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민주당이잖아."
3일 서초구 영동농협 노래교실을 방문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출신임을 강조하며 "서초구를 문화예술도시로 만들겠다. 성원해주시면 확 바꾸겠다"고 약속하자 객석의 누군가가 이같이 대꾸했다. '민주당은 안 된다'는 의미가 담긴 말투였다. 몇몇은 굳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래도 "홍익표가 점잖아"라며 두둔하는 이도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떠나는 홍 원내대표에게 "후보님 압승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서울 성동구에서 내리 세 번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홍 원내대표가 1990년대 이후 단 한 번도 민주당 계열 당선자를 낸 적 없는 서울 서초구을로 출마하면서 마주하는 광경이다.
수십 년째 서초구에 거주 중인 김준호(74)씨는 이날 '동네 분위기'를 묻는 <오마이뉴스>에 "아휴, 내가 방금 전에도 경로당에서 나왔는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70대 밑으로는 다 1번(민주당)인데 그 위로는 다 저쪽"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그는 "나이 드신 분들 때문에 이번에도 좀 힘들 것 같다"며 "(윤 대통령의 실정도) 전혀 신경 안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역) 박성중 의원이 일을 한 게 없어서 노인회장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홍익표 의원이 일 많이 할 거다'라고 하는데..."라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민들의 반응이 마냥 뜨뜻미지근한 건 아니다. 매헌초등학교 인근에선 "팬입니다"하며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남성, 길 가며 '엄지 척'하는 할머니,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드는 할아버지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서초을 출마를 택하면서 밝혔던 대로 '민주당의 강남 기초체력'은 키워진 덕분일까?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대한 것인지, 개인에 대한 호감인지는 선거 결과를 봐야겠지만 '이번엔 뭔가 될 것 같다'고들 많이 얘기한다"고 자평했다.
여기에 '윤석열 정권 심판' 바람까지 불면서 범야권 압승을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는 "현 시점에선 '다소 유리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낙관하거나 안이해선 이길 수 있는 선거를 못 이긴다"며 "제일 중요한 건 겸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사무소에 약 40분 간 이뤄진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간담회를 진행했다. 오차범위 밖 열세로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반드시 뒤집겠다. 일내겠다(3월 25일 페이스북)"던 각오는 이뤄질까.
민주당 깃발 한 번도 못 꽂은 서초...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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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표, 민주당 깃발 한 번도 못 꽂은 서초...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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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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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구를 뜯어보면 4년 전 약 1만 2000표 차이였는데 2022년 대선 때는 4만 표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특히 2 대 3정도 차이였던 서초동 쪽이 만만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주했던 서초 4동의 경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를 거의 4배 차이로 이겼던 곳이기도 하고.
"서초동이 어려운 건 맞고, 양재·내곡 쪽이 그나마 낫다. 어쨌든 강남 3구 인구를 합치면 160만 명, 충청북도와 맞먹는다. 이 지역에서 일정 정도의 지지율을 회복하지 않으면 서울시장 선거나 대선에서 굉장히 어렵다. 또 서초구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민주당이 단 한 번도 구청장이든 국회의원이든 당선 못한 곳이라 민주당 지지자들도 '될까?'란 패배의식이 있다. 그걸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또 아무래도 고학력층이나 전문가가 많이 사는 동네라 여러 조직이나 단체를 가보면 임원급 중에 강남·서초에 사는 분들이 꽤 많다. 우리 사회 여론 주도층과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해도 많고,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진 분들이 있다. 그걸 불식시켜 나가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강남·서초에 뛰어든 우리 당 후보들이 좋은 분들이 많다는 평가도 있는데, 그 자체가 '민주당이 강남·서초에서 뭔가 해보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 하지만 HCN-조원씨앤아이 조사에선 10.2%P(신동욱 50.5%-홍익표 40.3%), MBC-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선 13%P(50%-37%) 뒤쳐졌다. 특히 MBC 조사 발표 후 "이 숫자를 기억해달라. 반드시 뒤집힌다"며 "서초가 변하고 있다"고 했다. 역전할 자신 있는가.
"네. 실제로 다녀보면 그 정도의 차이를 느끼진 않는다. 그때도 생각보다 격차가 많이 나서 '왜 그럴까' 했다. 다른 분석자료에선 그만큼 차이나지 않는 것도 있고, 주민들을 실제로 만나봐도 충분히 해볼만하다. 당시 여론조사는 후보를 넣긴 했지만 정당 지지도가 고착화해서 나온 게 아닐까. 본선거기간에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남·서초도 마음 복잡... '윤 대통령' 얘기 안 하더라"
- 서초마저 변하고 있다고 느낀 까닭은 윤석열 정부 심판 정서가 밑바닥에 있다는 뜻인가.
