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율 31.28%.'
4년 전인 제21대 총선 사전투표율(26.69%)은 물론이고 역대 총선 사전투표율 중 가장 뜨거웠다. 국민의힘이 압승했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율(20.62%) 보다 높았고, 윤석열 대통령이 0.73%p차로 신승한 제20대 대통령 선거(36.93%) 보다는 낮았다.
거대 양당은 이번 사전투표율을 각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했다. 국민의힘은 박정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 명의로 "이번 총선의 국민적 염원이 모여 국민의힘을 향한 결집을 이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공보본부 강선우 대변인은 "역대 총선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사전투표율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성난 민심이 확인됐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김민석 총선 상황실장이 브리핑했던 "사전투표율 31.3% 목표"가 들어맞으면서 고무되는 분위기이다. 김 실장은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죄송하다. 사전투표율 조작설에 휘말렸다"라며 "31.3, 화이팅"이라고 적기도 했다.
[공표된 여론조사 종합 판세]
여야 경합 48, 국힘 우세 45-경합우세 14, 민주 우세 71-경합 우세 73
실제로 <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 깜깜이 기간 이전인 3일까지 조사되고 공표된 각 지역구 여론조사들을 종합한 결과 국민의힘 우세 45곳-경합 우세 14곳, 민주당 우세 71곳- 경합 우세 73곳으로 집계됐다. 여야 경합 지역은 총 48곳이었고, 그 외에 새로운미래, 진보당, 무소속 우세 지역이 각각 1곳이었다. 양당이 우세와 경합 우세를 모두 차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59대 144로 민주당의 명확한 우위가 확인된다. 경합지역을 반반씩 차지할 것으로 가정하면 지역구는 83대 168로 유추 해석할 수 있다.
지난 4일 각당이 발표한 자체 판세 분석 결과 국힘은 우세 82곳-경합 55곳을 제시하고, 민주당은 우세 110곳-경합49곳을 꼽았다. 각당의 예측치에서 경합을 반반씩 차지할 것으로 가정하면 국힘은 105곳, 민주당은 135곳이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이번 총선 판세는 주요 국면마다 크게 요동쳤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지지도는 낮은 수준을 유지했고 '정권심판론' 여론도 꾸준히 높았지만, 민주당의 공천 파동으로 한때 야권 분위기가 크게 꺾였고, 이후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 언급과 이종접 전 국방부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되어 출국하는 과정을 거치며 여권의 분위기가 고꾸라졌다.
이런 가운데 조국혁신당이 등장하며 정권심판론에 불이 붙었다. 일각에서 '범야권 200석' 전망이 나올 정도로 대세가 굳어지는 듯했지만, 민주당 후보들의 잇따른 설화와 의혹이 불거졌다. 국민의힘은 이를 집중적으로 공략함과 동시에 개헌 저지선 확보를 위한 읍소에 나섰다. 국힘 내부에서는 보수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여권이 바닥을 찍고 다시 야권을 추격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이게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까지의 대체적인 흐름이다. 경합지역을 중심으로 여권의 '뒤집기'냐 야권의 '굳히기'냐에 따라 최종 판세가 판가름 나게 됐다.
역대급 사전투표율은 이번 총선의 결과를 예고하는 실마리가 될까? <오마이뉴스>는 총선 본투표를 단 이틀 남기고,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정치평론가들의 예측치를 종합해 판세를 가늠해봤다.
[야권 승리-국민의힘 개헌선 무너지나]
김준일 "범야권 185석, 국힘 97석 안팎"
장성철 "범야권 200석, 국힘 103석보다 아래"
이전부터 야권의 승리를 예측했던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국민의힘 100석 '언더(아래)' 가능성이 높아졌다"라며 "지금은 한 97석 안팎으로 나올 것이라고 본다"라고 예상했다. 범야권은 185석을 기준으로 약간의 변동이 있을 것으로 봤다.
근거는 사전투표율이었다. 그는 "투표율이 68%를 넘으면 국민의힘 100석 아래로 갈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왔는데, 31.28%의 사전 투표율 대입해보면 최종투표율이 70% 안팎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4년부터 사전투표율과 본투표율의 경향을 따져봤을 때 "사전투표율과 최종투표율 격차는 대략 40%p 정도 난다"라며 "이번에 그 격차가 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60%대 후반이고, 지금까지 패턴이라면 70%대 초반"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사전투표율이 높다는 것은 투표의 열기가 높다는 뜻이며, 그렇다면 그 투표를 지배하는 정서가 무엇인지를 봐야한다"면서 "예컨대 지난번 대선에서는 소위 말하는 '문재인 정권 심판'과 '이재명 비토' 열기가 상당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역대 최고 투표율을 찍고도 이재명 후보가 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평론가는 지금까지 나온 여론조사를 종합해 봤을 때 총선의 성격을 '정권심판' 혹은 '정권견제'로 규정했다. "정권심판론과 정권안정론의 격차가 10%p 이상 난다"면서 "유권자들이 이 비율대로 투표장에 나온다는 건데, 국민의힘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접전지들을 민주당에 내줄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뜻"이라는 내다봤다.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 역시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여전히 200석(범야권)대 100석(범여권)으로 본다"라며 "국민의힘이 지난번 총선보다 더 많은 의석(103석)을 얻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그는 "부산에서도 수영구와 연제구가 그렇고, 경남에서도 진해라든지 다른 곳 몇 군데는 되게 어려워 보인다. 경기도에서도 분당갑을은 좀 위험하다"라며 "지난번보다 지역구(84석)에서 더 많은 의석을 얻기 어렵고, 비례 정당투표에서도 비례표가 분산되기 때문에 지난 총선의 19석보다 덜 얻게 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사전투표율 역시 "정권 심판론이 반영된 투표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며 "이전보다 보수층이 더 많이 사전투표소에 나오기는 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전투표는 진보 진영이 더 많이 한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보수쪽에서 '이재명하고 조국을 심판하자'라는 분노가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권에 대한 분노가 더 커 보인다"라며 "고고하게 흐르는 프레임과 흐름은 '정권심판'"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방증으로 그는 7일 있었던 권성동·나경원·윤상현 후보 등 국민의힘 중진들의 잇따른 기자회견을 거론했다. "개헌 저지선이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을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보고를 통해서나 혹은 직감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개헌 저지선만 지켜달라'라고 캠페인을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120석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면, 굳이 저런 캠페인을 할 이유가 없다. 본인들이 상당히 어렵다라는 걸 자인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신중론- 민주당 우세이지만 보수층도 결집]
