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노동 외에 돈을 버는 방법이 없을까?" 성찰과성장은 '노동시장 너머 새로운 대안 제시하기'라는 주제 아래 3편 연재를 통해, 기존 노동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 구조를 상상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전통적인 노동시장의 구조와 내재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의 형태를 모색한다. [기자말] |
들어가며
이 글은 '왜 우리가 하루 24시간 중 8시간 이상을 원치 않은 곳에서 원치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강제적으로 일을 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려받은 자산이 있다면 '먹고사니즘'에 대한 고민이 덜 하겠지만 자산이 없는 사람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어떤 일을 하고 돈을 벌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중 약 80%는 누군가의 밑에서 임금을 받으면서 살아간다(2024년 1월 기준 비임금근로자는 22.7%, 임금근로자는 77.3%이다).
강제적인 일
직장인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은 강한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누군가'는 우리가 흔히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이들은 직원을 항상 감시하고 통제하려 한다.
사무직으로 일했던 본인의 경험을 꺼내보자. 사장(또는 관리자)은 심심할 때마다 사무실로 조용히 들어와 돌아다녔으며(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는 오래 쉬는 직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20분 이상 자리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사장의 '꼼꼼한' 지시는 열심히 일하는 구성원의 의욕을 꺾는 데 영향을 끼쳤는데, 그 지시를 유발한 장본인(너무 많이 쉬고, 꼼수를 부려서 일을 안 하던 사람)들이 그 후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시를 지키는 사람은 기존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직원들이었고 이들은 괜히 회사에 대해 없던 불만만 품게 되었다.
사장의 감시와 통제는 수익을 얻기 위한 그리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임을 안다. 하지만 이 행위 때문에 회사에서 8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노동 의욕이 꺾이기 마련이다. 거기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만들어낸 모든 생산물은 사장이 소유(정확하게는 회사가 소유하는 것이지만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장은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하기 때문에 일에서 느끼는 효능감은 점차 사라진다.
그럼에도 직장인은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그저 매월 통장에 급여가 입금되는 것을 바라보며 산다. 일을 그만두면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불안정 일자리가 확대되고 부동산 가격이 임금을 저축하는 것으로는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짐에 따라 직장인의 비애가 더욱 심해졌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은 가계부채를 높이는 데 영향을 주었다(박대근, 최우주, 2015). 통계청 데이터(주택매매가격지수, 아파트 규모별 매매 실거래 평균가격 등)를 활용하여 구한 수도권 85㎡ 아파트의 매매 가격은 2000년 1억 3천 6백만 원으로 2000년 근로자가구의 월 평균 근로소득 200만 원의 68배 정도 되는 가격이었으나, 2022년에는 6억 2천만 원으로, 2022년 월 평균 근로소득 470만 원의 132배 정도 되는 가격으로 올랐다(참고로 2022년 서울 85㎡ 아파트 가격은 가구 월 평균 근로소득의 230배이다).
근로소득의 절반을 부동산 구입을 위해서만 저축한다고 가정해도 2022년 기준으로 22년을 모아야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겨우 구입할 수 있다.
이는 아파트 구입을 위해서는 사실상 부채를 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근로소득 470만 원이 평균값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소득분위의 60%는 평균 근로소득에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은 자가 구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세로라도 살기 위해 부채를 지니고 거주할 곳을 얻는다.
과거 경제성장 시기 직장인은 자유시간을 위해 직장생활을 버텼지만 지금의 직장인은 부채를 갚기 위해 직장생활을 버틴다(장훈교, 2019).
사장이 된다면?
필자가 직장인이었을 때 겪었던 일들 그리고 주변 직장인 지인의 생각들을 종합하여 알게 된 것은 많은 직장인은 (당연하게도) 출퇴근을 싫어하고, (생각보다) 회사에 애정이 없으며, 회사가 성장하든 말든 자신의 일자리와 임금에 타격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사장의 자녀로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지인의 생각과 행동은 완전히 다르다. 그는 업계 특성상 하루에 12시간을 근무하며 간혹 일이 몰렸을 때는 밤 12시까지 일하기도 하고, 일요일이나 연휴 때도 출근한다(이 업계에서 대부분 그렇게 일한다).