"아무리 강남·서초가 보수정당 세가 강하다지만,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낮을 순 있어도 정권심판론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또 이분들이 윤석열 정부를 많이 지지했는데 자신들의 눈높이에 전혀 부합하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처음 서초지역에 왔을 때, 일종의 금기어처럼 '윤석열 대통령' 얘기를 아무도 안 하더라. 마음이 복잡한 것 같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니까 비판하는 것에 갈등하면서도 자신들의 기준에 너무 부합하지 않으니까 그 경계선에 있는 분들이 많지 않나 싶다.
특정정당이 지역정치를 독점하다보니 지역발전이 정체되기도 했다. 민주당은 (당선 가능성이 없으니) 관심 두지 않고, 국민의힘은 누가 가도 당선된다 생각하니까 방치하고. 1988년 서초구가 강남구에서 분리될 때만해도 두 지역의 차이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 서초구민들은 '강남구는 빠르게 변하는데 서초구는 정체됐다'고 생각하더라. 실제로 송파가 이런저런 사업들이 많이 진행되면서 흔히 '강남' 하면 '강남·서초'인데 '강남·송파'로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있을 정도다.
이 연장선상에서 '대표 정치인'도 없게 됐다. 5선의 김덕룡 의원 이후 서초구 국회의원들은 다 한두 번 하고 그만뒀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선수에 따라서 역할과 권한이 달라진다. 특히 중요한 지역현안은 예산이 많이 들어가거나 관련 부처 간 이해관계가 상충하거나 여야 간 합의가 필요한 것들이다. 저는 이미 3선이고, 여당 정책위의장 출신에 현재 원내대표다. 국가예산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고 여야 이견을 조정해 합의를 끌어내는 것은 상대후보보다 훨씬 잘할 수 있지 않을까."
-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공약은 무엇인가.
"'서초형 문화예술복합 콤플렉스' 건립이다. 서초구의 자부심이 예술의 전당과 국립중앙도서관이다. 저는 예술의 전당 일대를 명품문화도시로 만들고 싶고, 남부터미널을 이전해서 뮤지컬 전용 극장과 미래형 디지털 도서관을 세우고 싶다. 요즘 국민들의 수요가 제일 많은 분야가 뮤지컬이다. 또 미래형 디지털 도서관은 장서가 없고 서버만 있으면 되는 도서관이다. 서고가 차지했던 공간을 주민 편의시설로 만들고 국립중앙도서관 등과 연결해서 모든 자료를 다 디지털로 접속 가능하게 하는 등 AI·클라우드 산업과도 연계하고 싶다."
"채 상병 특검, 총선 후 무조건... 또 거부권? 소탐대실"
- 전체 판은 '윤석열 정권 심판'으로 가고 있다. 가장 시급한 현안 중 하나가 의대 정원 문제인데, 1일 윤 대통령 대국민 담화를 두고 전날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여전히 문제가 뭔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참 답답하다. 이제 와서 의료계에 입장을 가져오라는 것은 선후가 틀렸다. 사실 시작 자체가 불손했다. 우리 당은 지금까지 먼저 (의대 증원을) 얘기했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시절 소극적 반대한 뒤 아무런 움직임 없다가 뜬금없이 던졌다. 그것도 굉장히 비상식적 수준으로. 국민에게 기득권 집단으로 인식된 의사들을 때려잡아 인기를 얻겠다는 얄팍한 셈법이 작용했던 것 같다."
- 담화 자체가 선거에 미칠 영향은 없을까.
"훨씬 부정적인 영향을 줄 거다. 윤 대통령 말씀은 여전히 '왜 내가 그렇게(2000명 증원) 해야 하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의사단체 의견을 묻겠다? 거기는 백지화를 요구하는데 그것도 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의대 증원을 전제로 여야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합의안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게 맞다. 윤 대통령은 '정부 입장을 철회하고 총선 후 국회가 의사단체들과 협의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달라, 모든 불이익 없을 테니 의사들은 복귀하라'고 해야 했다."
- 지난 가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했던 채상병 특검법안도 오늘(3일)로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21대 국회에서 매듭지어야 할 사안인데.
"총선 끝나면 바로 첫 번째 본회의에서 무조건 상정할 생각이다."
- 윤 대통령이 또 거부권을 행사하진 않을까.
