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률 저하 문제로 전 사회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통계청의 2월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합계 출산율은 0.65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추락했다. 지난해 1분기 0.81명, 2·3분기 각각 0.7명 등 후반으로 갈수록 더 떨어지는 모양새다.
저출생 대책과 '육아 기계'의 양산
고용노동부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3월 18일 저출생 문제에 대응한다며 '일·생활 균형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저출생 문제에 있어서 '일·생활 균형'이 가장 중요한 해법이라는 판단에서다.
고용노동부 보도자료를 보면 이날 세미나에서 이목을 끈 대책은 ▲자동육아휴직,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집중 근무시간'과 '시차출퇴근제' 등으로 초과근무 줄이기, ▲유연한 연차·휴가제도 등이다. 정부는 육아휴직 제도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 등을 확대 운영할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정부의 저출생 해법은 물리적인 육아, 돌봄 시간 확보에 집중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모색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저출생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육아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만으로 개인의 삶의 질이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저출생 대책이 '육아 기계' 양성방안이 될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가 저출생 대책으로 '일·생활 균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취지는 좋지만, '일·생활 균형'은 노동시간과 육아시간의 균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케임브리지 사전(Cambridge Dictionary Website)에 따르면, 일·생활 균형(Work-life balance)은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나 여가시간 대비 일로 보낸 시간'으로 정의되어 있다. 한마디로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이라고도 하며, 이는 삶의 질과 연동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서는 자녀를 돌보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족과의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보내는지,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연결되어있는 사회구성원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등도 고려되어야 한다.
퇴근 후 아이들 밥 챙기기와 설거지, 숙제 봐주기, 집안 정리 등을 하다가 지쳐 쓰러져 잠자리에 드는 삶을 두고 '워라벨'이 높아졌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비스노동자의 분절된 가족 시간
이런 측면에서 '주말'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 여가활동을 즐기고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데 있어 주말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보통 서비스노동자들은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는 경우가 많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근로환경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서비스업 노동자의 64%가 토요일에 일하고 있었고, 36%는 일요일에도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평일이나 주말에 가족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서비스노동자들이 쉬는 평일의 경우 자녀들은 학교와 학원으로, 배우자는 직장으로 일을 하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반대로 다른 가족들이 쉬는 주말의 경우 서비스노동자들은 일터로 나가야 한다. 결국 가족의 시간이 분절되어 나타나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가족과의 시간뿐만 아니라 친구와 보내는 시간 등도 마찬가지다.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면 되지 않냐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가족이나 친구와 보내는 시간, 여가시간, 사회구성원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주말에 쉬는 것과 평일에 쉬는 것을 물리적인 시간으로 단순하게 비교할 순 없다.
그래서 많은 연구에서 '일·생활 균형'을 수치로 측정하는데 있어 주말에 일하는 노동자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를 주요한 지표 중 하나로 보고 있다(노혜진. 2023, "일-생활 균형시간 보장의 유형화", 『보건사회연구』 43[2]).
최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하자는 움직임이 보수 정당이 차지한 지자체 등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윤석열 정부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마트노동자에게 주말 노동을 강제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일과 생활의 균형'을 빼앗는 것이다.
작년 12월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청주지역 마트 노동자를 대상으로 의무휴업일 변경 전·후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비교한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의무휴업일이 평일로 변경되면서 여가, 가정생활, 사회생활을 위한 시간이 줄어든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부가 한편에서는 '일·생활 균형'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마트노동자의 주말 휴식권을 빼앗는 것은 모순이다.
해외여행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처럼 밤늦게까지, 주말 내내 상점이 운영되는 나라가 드물다는 것을 보게 된다. 24시간, 1주일 내내 불 꺼지지 않는 상점들을 보는 것이 꼭 좋은 것일까? '일·생활 균형'이라는 가치가 주목받는 지금, 주말에 일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기다.
물론 산업의 특성상 주말에 일해야 하는 서비스노동자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도 "주말 대신 평일에 쉬면 되지"가 아니라 많은 이들의 '주말'을 지키기 위해 일하고 있는 이들의 노동 가치가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백남주씨는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