아무리 인간관계가 힘들다해도, 관계를 이어나가며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고 해도 우린 그 관계를 끊고 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이기에. 인간관계가 미치도록 힘듦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 인간관계를 잘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나의 노력에도 불구 그 관계가 내게 상처만 준다면 과감히 시소에서 내려올 줄도 알아야 하고.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 글에도 실립니다.


#인간관계의기술#시소타기#건강한인간관계#균형#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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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에세이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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