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는 2012년 7월 전국 최초로 '무장애 도시'를 선언하고, 2013년 조례를 제정, 2015년 진주형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인증제 시행 등 독자적인 무장애 도시 시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현재 진주 등록 장애인은 1만 8047명으로 진주 전체 인구가 34만 6962명인 것을 고려하면 약 5.2% 이상의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장애인 복지예산총액은 574억 원으로 인구수 대비 3.75%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진주시 전체 복지예산 총액 1조 5292억, 2023년 기준). 이는 경상남도 장애인 복지 예산 4.17% 비해 낮은 수준이다... 기자의 말
장애인 복지예산 3.75% '무장애 도시' 진주의 현실
2022년 2월부터 진주장애인자립센터를 이끌어가는 민석씨를 만났다. 민석씨는 올해 31살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다. 거리에서 '장애인 이동권과 장애인 노동권 보장' 관련 1인 시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애인 화장실을 찾을 수 없어 목이 말라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버틴 하루였다.
드디어 물 한잔을 마시고 습관처럼 뉴스를 시청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진주시청 기자회견실, 비장애인들이 단상에 올라 자신들의 주장을 외치고 있었다.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휠체어를 탄 나도 단상에 올라갈 수 있을까?'
◆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단상을 위해
- 진주시청 기자회견실 '단상 경사로'는 설치되었나요?
뉴스에 기자회견실이 나올 때마다 '언젠가 회원들과 함께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아뿔싸, 유심히 단상을 살펴보니 '턱'이 있었다. 얼핏 보면 비장애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턱이지만, 두 바퀴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는 오를 수 없는 단상이었다.
다음날 서둘러 시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진주시가 무장애 도시인데'부터 시작해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까지, 길고 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시 한 번 경사로 설치를 요구했다.
"그럼, 휠체어 타신 분들은 단상 밑에서 하면 되지 않나요?" 담당자의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대로 물러 설 수 없었다. "그건 담당자님이 결정하실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상 위에서 할지 말지는 당사자가 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곧이어 담당자는 "사람들 통행에 방해가 되어 창고에 경사로를 보관하고 있으니, 필요할 때 요청하면 설치해주겠다"며 이쯤에서 마무리 짓자고 했다. 민석씨는 개인이 필요할 때 요구하는 경사로가 아닌 휠체어를 탄 장애인 누구나 상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장벽 없는 단상'을 만들고 싶었다. 몇 번의 실랑이 오간 후, 담당자는 경사로가 설치된 단상 사진을 보내왔다.
◆ 장애인에게 버스 타기는 '하늘의 별 따기'
- 저상버스 타기 수월해졌을까요?
사람들은 "저상버스 타는 장애인 못 봤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안 타는 게 아니라 못 타는 거다.
지난 2월 전동휠체어 타는 회원 2명, 비휠체어 회원 2명과 함께 저상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날 바람이 꽤 불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경상대 정문에 1시 30분에 모여 저상버스를 기다렸는데 1시간 넘게 기다려서야 겨우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 기사님이 정류장에 바짝 진입하지 못하면 수동경사로가 보도에 닿지 못해 승차가 어렵다. 서너 번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 끝에 정류장 가까이 붙여주시는 고마운 기사님도 계시고, 가끔은 휠체어를 못 본 척 지나가는 버스도 있다.
버스정류장 도로 경계석 높이가 18~22cm여야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안전하게 저상버스에 탑승할 수 있다. 그런데 진주 시내버스 정류장 곳곳의 보도 높이는 제각각이다. 10cm 이하로 너무 낮거나 25cm 이상 너무 높아 저상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님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부분은 시에서 나서서 재정비를 해줘야 한다. 저상버스만 무턱대고 구입할 것이 아니라 버스정류장 관련 모니터링도 하고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그런데 장애인 복지 예산은 불과 3.75%(진주시 전체 예산 대비, 2023년 기준)에 그친다. 그마저도 장애인 시설 운영비로 지원되거나 장애인단체 행사지원에 예산이 편중되어 있어 정작 필요한 부분에는 예산이 쓰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 탑승이 끝이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저상버스 타기 캠페인을 통해 저상버스 기사님들이 '수동경사로' 사용법을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막상 전동휠체어를 태워야 하는데 한 번도 '수동경사로'를 펼쳐본 적이 없어 당황하는 기사님을 만나기도 한다.
버스에 탑승하면 전동휠체어를 고정 장치로 단단히 묶어야 하는데 전동휠체어 안전장치 사용법을 모르는 기사님도 계신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배차 시간에 맞춰 운행해야 한다며 건너뛰기도 한다. 고정을 못하니 신호등에서 급정거라도 하면 전동휠체어가 앞으로 쏠린다. 그럴 땐 온힘으로 앞좌석을 잡고 '시간아 빨리 흘러라'고 버티는 거다(웃음).
김민석: 수고하십니다. (그런데) 기사님 전동휠체어도 버스에 탈 수 있습니다.
버스기사: 전동휠체어 안 태워도 된다고 했다.
김민석: 누가 그렇게 말했나요?
버스기사: 버스 안에 전동휠체어가 움직이면 다른 사람 다치게 할 수 있다 아이가. 일반 수동휠체어는 태워야 하는데, 전동휠체어는 안 태워도 된다고 했다. 내가 다 알아봤다. 그럼 버스에 오토바이도 태워야 하게….
