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수많은 장애인들의 의지와 투쟁으로 쟁취한 제도로서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함으로서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6년이 다 돼가지만, 지난 1월 대법원이 소위 '사찰 노예 사건'과 관련해 내린 판결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목적과 가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8년 2월 한 장애인단체가 서울시내 한 사찰의 주지를 검찰에 고발한 이 사건은 소위 '사찰 노예 사건'으로 불렸다. 사건의 주된 내용은 '지적장애인에게 승복을 입히고 승려 생활을 하게 하면서 30년이 넘도록 마당쓸기, 잔디깎기, 농사, 제설작업, 경내 공사 등 각종 노동에 동원한 것이 장애인의 노동을 착취한 것'이란 것. 2022년 6월 1심 법원은 사찰 주지에 징역 1년을, 2023년 2월 2심에선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 1월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을 파기해 원심법원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로 장애인의 권리보장, 차별과 학대 근절이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의 입법취지를 형해화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가해자의 관점에서 쓰인 판결문... 누구를 위한 법인가
대법원은 지금까지 장애인권옹호자들이 가열차게 싸우고, 자신의 삶을 내던지며 쟁취하고자 했던,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달성해 온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라는 가치를, 하나의 판결로서 무너뜨렸다.
판결문에서 "장애인, 피해자, 약자"는 없었다. 오직 가해자의 주장, 가해자의 관점만이 있었다. 대법원은 노동력 착취, 금전착취가 아니라 울력이었다는 가해자의 주장을 인정했다.
울력은 다 함께 일하는 것, 가해자 이익으로만 돌아간 피해자의 노동이 울력인가
울력이란 사찰에서 스님과 재가자들이 사찰에 필요한 일을 다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서 수행의 일환으로 본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도대체 어느 부분을 "다 함께 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피해자는 매일같이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사찰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담당했다. 주지스님인 가해자가 시키는 일을 모두 해야 했다. 일을 늦게 처리하면 욕을 먹었고 맞았다. 또한 가해자는 각종 건물신축공사 및 건물과 도로 보수공사에 피해자를 동원했다. 이러한 노동행위를 "다 함께 일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필자는 법원에 묻고 싶다. 과연 가해자도 이러한 노동을 함께했는가.
노동력 착취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생산수단의 사유자가 노동자를 노동시간이상으로 일을 시켜 성과를 취득하는 일."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하루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도 못하게 노동을 시켰고 그에 대한 대가를 전혀 지불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성과는 모두 가해자가 가져갔다.
피해자가 했다고 하는 노동의 내용인 "예불, 기도, 마당쓸기, 잔디깎기 , 농사, 제설, 공사 등 노동", 사실 이 모든 것은 가해자가 사찰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건축공사도 가해자가 세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성과는 가해자의 이익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노동력 착취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폭력을 정당화 한 법원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9 제2호의2에서는 "장애인을 폭행, 협박 등의 수단으로써 장애인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노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경우 처벌하고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작업을 느리게 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폭행해 이미 벌금 500만 원 처벌을 받은 바 있으며(2019년 11월), 피해자가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날이면 피해자를 폭행하는 등 원치 않은 노동을 강요했다. 장애인에 대한 노동력착취 행위가 사찰이라는 장소에서 이뤄졌다는 이유만으로 위법행위가 아닌 것으로 판단돼선 안 된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해당 사찰에서 온전한 한 명의 인격체로 대우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대법원은 제대로 된 논리와 근거 없이 '울력'이라는 허울만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확립해 온 "정당한 노동권의 보장, 장애인의 권익 보장,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라는 가치를 훼손했다.
장애인의 의사결정권을 무시한 법원
대법원은 1월 판결에서 철저하게 장애인의 의사결정권을 무시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피해자가 지적장애 3급으로 조계종의 규범상 승적에 승려로 오를 수 없었으며, 가해자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 피해자는 애초에 스님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고 지속적으로 수사과정에서 진술했다는 점, 불경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과정의 일환이라는 의도를 갖고 노동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장애인차별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노전스님의 역할을 했고, 가해자를 비롯한 사람들이 모두 피해자를 노전스님으로 대우했으니, 노동력을 울력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두 판단의 차이는 '누구의 관점으로 보는가'다. 1심과 2심은 피해자의 의사를 중심에 뒀다. 하지만, 대법원은 가해자들과 주변 사람들의 의사를 중심으로 판단했다.
