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0일 "현재 우리 제도는 세계적인 상장 대기업들의 소유와 경영 분리를 일반화·보편화시킨 것이어서 우리 기업들에게는 매우 비현실적"이라며 가문의 기업 승계를 쉽게 만드는 상속세 부담 대폭 완화를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동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51회 상공의날 기념식에서 특별강연을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기업인들께서 많이 힘들어하시는 가업 승계 문제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업 생존과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펴봐야 한다"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제대로 실행되려면 경험과 관행이 축적돼야 하고, 시장 여건도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상속세 신경쓰느라 혁신 엄두 못 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그는 "우리나라는 가업 승계를 단지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세율이 매우 높고 또 요건이 아주 까다로운 가업 승계 제도가 만들어졌다"며 "이제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1세대를 지나 2세대·3세대로 넘어가고 있는데, 상속세를 신경쓰느라 혁신은커녕 기업 밸류업이나 근로자 처우 개선에 나올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입니까? 누가 이런 현실에서 마음 놓고 기업에 투자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은 "독일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30%로 우리나라의 50%보다 훨씬 낮고,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것도 고용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최대 10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며 "그 결과 오늘날 독일은 세계 최대의 히든 챔피언과 100년 기업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고 짚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원활한 가업 승계를 통해 장수 기업이 많아지고, 이를 통해 고용도 안정되고 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개혁은 무엇보다 시급하고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 과제"라고도 했다. 그는 "산업 구조의 변화에 맞게 노동시장을 더욱 유연하게 바꾸겠다"며 "근로시간은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며 근로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확실하게 보장하되, 현장 여건에 맞지 않아 유연화를 희망하는 업종과 직종을 중심으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 연공서열 임금체계는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하고 유연근무,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와 같이 다양한 근무 형태를 확산시키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법을 지키는 노동운동은 확실하게 보장하고, 불법 행위는 노사를 불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해 왔다"며 '노사법치'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동일한 노동에 대한 보상 체계가 공정하지 못하다면 결코 자유롭고 정의로운 시장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해법으로는 지난해 2월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5사 원·하청 대표가 체결한 상생협약을 언급하며 "정부도 노사 간 자율적인 상생 노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운동에는 엄정한 법치를 적용하고 원·하청 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실현은 '노사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
상공인 1000여명 모아놓고 전 정부 비난... 이승만·박정희·이병철·정주영 찬양
이날 행사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등의 단체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회장, 조원태 한진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윤 대통령의 특별강연이 끝나자 기립박수를 쳤다.
윤 대통령의 특별강연은 약 54분간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관객 116만 명을 돌파했다. 많은 국민들께서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현대사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며 "이승만이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기관차가 달렸다는 말처럼 두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이 오늘의 번영을 이룬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과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업적을 길게 설명한 윤 대통령은 "저는 이 분들이야말로, 또 이병철·정주영 회장님을 비롯한 불굴의 이 도전과 투지로 기업을 발전시켜온 우리 상공인들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 현대사의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임 2주년이 다 돼 가는 윤 대통령은 한국 경제가 어려움을 맞이한 원인을 전임 정부에 돌렸다. 그는 "자유시장경제의 자유는 강자가 약자를 마음껏 약탈하는 자유가 아니다. 책임과 윤리가 따르는 자유이고, 공정하게 경쟁해서 국민 후생을 극대화하고 공정한 배분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더니 "그런데 정치 이념적인 왜곡과 선동이 만연하면서 이념 편향적인 정책이 우리 경제를 흔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인데 원전은 그냥 발전소가 아니다. 값싸고 품질 좋은 전기를 생산해서 우리 산업과 경제의 토대가 되는 것"이라며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여 원전 생태계를 무너뜨린 결과로 그 피해가 우리 산업과 국민 전체에게 돌아갔다"고 말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예시로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든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안전과 환경문제를 이유로 탈원전 요구가 비등했고, 문재인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 중지 정책을 수립했다. 자유시장경제의 불공정 문제로 보긴 힘든 사안이다.
윤 대통령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전 정부를 겨냥해 "건국 이래 70년간의 누적 국가 부채가 600조 원이었는데, 재정만능주의에 빠진 무분별한 포퓰리즘으로 불과 5년 만에 400조 원이 늘어 1000조 원을 넘어서고 있다. 정부는 선심을 쓰고 청구서는 미래 세대에게 넘겨버린 것"이라고 비난했다.
현재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 등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내놓는 각종 개발 공약 역시 '총선용 선심성 공약 남발'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