"글쎄... 비상식적 결정을 많이 했지만 이것마저 거부권을 쓴다면 정말 윤 대통령은 국가 운영에 있어서 중대한 위기를 맞을 거다. 소탐대실이다. 해병대 장병이 국가를 위해서 복무하다가 숨졌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고,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행사돼서 수사를 잘하고자 했던 사람을 기소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
아니 저는 이해할 수 없는 게 그런 일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윤 대통령 본인이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로) 겪지 않았나. 누구보다도 수사의 자율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나. 검사 윤석열은 늘 '수사에 성역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검사 윤석열의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이 대통령 윤석열이 되면서 오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 물가 등 민생도 악화일로라 정권 심판의 민심은 뚜렷하다. 그러다보니 '범야권 200석', '민주당 단독 과반' 등 결과를 낙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현재 판세는 어떻게 보고 있나.
"(고개를 살짝 저으며)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큰 차이 없이 경합하는 지역이 곳곳에 많다. 마지막까지 누가 실수하고 잘못하는 충격 변수가 있으면 판이 뒤집힐 여지가 있다. 현 시점에선 '다소 유리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결과가 그대로 이어질 거라고 낙관하거나 안이하게 생각해선 도리어 진짜 이길 수 있는 선거를 못 이긴다. 끝까지 섬세해야 하고 제일 중요한 건 겸손이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
솔직한 얘기로, 국민들께서 '우리가 180석 줬는데 민주당이 뭘 했나. 잘한 게 있나'라고 하지 않나. 우리도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고. 정권 주고, 지방권력 주고, 국회도 압도적 다수를 줬는데 결국 일을 제대로 못해서 국민들이 하나하나 심판해서 대선 패하고 지방권력도 내줬다. 그나마 국회의원 선거가 우리한테 조금 열린 기회인데, 윤석열 정부가 워낙 말도 안 되는 행태를 보이니 '그래도 윤석열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고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민주당밖에 없구나' 해서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닌가. 따라서 더 겸손해야 한다."
"양문석 문제 난감... 김준혁도 당이 적극 수습해야"
-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는데 양문석 후보 편법 대출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김준혁 후보의 '김활란' 발언은 본인이 사과했음에도 이화여대 총동창회까지 사퇴를 요구 중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하는 일은 진정성을 갖고 사과하는 게 제일 좋다. 필요하면 해당 단체 등에 가서 설명 드리는 일도 하고, 당도 적극적으로 수습해야 한다. 다만 후보 자격을 박탈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두고는 당도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특히 양문석 후보 사례는 불법이냐 편법이냐의 경계선에 있어서 당이 선뜻 조치를 취하기가 상당히 난감하다. 남은 기간이 너무 짧고, 조사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히 없기 때문에... 일단 양 후보도 상당히 자세를 낮춰서 사과했고, 김준혁도 사과했으니 좀더 지켜봤으면 한다."
- 얼마 전에 박용진 의원이 지원 유세를 왔더라. 그간 공천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치유가 안 된 상태로 일단 선거에 돌입했는데, 선거 끝나면 다시 갈등이 터질까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 조국혁신당의 상승세도 총선 후 정치 지형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듯한데.
"선거가 끝나면 원내대표 임기가 한 달여밖에 안 남긴 하지만, 선거 전에도 그렇고 선거 이후에도 당이 통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다. 또 만약 국민들이 선거에서 우리 당에 상당히 힘을 실어줬는데도 이후 당이 또 분열을 해버리면 국민들이 우리한테 힘을 모아준 의미가 없어지지 않나. 지금은 작은 차이가 있고 아쉬움과 섭섭함이 있을지 모르나 당분간은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고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강력하게 싸우는 데에 힘을 모으는 일이 우선이다.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고, 경중이 있다. 국민들이 의회권력을 민주당에게 주면 우리가 진짜 뭘 해야 되는지 잘 따져보고 일해야지, 또다시 내분에 치중하고 당파적 싸움에 골몰하면 다음 대선에 우리한테 힘을 안 실어준다. 작은 차이에 너무 연연해선 안 된다. 그리고 국민들은 다 안다.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누가 국민을 위해 하는지 알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억울한 것은 억울한 대로, 잘못한 건 잘못한 대로, 잘하는 건 잘한 대로 판단해줄 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 개요는 아래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HCN-조원씨앤아이
- 2024년 3월 23~24일 서초을 주민 만 18세 이상 남녀 514명 대상 무선 안심번호 ARS 여론조사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4.3%p
■ MBC-코리아리서치
- 2024년 3월 23~24일 서오을 주민 만 18세 이상 남녀 501명 대상 무선 안심번호 전화면접조사
- 표본오차 : 95% 신뢰 수준, ±4.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