피해자가 정말 노전스님으로 울력을 한 것이라면, 가해자가 사건에 피해자에게 "피해자는 스님이 되기 어렵다는 점, 그럼에도 원한다면 노전스님으로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점, 다른 사찰에서는 노전스님에게 보수를 지급하나 우리는 줄 수 없다는 점, 그럼에도 무보수로 고된 노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모두 설명하고 피해자가 이를 이해하고, 자유의사로 이를 승인했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이러한 의사결정이 있었다고 볼 여지는 없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낮은 지적능력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노전스님으로 대우하는 척하면서 노동력을 착취했을 뿐이다. 대법원은 가해자의 주장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실질적 판단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가해자가 '노전스님'으로 대우했다고 하니 노전스님으로 볼 수 있다"고 하며 장애인의 의사결정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는 논리로 판결했다.
법 앞에서 여전히 온정과 시혜의 대상에 머물러 있는 장애인
대법원은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을 대신하여 실질적인 보호자로서 역할을 했다고 하며,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이라고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에 오히려 부합하는 정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는 장애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자기결정권과 이를 뒷받침하는 환경 속에서만 가능하다. 대법원의 판단은 지적장애인은 가족의 돌봄 없이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우니, 가해자가 시혜를 베풀었다면 노동력을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했어도 착취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와 같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해 근절하려고 하는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편견의 시각이 이 판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장애인에 대한 사법접근권을 명시한 법원행정처의 '장애인 사법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법원은 재판 시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재판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의 판결문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각으로 점철돼 있다. 판결의 판단 기준, 장애인에 대한 관점은 장애인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옹호하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두에 반한다고밖에 평가할 수 없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27조 근로 및 고용
당사국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장애인의 노동권을 인정한다. 이는 장애인이 장애인에게 개방적이고 통합적이며 접근 가능한 노동시장과 근로환경 내에서 자유로이 선택하거나 수용한 직업을 통하여 삶을 영위할 기회를 가질 권리를 포함한다. 당사국은 고용기간동안 장애를 입은 사람을 포함하여, 특히 다음의 사항을 위하여 입법을 포함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노동권의 실현을 보호하고 증진한다.
2. 당사국은 장애인이 노예상태 또는 강제노역에 처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강요되거나 강제된 노동으로부터 보호되도록 보장한다.
법원은 그 의무를 다하라
이러한 판결이 다른 장애인차별 및 학대사건에서 그대로 답습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참담하고 우려스럽다.
장애인차별 및 학대사건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없는 것처럼, 장애인이 취약하지 않은 것처럼 눈을 가리고 이뤄져서는 안 된다. '장애인 노동력 착취 형사 처분 사례에 관한 질적 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연구'를 진행한 '울력과 품앗이 프로젝트'에 따르면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의 경우 장애의 특수성과 사회적 취약성을 고려해야만 한다(해당 연구는 기사 하단 첨부파일 참조).
<장애인 노동력 착취 형사 처분 사례에 관한 질적 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연구 - 울력과 품앗이 프로젝트>
"실제 사례에서 폭행이나 협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일을 하게 되는 것은 ① 다른 갈 곳이 없는 피해자의 상황, ② 행위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의존적인 생활구조, ③ 판단과 의사결정을 위한 기초적인 정보・지식의 부족, ④ 장애로 인한 판단이나 의사결정의 어려움 등 피해자의 취약한 지위와 환경 자체에서 기인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주인이자 절대적인 권력자가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의 소유물이나 머슴, 노예와 같은 지위에 놓인다."
이미 국제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을 통해서 장애인권의 구체적 내용이 상당히 확립돼 왔으며, 그 권리들은 장애인들이 인생을 바쳐 쟁취한 것이다.
법원은 장애차별 및 학대사건에서 장애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차별받고, 착취당했다는 사실을 직면하고 실체적 판단을 해야 하며, 이는 반드시 장애인권에 대한 이해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부당한 판결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 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한다. 법원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원칙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인영씨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