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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생 때, 그리고 졸업하고 몇 년 뒤 이렇게 총 두 번 중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 뒤 계속 한국에서 지냈는데, 그러면서도 누군가 내게 "중국 사람은 이렇지, 저렇지" 하며 14억 중국 인구를 하나의 틀에 넣고 규정지을 때면 그 말들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듣다가 참다못한 내가 '안 그런 사람도 많아요'하고 덧붙이면, 상대가 '아님 말고' 식으로 얼버무리며 대화가 마무리되거나 분위기가 급 냉랭해졌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한 뒤로는 그냥 그 말을 속으로 삼키곤 했다. 

중국에서 24년을 살고 있다는 박현숙 작가의 <아적쾌락 북경생활>의 소개 글을 보고, 이 책은 단편적인 중국의 모습이 아닌 중국인의 내밀한 면면을 잘 보여줄 것 같아 기대가 됐다.

책을 펼쳐 읽어보니 역시나, 중국의 피상적인 현상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학적, 사회적, 역사적 사실을 함께 엮었다. 지난 2020년부터 주간지 <한겨레 21>에 연재한 칼럼을 정리하고 편집해 책으로 냈다는데, 지적인 측면뿐 아니라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흥미로운 중국의 장면들
 
 <아적쾌락 북경생활> 앞 표지
<아적쾌락 북경생활> 앞 표지 ⓒ 후마니타스
 
일단 첫 페이지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가는 1999년, 자신이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겪었던 화장실 에피소드로 책의 문을 활짝 연다. 2001년 처음 중국에 갔던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작가는 도착 첫날, 숙소 화장실이 고장나면서 가장 먼저 '화장실 문제'와 맞닥뜨렸다고 했는데 난 '쥐 문제'와 맞닥뜨렸다.

당시 내가 묵던 유학생 기숙사-지금은 사라진, 당시 쓰촨성 청두의 소수민족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했다-는 나무로 지어졌는데 천장에서 쥐가 달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소리만 들으면 이건 쥐가 아니라 말이다. 말이 초원을 뛰어다니는 소리를 듣다 겨우 다시 잠이 들었는데 천장에 구멍이 뚫리고 쥐들이 쏟아져 내리는 악몽을 꿨다.

기숙사 사감을 찾아가 안 되는 중국어로 '쥐 때문에 천장에 구멍이 뚫릴까 봐 무섭다, 조치를 취해 달라'라고 했다. 기숙사 사감은 깔깔 웃으며 여태껏 쥐 때문에 천장이 무너진 일은 한 번도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난 입을 삐죽 내밀고 그냥 돌아왔지만... '우당탕탕', 그날 밤 천장에서 요란한 쥐 운동회가 열렸을 때, 낮에 들었던 사감의 말이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중국은 없다. 매년 새로운 건물들이 생기고, 화장실 또한 2017년 화장실 혁명 3개년 계획을 발표해 시골의 화장실까지 싹 고쳤다고 한다. 이렇게 빠른 성장 속에서 혹여 어떤 한 부분이 체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책을 읽어보니 비단 빠른 성장만이 문제가 아니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아이 세 명 이상을 나으면 '영웅 엄마'라 칭송받았는데, 지난 1979년부터 '한 자녀 정책'이 엄격하게 시행되었고 지금은 다시 적극적으로 '세 자녀 낳기'를 권장하고 있다는 이야기.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직후에는 춤을 장려했다가 1980년대 초 공공장소의 '춤파티'를 금지했으나 다시 허용했다는 이야기. 위구르족은 한때 베이징에서 가장 잘 나가는 소수 민족이었으나, 지금은 정치적인 이유로 감시와 제재의 대상이란 이야기. 

고단한 서민들... 국가보다 개인에 주목하는 작가

바뀌는 사회주의 국가 정책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휩쓸리는 힘없고 고단한 서민들이 마치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일이 단지 중국에서만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먼발치에서 다른 나라 일을 구경하던 몸을 어느새 책 쪽으로 바짝 당겨 앉는다.

작가는 그 와중에도 개인의 해방에 주목한다. 험난한 시기를 넘어온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놓지 않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 한편이 묵직해졌다.
 
"지난 3년 동안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되돌려 줘야 한다.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 주고 애도할 기회를 얻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백지 시위에 참가했다가 소리 소문 없는 검거 폭풍 속에 어디론가 사라진 수많은 저항자들에게도 이름을 찾아 줘야 한다." (242쪽)

책 속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잊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났다. 2005년, 상해로 어학연수 갔을 때 빈부의 격차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던 기억이 났다.

가난한 사람은 한없이 가난하고 부자인 사람은 한없이 부자다. 상해에 있는 한 대학교 여학생과 언어교환(그 친구는 나에게 중국어를, 나는 그 친구에게 한국어를 알려주었다)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상대방이 부자이기만 하다면 자신은 첩이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했다.
 
 2022년 6월 1일 중국 상하이 번화가 난징둥루에서 시민들이 교차로를 건너는 모습(자료사진).
2022년 6월 1일 중국 상하이 번화가 난징둥루에서 시민들이 교차로를 건너는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그 말에 놀란 나를 보며 그는 자신뿐 아니라 자기 친구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상황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이 상해의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라는 점이 여간 찜찜한 게 아니었다. 갑자기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면서 돈의 가치가 커지고, 그로 인해 촘촘하고 길고 긴 계급이 생긴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 책 안에서는 중국 정부가 사람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영웅 열사 보호법', '공중 소란죄', '유언비어 유포죄' 등 기준이 모호한 법을 내세워 사람들을 잡아들인다고 한다. 사실상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 아래 고통받는 개인들을 조명한다. 중국의 권력자들은 이 모든 것은 '애국'을 위한 것이라며 '애국'을 최고의 가치로 내걸고 사람들을 선동한다. 저자는 중국은 20세기 이후부터 줄곧 애국주의 전성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애국이 한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높은 순위의 덕목일까. 그 자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봉쇄를 뚫고 나와 '자유'를 외치며 백지 시위를 벌였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만두피처럼 순하고 말랑말랑했던 중국인들이 화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나고 성난 얼굴을 한 중국 사람들의 모습을 나는 중국에 온 후로 처음 목격했다." (10쪽)

나는 과거 중국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녀 준 친구, 내가 아플 때 달려와 나를 돌봐주었던 친구, 아파서 수업을 연달아 빠졌을 때 따로 시간을 내어 가르쳐 준 선생님.

아마 지금도 그 땅 곳곳에는 선량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선량한 마음의 맨 앞자리를 '애국'이 꿰차고 있지는 않을지, 누군가는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애국이라 포장하며 가르치고 있지는 않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뉴스에서 말하는 중국이 아닌, 정말 내밀한 중국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렇게 이 책을 읽다 보면, 어쩌면 이 얘기는 중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나아가 인류애와 포용이 있어야 할 사람은 중국과 중국인 뿐만은 아니라는 통찰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아적쾌락 북경생활 - 나의 베이징 이야기

박현숙 (지은이), 후마니타스(2024)


#아적쾌락북경생활#박현숙#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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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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