김민석: 아닙니다. 전동휠체어는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버스기사: 그라고 버스를 탈 거면 미리 나와서 손짓을 크게 해라 안 보인다 아이가. 그런 식으로 버스를 세우고 그러면 내가 참 난감해.
김민석: 버스를 타겠다고 크게 손짓을 했습니다.
버스기사: 진주시에 함 알아봐라, 전동휠체어는 안 태워도 된다 했다.
김민석: 기사님 책임질 수 있습니까?
버스기사: 어, 내가 책임진다. 한 번 알아봐라.
민석 씨가 버스에서 내린 후 저상버스 기사와 나눈 대화
(출처: 2023년 10월 29일 본인 페이스북)
민석 씨의 요구는 거창하지 않다. 단지 버스를 타자는 것뿐이다
장애인 콜택시 '경남특별교통수단'
◆ '장애인들은 휠체어 콜택시 타면 되잖아'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휠체어 콜택시는 지자체 및 장애인단체 등에서 장애인의 교통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운영하는 '택시 호출 서비스'다. 진주시 교통약자 콜택시는 카니발 38대가 운행된다. 콜택시의 운행시간은 오전(7-17시) 4대, 주간(8-18시) 20대, 오후(12-19시) 6대, 야간(17시-24시) 6대, 심야(18시-익일08시) 2대로 운행되고 있다
장애인들은 편한 '콜택시'가 있는데 굳이 버스를 타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 창원에서 회의를 마치고 진주로 돌아오는 길에 휠체어 콜택시를 부른 적이 있다. 대기자수는 29명, 콜센터 상담원은 언제 도착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도착 시간을 가늠할 수 없으니 콜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3시간 동안 기다린 적도 있다. 시내 요금은 최대 2천 원, 시외의 경우 시외버스요금의 1.5배가 발생한다. 부산 등 먼 거리에 있는 병원을 다니는 장애인들에게는 이마저도 부담스럽다. 또한 야간이나 심야에는 운행 대수가 적어 이용하기 어렵다.
- 비 오는 날은 어떻게 이동하세요?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쓸 수 없다. 두 손으로 전동휠체어를 조작해야 하니 우비를 차려입는다. 우비에 달린 모자를 쓰면, 시야가 가려져 주변을 살필 수 없어 위험하고 불편하다. 아무래도 비 오는 날 외출은 피하게 된다. 적당히 내리는 비 정도는 맞고 다니는 편이다.
◆ 주변 공간 여전히 장벽 느껴져
- 전동휠체어로 이동 시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요?
전동휠체어로 이동 시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장애 당사자에게 전동휠체어는 신체의 일부이다. 음식의 맛이나 메뉴를 고민하기보다,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공간 확보가 되는지,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지 미리 확인을 거친 뒤 식당을 정한다.
한동안 장애인 이동권 관련해서 시청 근처에서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근처 식당은 많지만 전동휠체어 출입이 가능한 것은 딱 한 곳뿐이었다. '프렌차이즈 햄버거 가게'. 그렇다고 햄버거만 맨날 먹을 수도 없고, 그럴 때면 끼니를 거르게 된다. '강제 다이어트'라고나 할까(웃음).
유등축제 기간에 친구들이 놀러 와서 진주성에 간 적이 있다. 평탄해 보이지만 구석구석 경사가 가파른 탓에 위험했다. 수동휠체어의 경우에도 경사가 가파른 탓에 동행인이 없으면 이동이 어려웠다. 진주가 축제의 도시라는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시설에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 진양호 전망대 노을이 예쁘다던데 아직 가보질 못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바다가 보고 싶어 부산 해운대에 간 적이 있다. 해변 입구까지는 전동휠체어가 들어가지만 모래사장에는 휠체어 바퀴가 움직이지 않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돌아와야만 했다.
영화관 같은 경우 장애인석이 있긴 한데 진주시내 A극장은 스크린이 있는 맨 앞자리가 장애인 지정석이라 내내 화면을 올려다봐야 한다. 영화가 끝나면 서서히 뒷목이 당기고 아프다. B극장은 양쪽 끝에 장애인석이 한 좌석씩만 배치되어 있다. 대개 영화관은 데이트하러 가는 곳이기도 한데, 그럴 때면 친구랑 떨어져서 봐야 하는 점이 아쉽다. 비장애인들에게는 "어디서 보시겠어요?"라고 묻지 않는가? 장애인도 지정석이 아닌 각자가 '원하는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 장애인도 실패할 기회를 얻는 사회가 됐으면
- 앞으로 활동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사람들은 장애인을 보면 "늘 도와줘야 한다"며 혀를 차거나 마음 아파하는데 막상 장애인들이 권리를 외치면 "장애가 벼슬이냐"며 불같이 화를 낸다.
우리가 바라는 건 동정이 아니다. 우리도 당당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가장 기본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만이라도 안전하게 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하기 전에는 내 장애만 잘 극복하면 세상이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장애가 마치 내 잘못 같았고 벌을 받는 거라 생각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기 위해 재활운동을 열심히 하고,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2016년 장애인 자립모임을 시작하면서 내 삶에 다른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함께 싸우는 장애인 당사자와 지지하는 시민들을 만나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모두 용기를 내서 한 발짝 나오면 좋겠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무엇이든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뭔가를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언제나 도움을 받기만 하는 장애인이 아닌, 신나게 싸우는 장애 시민이 되는 그 길을 함께 만들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단디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