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반일 영화라고 무조건 보겠나."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는 이상 좌파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나치게 갈등을 만드는 게 불편하다."
영화 <파묘>를 향한 때아닌 "반일 좌파 영화" 비난을 두고 관객들이 보인 반응이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27일 서울 중구 일대 영화관 2곳에서 만난 10여 명의 <파묘> 관람객들은 "영화를 정치적으로 몰아가는 게 피로하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거나 "주변에서 재밌다고 추천해 보러 왔다"며 논란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영화 평론가들 또한 "<파묘>를 이데올로기 영화로 주장하는 건 과장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속신앙과 풍수지리를 결합시킨 오컬트 영화 <파묘>는 독립운동과 밀접한 요소를 다수 배치했는데, 일각에선 이를 두고 "반일 좌파 영화"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은 26일 자신의 SNS에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며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을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평일에도 붐빈 영화관... "반일? 추천하고픈 재밌는 영화"
이날 오후 2~4시께 방문한 명동 일대 영화관은 평일임에도 <파묘>를 보러 온 관객들로 붐볐다. 대다수 관객들은 "반일 좌파 영화"란 주장을 "과도하다"고 일축하거나 "(<건국전쟁> 관람을 유도하려는) 의도적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비판했다. 관람 이유 또한 "주변의 호평과 추천", "영화 광고"라고 밝히며 평소와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27일 오후 2시 45분께 서울 중구 CGV 명동점에서 만난 50대 남성 김아무개씨는 "안 그래도 <건국전쟁> 감독의 기사가 많이 나와 궁금해서 봤는데 감독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운을 뗐다.
김씨는 "(논란과 달리) 영화의 메시지가 전혀 달랐다. 요즘 세상에 반일 영화를 만든다고 무조건 보는 것도 아닌데 그러한 주장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라며 "과도한 시비 같다"고 피로감을 호소했다.
인근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점에서 만난 20대 여성 김아무개씨는 "반일이란 주장은 무리라고 본다. 일제 때부터 소문으로 내려온 '풍수침략설'을 영화로 다룬 것 아닌가"라며 "지나치게 갈등을 만드는 게 보기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서울의봄>을 초등학교에서 단체관람하려고 했는데 (일부 보수단체들이) 시위를 벌이고 (민원을 넣어) 저지했다는 기사를 봤다"며 "(이런 행태가) 오히려 관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오후 3시께 CGV 명동점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50대 박정욱씨는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는 이상 (<파묘>를) 좌파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며 "<파묘>는 화장에 밀려 점점 잊혀지는 전통적인 이장 문화에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이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밝힌 백정민·김동현씨도 "딱히 좌파 영화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주변에 추천하고 싶은 재밌는 공포영화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60대 박아무개씨는 "호기심에 영화를 혼자 보러 왔다"며 "옛날 미신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다보니 '조상을 잘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후기를 전했다.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점에서 오후 4시 30분께 만난 50대 남성 정아무개씨도 "지인들이 다들 재밌다고 하길래 관람했다"며 "제목만 보고 단순히 조상 묘에 얽힌 얘기인 줄 알았는데 영화가 너무 어려워서 좌파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고 웃어넘겼다.
20대 남성 김주형씨도 "일본과 관련된 역사적 내용을 다루는 다른 드라마나 영화도 많은데 이를 반일이라고 보는 것은 정치적 관점인 것 같다"며 "영화의 개연성과 배우들의 연기 같은 요소로 판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 평론가 "반일 영화? 주객이 전도된 주장"
영화 평론가들은 <파묘>가 정치적으로 편항됐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파묘>의 장재현 감독은 4~5년에 한 번 영화를 내놓는, 영화를 쉽게 찍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파묘>는 자신이 본래 즐겨 연출하던 오컬트라는 장르에 역사를 포함해 여러 주제를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요즘 세상에 반일 영화라고 대중들이 보러가는 것도 아니고, 반일 마케팅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볼 수 없다"며 "<파묘>에 항일적 요소가 들어가나 일부분일 뿐인데 이를 이데올로기 영화라고 말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주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도 "<파묘>는 오컬트 영화인 척하지만 내면의 어둠, 우리 사회가 실패한 역사 청산 문제를 악귀라는 존재를 통해 드러냈다"며 "장르영화의 기법으로 사회·역사적 주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신선하게 생각한다고 본다"고 <오마이뉴스>에 전해왔다.
지난 22일 개봉한 <파묘>는 지난해 누적 관객 1300만 명을 기록한 흥행작 <서울의봄>보다 이틀 먼저 2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서울의봄>은 개봉 엿새 만에, <파묘>는 나흘 만에 누적 관객 200만 명(27일 기준 292만 명)을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