이강윤 "민주당 단독 과반 가능, 국힘 105-120석"
김대진 조원C&I 대표 "민주당 140~155석, 국힘 110~130석"
하지만 신중론도 만만치 않았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사전투표율은 지속적으로 10년째 높아지고 있고, 원래 사전투표는 호남지역이 높았아서 (이전 사전투표에 비해) 특이한 점은 없는 것 같다"라며 "여야 누가 유리 혹은 불리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야당의 우세라는 구도 자체가 역전되지는 않았지만, 여권도 바닥을 치고 오르는 추세이기 때문에 섣불리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이강윤 정치평론가 역시 "사전투표율이 높다는 것은 더이상 뉴스도 아닐뿐더러, 사전투표율만 가지고 어느 특정 정당에 유리하다 혹은 불리하다는 말을 하기도 어렵다"라며 "민주당 지지자들이 조금 더 많이 사전투표소에 나가기는 했겠지만, 뚜렷한 경향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거대 양당의 몫은 합쳐서 280석 정도이고,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다른 정당들이 나머지를 가져갈 것으로 본다. 이 파이 자체는 불변일 것"이라며 "민주당의 단독 과반은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100석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국힘의) 105~120석 정도 예측한다"라고 전망했다.
특히 "모든 선거 때 지지층의 막판 결집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 여권측 지지자들의 결집 동인이 더 강하다"라며 "'범야권 200석'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나서서 '우리가 어렵다, 나를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라고 말한 게 국민의힘 지지층을 긴장하게 만들었다"라고 짚었다. 또한 공영운, 김준혁, 양문석 등 민주당 후보들의 논란이 언론에 집중적으로 조명된 점 역시 지적했다.
김봉신 메타보이스 이사는 "사전투표율의 총선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전투표율이나 총투표율이 높다고 민주당한테 무조건 유리하냐?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라며 "지난 대선 때는 사전투표율이 높았지만 민주당이 졌고, 지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는 투표율이 낮았지만 민주당이 이겼다"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지금은 민주당의 미세한 우세를 반영했다는 정도이다. 오히려 투표율이 극단적으로 높아지면 '알 수 없다'가 된다"라고 봤다.
김대진 조원C&I 대표는 "높은 사전투표율로 야권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은 맞지만, 반대로 본투표 때 보수가 더 결집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면밀히 봐야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현재 상태에서 민주당은 140~155석 정도의 의석수가 유지되고 있고, 국민의힘은 110~130석을 계속 왔다갔다 하고 있다"라며 "국민의힘이 격전지에서 모두 패할 경우에는 민주당이 170석을 넘겠지만, 길고 짧은 건 끝가지 가봐야 안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비통계적' 요소들을 언급했는데 "지금의 여론조사 환경이 굉장히 어려워져 가고 있다. 안심번호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여론조사 응답층에 포함되지 않는 '알뜰폰' 사용자들도 많다"면서 "20대와 30대의 경우, 그 중에서 특히 여권 지지 성향의 젊은층일 경우 여론조사에 잘 잡히지 않는다. 조사에 포함되지 못하는 여론들이 분명히 있다. 민주당의 우세 자체는 유지되고 있지만, 몇 석으로 이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여권 승리- 국민의힘 제1당 탈환]
엄경영 "여론조사 진보 과표집...국힘 과반, 민주당 130석, 조국혁신당 13석"
지난 2월 말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170석'을 예측했던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의석수를 조정하기는 했지만, 평론가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여전히 여권의 승리를 점쳤다. 엄 소장은 "사전투표율이 높은 것은 우선 지금까지의 추세가 그렇고, 또 본투표와의 분산투표 성격을 갖게 된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봤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사실상 처음으로 사전투표를 독려하면서, 사전투표에 보수도 가세했다. 오히려 이번 사전투표는 보수 쪽에 좀 더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라며 "지금은 양 진영의 총결집 상태가 예상되기 때문에, 사전투표율만 갖고 어느 정당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는 좀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총선 최종투표율을 "65% 정도"라고 예상하며, 이 역시 여권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요소로 짚었다. "총투표율이 높으려면 2030세대도 투표에 가세해야 하는데, 다른 세대들이 결집하는 데 반해 2030세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라며 "지금은 60대 이상과 4050세대의 투표 전쟁"이라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까지 시행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일종의 '과표집'으로 봤다.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형성된 강력한 팬덤이 여론을 주도하고 적극적으로 응답에 나서면서 실제 여론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오차범위 내 경합지역의 경우 국민의힘이 차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
엄 소장은 "국민의힘이 과반을 얻고, 민주당은 비례정당과 합쳐서 130석 정도 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조국혁신당은 13석 안팎, 기타 군소정당 소속이 나머지"라고 예상했다. 다만, 투표 의향을 결정하지 못한 채 미온적인 2030세대가 남은 기간 동안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