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치시민물결과 기후정치바람 그리고 단비뉴스는 4월10일 총선이 기후위기 대응의 전환점이 되도록 각 지역 후보의 기후정책을 점검하고 기후유권자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연재합니다.[기자말] |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핵사고로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죽고 병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을 잃어버렸고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어떤 동물들은 가족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고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폐허가 된 후쿠시마 핵발전소 부지의 깊은 지하에는 녹아버린, 뜨거운 핵연료가 그대로 있다. 그것을 식히느라 쏟아부은 오염수가 작년 8월부터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후쿠시마의 노동자들이 피폭되고 있고,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이 재난은 13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16일 오후 서울시 중구 을지로입구역 일대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기후정의동맹 등 8개 단체가 주최한 '후쿠시마 핵사고 13년: 에너지전환대회'가 열렸다. 탈핵부산시민연대 임미화씨는 공동선언문을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와 핵발전소 그리고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정부와 정치권을 비판했다.
'가스 민영화' 딱지를 뒤집어라
에너지 전환 대회는 본 행사인 선언대회 시작인 오후 2시부터 참가자 800여명이 내뿜은 열기로 달아올랐다. 대회장 주변에는 에너지 공공성, 재생에너지, 탈석탄, 핵 오염수, 탈핵, 기후정치 부스가 세워져 있었다.
에너지 공공성 부스 앞에서 사람들은 딱지치기에 열중이었다. 사람들은 '가스 민영화 저지'라는 딱지를 뒤집으려고 애썼고,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딱지가 뒤집어지자 환호했다. 부스를 준비한 민주노총 조합원 이종훈씨는 "천연가스는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민영화되어 있으면 감축이 어렵다. 천연가스가 공공화되어야 자연스러운 전환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핵오염수 부스에서 아이들은 문어와 바다생물을 가지고 색칠놀이를 했다. 한살림(생활협동조합)의 박예진 활동가는 "일본이 핵 오염수를 방출하니 시민들이 먹거리에 대한 불신을 갖는 것"이라며 "국내 농어촌 생산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바로 옆 부스 아이들은 종이접기에 빠져있었다. 한 아이는 색종이로 접은 자주달개비꽃을 쥐고 뛰어다녔다. 자주달개비꽃은 원래 보라색이다. 그런데 피폭되면 분홍색이나 흰색으로 변한다. 종교환경회의 김혜연 활동가(40)는 "자주달개비꽃은 방사능의 위험을 알려준다"며 시민들에게 자주달개비 꽃 씨앗을 나눠주었다.
그 옆에서는 땅따먹기를 했다. 각 칸에는 탈석탄, 탈핵, 생태헌법, 기후정치가 적혀 있었다. 맨 처음 비틀거리던 아이들도 금세 깨금발이 능숙해져 '탈핵' 칸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 왔다.
녹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단체로 도착했다. 녹색정의당 당원들이었다. 국립기상과학원장으로 있을 때부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려온 조천호 후보도 있었다. 그는 지난 2월 이 정당의 1호 인재로 영입돼, 비례후보 8번을 받았다. 그가 <단비뉴스>에 말했다.
"기득권 정치·경제 세력 때문에 기후 담론이 떠오르지 못합니다. (기후위기처럼)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해요.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는 세상의 흐름 자체에 대해 왜곡된 관점을 갖고 있어요. 반도체 공장을 위해 핵발전을 하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기후유권자 외면하면 희망 없다
하지만 이날 에너지 전환 대회에 모인 참가자 열기와 달리 기후위기는 좀체 총선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이날 만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그럼, 이번 총선에 어떤 의제가 떠오르고 있냐"고 되물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정치권에는 막말, 상호비방, 공천 논란밖에 없습니다. 반면 사람들은 '기후유권자'라는 단어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지난달 녹색전환연구소 등이 발표한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 보고서'에 따르면,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들면 투표를 고려하겠다고 밝힌 '기후유권자'가 국민의 62.5%에 이른다. 1만7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기후대응 공약이 마음에 들면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정당이나 후보라도 투표를 고민하겠다'는 이도 5명 중 3명꼴이었다.
이유진 소장은 "국민의힘 정책에는 사람이 없고 기술적인 해법만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틀에서 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탈핵 부스는 핵폐기물 지도를 만드는 곳이었다. 하헌종(65)씨는 '한빛 2호기'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한참 망설였다. 그는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네"라며 멋쩍게 웃었다. 진행 요원들이 힌트를 주자, 한빛 2호기 카드가 전라남도 영광군에 꽂혔다.
퇴직 교사인 그는 경기 양평에 사는 녹색정의당 당원이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무단투기 중단 피케팅을 홀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식 세대에게 느끼는 부채감을 토로했다.
"교사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성적과 경쟁을 강조했습니다. 그것도 미안한데 핵발전소는 늘어나고, 일본은 핵 폐수를 바다에 버립니다. 아이들의 지속 가능한 삶이 어려워지고 있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이번 대회에 참여한 것도 '속죄'를 위해서였다. 그는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핵발전소 싫어"라고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부스를 떠났다.
독일 최대 환경단체도 "한국 재생에너지 확대해야"
이날 오후 3시가 되자 참가자들이 모여 선언대회를 열었다. 선언 주제는 ▲핵 진흥 정책 중단 ▲핵오염수 투기 중단 ▲석탄발전 중단 ▲시민 주도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가스 공공성 확보 ▲기후 총선 등 6가지다.
최경숙 일본방사성 오염수해양투기저지 공동행동 상황실장은 오염수 안에 세슘137, 아이오딘159, 스트론튬90 등 방사성 물질들이 있다며 "독은 물로 희석해도 독"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염수 해양투기를 멈추고 핵 발전을 멈추라고 일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게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독일 최대의 환경단체인 분트(BUND, 독일환경자연보전연맹)의 리처드 메르그너 회장과 후버트 바이거 박사도 이번 대회를 찾았다.
단상에 오른 메르그너 회장은 "평화로운 핵에너지와 평화롭지 못한 핵무기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를 원하면 원자력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거 박사도 "독일은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했다. 세계 반핵 활동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단비뉴스>와 인터뷰에서 "미래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는 한국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더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눈앞의 표만 보는 정치권, 정말 중요한 게 뭔가?
권우현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기후정치가 실종됐다. (정치가) 큰 틀의 전망을 제시하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의 정치는 한 사회의 돌봄과 지속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득표, 정치 공약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녹색정의당 비례후보 2번 허승규 후보도 "고준위폐기물특별법을 '도둑 입법'하지 말라"며 거대 양당에게 경고했다. 고준위폐기물특별법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영구처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날 대회는 오후 5시께 공동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끝났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우리는 모두 바다를 통해 연결된 사람들이며, 그들의 고통이 곧 우리의 고통"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퇴출 계획 마련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구체적 대책 마련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거나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 등을 정부와 각 정당에 요구했다.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어 올렸다. 맨 앞줄에는 10m 길이의 하얀 현수막이 펼쳐졌다. '안전하게 살고 싶어' 등 손수 적은 문장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