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이 된 159명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그 길은 참사의 진실을 밝혀내고, 생명안전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4.10 총선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4일, 전국행진에 나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전국 순회 첫 번째 도착지는 부산이었다. 이들은 이날 2년 전 참사가 일어났던 서울에서 출발해 일주일간의 대행진에 들어갔다.
부산에서 광주·대전 거치며 다시 서울로
'진실대행진'이라 적힌 버스는 부산에서 20·30세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인 부산진구 서면 젊음의 거리로 향했다. 이들을 맞이한 한 지역의 시민단체 관계자는 "유가족들이 참사 희생자와 같은 또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 장소를 여기로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연주씨의 언니인 유정씨(27)가 손글씨로 작성한 대자보는 부산에서도 화젯거리가 됐다. 앞서 유정씨는 영문도 모른 채 하늘의 별이 된 동생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다녀왔습니다"라는 제목의 글로 썼다. 그는 참사의 진상규명을 바라며 "내일에 투표해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곳곳에서 릴레이 대자보가 등장했고, 행진 시작 첫날인 부산에서도 응답이 이어졌다. 부산대학교 졸업생, 지역의 문화예술인 등은 손수 적은 대자보를 들고 이 자리에 함께했다. "억장이 무너지고 말문이 막힌다"라고 쓴 금정구의 한 시민은 유가족들을 보며 '무책임한 대통령'을 뽑은 유권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황종모 부산민예총 사무처장의 글도 이 대자보 중 하나였다. 황 사무처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가족의 절규를 언급하며 이들을 위로했다. 그는 "유정씨가 쓴 글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펜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국민을 외면하는 정치는 결코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기 바랍니다. 이태원 골목에서 아까운 젊은 청춘들이 무려 159명이나 목숨을 잃은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참담한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았고,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최장수 장관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수십여 명과 함께 선 유가족들이 말한 '진실에 투표'는 책임지지 않는 자들에게 "매서운 회초리"을 들어달란 것이었다. 이태원 희생자 이주영씨의 아버지인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지난 2023년 57명이 사망한 열차 충돌 사고에서 장관 사임 등 책임을 인정한 그리스 정부의 사례를 말하며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잘못을 인정하는 정부가 없다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 만큼 유권자들이 윤석열 정부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우리 가슴 가슴에 안고 있던 진실과 양심의 표를 행사해야 합니다.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부모들의 마음을 약간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을 겁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유도 모른 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진실을 밝힐 후보, 생명 안전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후보에 투표하겠습니다. "
이에 화답한 시민사회는 사전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상임대표와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5일 바로 투표장으로 향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것만이 22대 국회에서 특별법을 통과시켜 유가족의 한을 푸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저마다 준비한 발언이 끝나자 이들은 '진실에 투표하세요', '거부권을 거부한다' 등이 적힌 손팻말과 보라색 풍선을 들고 서면 일대를 돌기 시작했다. 서면 누리마루 인근에선 잠깐 행진을 멈추고 집회를 열었다. 간절한 표정의 한 참가자는 "대한민국이 안전한 국가가 되기를 누구보다 바란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돼야 합니까.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회를 위해 소중한 한 표가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