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조용하지만 꾸준히 언급되는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윤석열 정부의 '출판계 예산 삭감'. 각종 분야에서 해당 이슈로 이미 여러 일이 생긴 것을 보며 도서관도 멀지 않았음을 느꼈지만, 막상 눈으로 직접 현실을 마주하니 착잡한 마음이 소용돌이 친다.
나는 서울 모처에 있는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아직 1년 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 사서임에도, 구립에서 중요시하는 도서관에 소속되어 있어 이 일이 도서 관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예산 삭감으로 마주한 현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독서·서점·도서관·출판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독서운동이나 문화활동처럼 책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지원이 사라져 시민들이 책을 통해 누려온 문화 향유 기회마저 사라지는 모양새다. 출판·독서 분야에서 없어진 정부 지원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사업'(2023년 기준 60억원)으로 정부는 대체로 '중복성 있는 사업을 폐지하고 지역사회 중심의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것은 없다.(...)'
최근 접하게 된 <한겨레> 기사를 요약한 내용이다(3월14일자, '"책 읽지 말란 얘기"...정부 예산 줄삭감에 출판·서점계 비명' 기사). '도서관 정책 개발 및 서비스환경 개선' 약 52억, '도서관 기반 조성' 약 30억, '도서관 실감형 창작공간 조성' 전액(19억) 삭감... 수없이 많이 깎인 예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는 날은 도서관의 공기가 유달리 무거워지곤 했다. 주어진 예산에 맞춰 이미 정했던 계획을 수정하거나 취소해야 했다. 그걸 위해 회의하는 시간으로 인해 다른 업무들은 밀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쳤음에도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음을, 이후에 전달되는 내용과 분위기를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한동안은 도서관 외벽에 걸린 예산 삭감과 관련된 내용의 현수막을 보며 출근을 하기도 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사서들끼리는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거 괜찮은 거죠...?"
"글쎄요..."
"이러다 도서관 문 닫는 건 아니겠죠..?"
"아니길 바라야죠..."
그렇다면 예산이 삭감되면서 현장에 생긴 문제는 무엇이 있을까. 근무를 하면서 직접 겪은 것 중 몇 가지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른 곳엔 앞으로 일어날 일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로 도서 구입비가 줄어들었다. 도서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은 1~2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신간도서를 구입한다. 그런데 예산이 깎인 후로는 들어오는 새 책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어느 곳은 장서 구입량이 20~30% 정도만 감소한 반면, 어느 곳은 구입량이 50% 정도 감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구매해주는 희망도서 서비스도 예외는 아니다. 신청이 들어오는 도서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구매되는 책의 양은 이전에 비해 약 20% 정도가 줄어든 것이다. 신청 도서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하고, 그 탓에 반려되는 도서가 더 많아진 도서관도 있다고 들었다.
두 번째로는 지원 사업이 축소되었다. '북스타트'와 독서동아리 활동 지원, '책의 해' 행사 예산이 전부 없어진 것이다. 때문에 데스크 업무 중 하나였던 북스타트 신청 접수는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버렸고, 동아리 활동 지원비는 절반으로 줄어들거나 완전히 없어진 곳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편성된 예산이 줄었으니 자연스레 프로그램 기획에도 제한이 생긴 것이다.
마지막으론 각종 운영비들이 확 줄어들었다. 도서관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사서의 수가 전보다 더 적어진 탓이다. 사서 한 명이 맡는 업무의 양이 2~3개에서 4~5개로 늘어났고, 인력이 부족하니 이용자 서비스에도 문제가 생겼다. 예를 들면 데스크에서 대출, 반납을 돕는 사서가 2명이었던 곳이 1명으로 줄어 대기 시간이 길어지게 됐다. 혹은 그마저도 기계로 대체되어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업무 처리를 하거나 이용자 요청 도서를 찾으러 서가에 가야 하면, 부득이하게 데스크를 비우게 된다. 그러면 대출·반납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다른 이용자들이 줄을 선 모습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게 된다.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인데
이외에도 아직 무인대출반납기가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겪는 불편도 있다. 직접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돕고 있지만 바쁠 때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세부적으로 보면 시설 운영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서가나 물품을 교체하기는 어려워졌고, 리모델링 같은 큰 공사는 이제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는 난방이나 냉방 같은 작은 시스템에도 비용 관련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된다. 일례로 오래된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거나 고장이 나면 교체를 해야하는데, 통상 문제가 해결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접수 민원도 그만큼 늘어나곤 하기 때문이다.
만약 문헌정보학을 공부했거나 한 적이 있다면, 공공도서관의 기초적인 기준이 되는 '랑가나단의 도서관 5법칙'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5법칙에서는 도서관을 일컬어 '성장하는 유기체'라고 말한다. '책 대여'라는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와 주변 이용자들의 욕구에 맞추어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출판계 전반, 책 이용 문화가 위축되는 상황을 보면 먼 미래에 도서관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공공도서관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장서(도서)와 사서, 이용자가 변하지 않고 무사히 다시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부디 그렇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