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마치고 남미 안데스 산맥으로 떠난 농업과학자가 있다. 고산지대에서 힘들게 생계를 잇고 있는 현지 농민들을 돕기 위해서다. 감자와 옥수수, 콩 등 29년 동안 농촌진흥청에서 밭작물 생산성 증대 기술을 연구해온 그는 현지의 영세 소농들과 함께 폰초(망또처럼 생긴 인디오 전통의상)를 두르고 씨를 뿌려왔다.
그런 그에게 힘든 점을 물었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답했다. 해발 28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여서 처음에는 몸무게도 빠지고 음식 적응도 안되었지만 시간이 해결해주었다고. 아내가 동행해주어 향수병도 없다고. 그러나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 나오자 순간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울고 있었다. 지난 3월 29일 밤 <오늘의 기후>(OBS 라디오) 생방송 전화인터뷰 순간이었다.
"작년 11월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임종은 물론이고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내내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이곳 에콰도르에서 한국을 가려면 아무리 빨리 가도 3일이 소요되는데...........(무음) 그게......(무음)"
그의 이름은 박장환이다. 경북대 농대를 나온 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29년간 식량작물을 연구해왔다. 땅콩처럼 고산지대 산비탈 등 이른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을 연구해온 그는 지난 2020년 정년 퇴임 후 농촌진흥청의 해외지원사업인 코피아(Kopia) 공모 과정을 거쳐 지구 반대편 에콰도르 현지에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했다.
박장환 박사(농촌진흥청 코피아 에콰도르 센터장)와의 인터뷰는 에콰도르라는 나라이름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부터 시작되었다.
"이 곳 에콰도르(ecuador)는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적도의 나라죠 남반구와 북반구를 가르는 한 가운데에 위도 0도상에 이 나라 수도인 키토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키토시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적도탑이 있는데 전 세계에서 이 적도탑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죠."
- 적도 한가운데 있고 해발이 2,800미터가 넘으면 적응하기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3년전 여기 도착하여 생활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고산지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아서 몸무게가 최고 10킬로그램까지 줄었죠.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5킬로 정도까지 회복되었어요."
- 에콰도르 현지에서 느끼는 기후위기 상황은?
"에콰도르는 바로 옆에 드넓은 태평양 바다가 있어 해양성 기후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요, 특히 엘니뇨와 같은 이상기후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요, 지금도 남부 저지대 지방은 심한 홍수로 피해가 아주 심한 편입니다."
그런 에콰도르에서 박장환 박사를 비롯한 한국의 농업전문가들은 특히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영세 소농민들에게 필요한 적정기술에 주목해왔다. 안데스 산맥 해발 2500미터 이상 고산지대를 따라 영세 소농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고산지 기후 특성상 여기서 재배 가능한 식량 작물이 제한되어 있고 생산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우리 과학자들이 현지에서 집중하고 있는 기술은 '감자'였다.
"이곳 안데스 고산지에 가장 많이 재배되는 주요 식량작물은 감자와 옥수수이고, 곡물로는 보리, 밀, 퀴노아 등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산지 주식 작물인 감자의 생산성을 증대하기 위하여 지난 10여 년 동안 현지에서 꾸준히 (기술을) 보급하고 (농가에) 적용해왔는데요, 그 결과 감자 수량을 이전보다 40~50% 이상 증대시켰습니다. 또 감자 다음으로 많이 재배하는 옥수수도 우수 품종을 보급하고 미생물을 활용한 친환경 재배기술을 도입해 생산성도 높이고 생산비용을 오히려 떨어뜨려 농가 소득을 전보다 30% 이상 증가시켰습니다."
현지 농민들과 겪은 에피소드를 물었다. 그랬더니 드라마틱한 경험은 없는데 한결같이 농민들이 너무 착하고 밝다고 한다. 안데스 산맥 고산지대 농민들은 한국 연구자들이 찾아 갈 때마다 없는 살림 속에도 늘 밝게 웃으며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와 대접하며 진심으로 고마워한다고. 그러면서 박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어쩌면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높은 것 같아요.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행복하고 사람을 존중하고 환대합니다. 그리고 인디오 원주민들은 자신들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높습니다. 결속력도 아주 강합니다."
그런 이곳 농민들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박장환 박사는 에콰도르까지 동행해 함께 살고 있는 아내 덕분에 가장 큰 어려움이던 고산지 적응 문제도 해결하고 향수병도 없다며 고마워했다.
모친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해 내내 가슴이 아프다며 맛을 잇지 못하던 그는 고향에 계신 형님과 누나, 동생 내외와 고향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며 라디오 신청곡으로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을 청했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그를 응원한다는 청취자들의 문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김희숙 진행자도 허윤선 작가도 나도 눈시울이 붉어진 채 노래를 듣고 있었다.
어쩌면 그 눈물은 사람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미세먼지처럼 흩날리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갈망하던 단비였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최초의 주7일 '기후' 방송으로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2시간 30분 분량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을 통해서도 시청,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