기본적인 노동 강도가 매우 높은데도 이 지인은 동료 직원보다 더 빠르게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한다. 그는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사의 안위를 걱정하고, 쉬는 날에도 생산 기계가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회사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의 행동 속 숨겨진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의 자본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커질수록 자신이 소유할 자본이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직장인과 사장 자녀가 가지는 태도의 근본적인 차이는 생산수단의 소유(예정)여부이다. 생산수단은 토지, 기계, 설비, 공장, 건물 등 무언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한다. 사무직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사무실, 의자, 책상,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린터, 인적네트워크 등도 생산수단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제와 감시 속에서 일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소유하지 못함에도 '직장인 되기'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정리하자면 직장인은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에 하루 8시간 이상을 통제와 감시 속에서 일하고, 스스로 창조한 것을 갖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상황 즉,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객관적 조건'을 '노동 소외'라고 칭했다(최일붕, 2023).
우리는 노동소외로 인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시간을 '임금획득을 위한 시간'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우리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경쟁하고, 취업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회사의 감시 속에서 발버둥 친다. 참고 살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커지는 빈부 격차, 낮아지는 경제성장률, 불안정한 일자리, 나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국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압박한다.
고백하자면 본인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 압박에서 벗어났다. 먹고 살 고민을 하지 않고 원하는 공부와 활동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고민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매일 보람차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필요한 첫 번째 방안은 바로 노동소외를 해소하는 것이다.
노동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노동소외를 개인의 문제로 보고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여 생산수단을 획득함으로써 노동소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직장인 생활이 싫다면 주식, 코인, 파생상품, 부동산 등에 투자해서 자본을 모으고 사업을 차리면 된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최근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벤 칼슨, 로빈 포웰의 <경제적 자유: 돈의 알고리즘>(2023)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는 '돈으로 얻는 자유'를 뜻한다.
경제적 자유는 학문적으로 사유재산권을 강조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과 시민의 도덕적 능력 계발을 강조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나(황재홍, 조필규, 2015) 요즘 대다수가 사용하는 '경제적 자유'는 전자의 관점에 따른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시각은 노동소외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인식한다. 직장인이 투자를 잘해서 자본을 모으고 사업을 차려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자영업자 중 영세 자영업자(고용원 존재 여부 기준)의 비중이 74%인 것을 보면 이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또한 회사의 성장을 통해 주식 배당금을 받는 이상적인 투자 방식과 다르게 앞에서 말한 주식, 금융상품, 부동산 등 돈을 한 번에 많이 버는 투자 방식은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 돈을 벌면, 다른 누구는 돈을 잃는다.
따라서 거시적으로 봤을 때 직장인이 사업가가 되는 것은 '노동소외'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필자는 노동소외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가 되었든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고용되어 감시 속에서 살아가지 않더라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대다수가 겪는다고 해서 '노동소외' 현상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며, 노동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오며
필자는 세 편의 글을 통해 노동소외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를 모두의 노동이 "생명의 자유로운 발현이 되고 인생의 즐거움"(최일붕, 2023)이 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2편에서는 노동시장의 의미와 노동시장이 없었던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는지 짚어보고 능력주의를 넘어서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월요일 아침이 싫은 이유는 '일을 해야 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강제로 돈 버는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단지 개인의 불평불만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부딪쳐야만 하는 객관적인 조건이자 구조의 문제이다. 세상에는 많은 것이 이해 불가투성이지만, 거기에 한 가지 의문을 더해보자.
"왜 나는 매일 출근해야 하는 거지?"
*참고문헌
박대근, 최우주, 2015, '가계부채의 결정요인에 대한 패널자료 분석: 주택가격과 대출심사기준을 중심으로', 경제연구, 33(1)
최일붕, '마르크스주의의 방법 (1) 노동소외(https://wspaper.org/article/29843)
벤 칼슨, 로빈 포웰, 2023, 『경제적 자유: 돈의 알고리즘』, 인사이트엔뷰
황재홍, 조필규, 2015, '경제적 자유와 사회정의 신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경제학보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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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 및 편집 : 신동주, 박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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