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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삼아 집 앞의 작은 산을 오르기 위하여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며칠 새 완연해진 봄 기운, 미처 물러가지 못하고 엉거주춤 남아있는 산수유꽃 옆으로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까지 온갖 봄꽃들이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예전에는 꽃들이 피는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봄의 전령사 산수유가 가장 먼저 피면서 봄이 온다는 신호를 보냈고, 뒤를 이어 목련이 폈다. 주로 산에서나 볼 수 있던 산수유보다 집 앞마당 어디서나  마주치는 목련이 더 친화적이어서 봄소식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의 변화로 날씨 자체가 달라진 게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꽃들도 저절로 인간 세계의 경쟁 구조에 물이 들었는지 산수유를 빼고는 서로 앞다투어 피느라 목련,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뒤섞여 개화시기에 두서가 없이졌다.  

이 때문에 차례차례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꿀을 따는 양봉업자는 한꺼번에 우르르 피는 꽃들로 꿀 채취에 변화를 겪는 것은 물론 꽃을 주제로 축제나 행사를 주최하는 측에서는 개화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고충을 전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든 산에 오르니 모든 꽃을 힌 눈에 볼 수 있어 좋다. 수줍은듯 핀 진달래는 진달래 대로 소박하고, 개나리는 개나리 대로 몰려서 흐드러지게 핀 모습이 화려하고, 목련은 목련답게 우아함을 한껏 머금고 피어있고, 벚꽃은 잔잔한 꽃잎을 막 터뜨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봄꽃들의 잔치가 시작되었다.
 
 봄비를 머금은 개나리꽃
봄비를 머금은 개나리꽃 ⓒ 홍미식
   
이 호시를 누리며 정상 즈음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필 황사가 심해 비를 맞기가 꺼려서 서둘러 정상의 정자로 몸을 피했다. 덕분에 정자에 올라 비에 젖은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운치를 덤으로 누려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길어지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가볍게 맨손 체조를 하고 따뜻한 물로 몸을 데우며 봄비의 운치도 좋지만 이쯤해서 비가 멈춰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다행히 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때를 놓칠세라 잰걸음으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산을 다 내려오기도 전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며 가끔씩 산에 정자며, 운동 기구 등을 너무 많이 설치해 산이 몸살을 하는 것 같아 못마땅해 하던 나는 마지막 초입의 정자에 다시 몸을 피했다.
 
 촉촉히 비에 젖은 등산로 초입
촉촉히 비에 젖은 등산로 초입 ⓒ 홍미식
 
아침 체조 운동을 마치고 내려오시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낯익은 어르신들도 정자로 들어오시며 마침 옆에 있는 소방 장비 진화나 눈이 오면 사용할 목적으로 비상시 사용하는 삽, 빗자루 등을 넣어놓는 함을 둘러보시더니 "여기 우산이 있네." 하며 두 개를 꺼내 그 중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내가 머뭇거리자 "괜찮어, 내가 갖다논 우산도 여러 개야. 나는 집이 가까워서 그냥 가도 되니 어서 가져가요" 하신다. 다른 어르신도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얘기하다 갈 테니 바쁜 사람이 얼른 먼저 가요." 하시며 손에 우산을 쥐어주고 등을 떠미셔서 못 이기는 척 우산을 받아들었다.

고맙고 송구한 마음으로 우산을 쓰고 편하게 내려오는 마음이 참 흐뭇하고 좋다. 갑자기 비가 내리는 날, 누군가 쓰고 갈 수 있도록 우산을 챙겨놓은 마음씨며, 또 그 우산을 양보해주시는 어르신들의 마음씀이 너무 고맙다. 작은 실천이지만 남을 기쁘게 한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튿날, 잘 말려둔 우산과 함께 집에 있는 우산 하나를 더 들고 산을 올랐다. 어머나 하루 사이에 우산이 하나 더 늘었다.
 
 다시 모여진 우산
다시 모여진 우산 ⓒ 홍미식

이무래도 봄에는 갑자기 비가 내릴 일이 더 많아질 텐데 이 우산들이 졸지에 비를 만난 등산객들의 몸과 마음이 젖지 않도록 지켜주기를 바란다. 뜻하지 않게 배려와 따뜻함에 대하여 새기게 되고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찾아준 봄비가 고맙다
 

#촉촉한 봄비로 오히려 따뜻해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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