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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1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 위촉식이 열렸다.
 2023년 12월 11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 위촉식이 열렸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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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 위원장 백선기)가 정부 비판 방송에 대한 잇따른 중징계로 '입틀막 심의'란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학계와 법조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송사에 내려지는 징계 사유가 자의적이고, 징계 수위가 높은 것도 문제인데다 선거와 무관한 보도까지 심의하면서 법에 허용된 권한까지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선방위, 법정제재만 15건... 이전에는 단 1건

지난해 12월 21일부터 3월 21일까지 선방위 의결 현황을 보면, 방송사 중징계에 해당하는 법정제재는 모두 15건으로 집계됐다. 법정제재는 방송통신위원회의(방통위) 방송사 재승인 심사에서 감점으로 적용돼, 중징계로 분류된다. 지난 21대 총선 선방위는 단 1건의 법정제재만 결정했다. '중징계 남발'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5건의 법정제재 중 선방위 최고 수위 징계인 '관계자징계'는 모두 9건이었고, 주의와 경고는 각각 3건이었다. 대부분 대통령, 여당을 비판한 방송들이 징계를 받았고, 특히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은 관계자징계 7건, 경고 1건 등 8건의 법정제재로 그야말로 집중포화를 맞았다. 

또 선방위는 선거와 무관한 이슈인 '이태원 참사', '김건희 여사 호칭'에 대해서도 방송사 제재 조치를 강행했다. 선방위는 지난 1월 30일 방송된 가톨릭평화방송(cpbc) 라디오 '김혜영의 뉴스공감'에 법정제재(주의)를 결정했다. 당시 방송에서 사회자가 '이태원 참사' 논란을 다루면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만 떠밀리듯이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고 아무도 책임을 진 사람은 없는 상태"라고 한 발언 등이 사실과 다르다고 봤다. 선방위는 전 서울경찰청장 등이 법적 책임을 졌으니 "책임을 진 사람이 없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는 논리를 근거로 들었다. 한 선방위원은 "사실이 아닌 방송을 했다는 데 대해 엄격히 대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출연자가 방송에서 '김건희 특검법'이라 발언한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방송(1월 15일)에 대해서는 행정지도인 '권고'가 내려졌다. 김건희 특검법을 논의하면서, '김건희여사 특검법'라고 호칭하지 않았다는 것이 결정 사유였다. 해당 방송에선 김건희 여사를 지칭한 것은 없었고, 단지 '김건희 특검법'이라는 언급만 있었다. 선거방송위원장은 "여사라고 붙이는게 좋겠다"며 제재를 확정했다.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3월 14일 “아무도 책임진 사람이 없다”는 발언에 법정 제재를 의결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향해 “이태원 참사와 선거가 무슨 관계가 있냐”며 편파심의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3월 14일 “아무도 책임진 사람이 없다”는 발언에 법정 제재를 의결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향해 “이태원 참사와 선거가 무슨 관계가 있냐”며 편파심의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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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숫자 1 심의 때 '기호학' 언급한 위원장

모두 총선과는 무관한 이슈지만 선방위는 선거 관련 여부를 별도로 논의하지 않았다. 이에 더해 선방위는 지난 2월 27일 MBC <뉴스데스크> 일기예보에서 미세먼지 수치를 전달하며 파란색 숫자 1을 그래픽으로 표시했다는 이유로 법정제재 수순인 '의견진술'을 결정했다. 파란색 숫자 1의 표현이 민주당 선거운동이라는 국민의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MBC가 "의도가 없다"고 해명했음에도 선방위는 "의도가 있다"고 봤다.

백선기 위원장은 이 결정을 내리기 전 '기호학' 이론을 거론하면서 "신방과 교수한 지 33년, 언론 보도 공부한 지가 30년 지났는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파란색 숫자1이) 혹시 오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인상을 아주 심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백 위원장은 "올라온 안건으로 보면 그런 추론(1이 민주당 지지라는 의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게 그냥 하나의 단발성 보도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법정제재로 간다(의견진술 결정)"고 밝혔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와 김건희특검법 등 선거와 관련 없는 방송들이 심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나 논의를 하지 않다. 이렇다보니 선방위는 '입틀막' 심의라는 비판은 물론, 선거 관련 방송만 심의하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부 커뮤니티에선 '파란색 1도 심의하니 파란 하늘도 제재하라'는 등의 조롱성 비판도 나온다. 언론, 법률 전문가들은 선방위의 이같은 행태를 '명백한 정치개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선방위, 명백한 선거개입" "심의의 정치적 타락"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기호학이라는 건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근간으로 하는 학문"이라며 "기호학에서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객관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기호학의 지향성과는 전혀 맞지 않고, 그 기준에 따라 실질적 규제를 하는 것은 더더욱 문제"라고 했다. 홍 교수는 "선방위가 정치적 개입을 하면서 선거 공정성을 오히려 훼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면서 "선방위에 대한 시급한 개선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현재 서강대 교수도 "기본적으로 미디어에서 기호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관련 학회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주류 학문은 아닌 걸로 안다, 기호학이라는 언급이 반복되는 건 자신의 판단 근거를 합리화하려는 의도 정도로 보인다"고 봤다. 또 "위원회에서 많이 언급되는 편향성이라는 기준도 모두가 합의하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위원 개인 주관에 따른 자의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고,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를 근거로 제재를 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선방위가 법적 근거가 없는 월권 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선거와 무관한 방송까지 근거도 없이 불법적으로 판단, 제재하고 있고, 심의 기준 자체도 명확하지 않다, 선방위원들의 개인적 편견, 사견에 의한 결정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송사가 선방위 결정에 소송을 건다면, 행정처분 집행정지부터 본안 소송까지 전부 패소할 것"이라며 "지금의 선방위는 정부 여당에 불리한 방송에 대해 중징계하는 방식으로 선거 개입을 하고 있다, 명백한 선거법, 방송법 위반"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심의의 정치적인 타락이고, 명백하게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결정들"이라면서 "(이태원참사를 아무도 책임 안 졌다 등) 출연자들이 방송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것까지 문제를 삼고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건전한 토론을 막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선방위의 자의적 판단이 반복되면 선거방송심의는 물론 방송심의제도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게 된다"며 "결국 법원에 가서 결정은 뒤집어질텐데, 이렇게 되면 차라리 심의 업무는 법원 판단에 맡기고 심의와 관련된 위원회는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태그:#선거방송심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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