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민족자주‧민주화운동에 앞장서온 배다지 겨레의길민족광장 상임의장이 별세했다.
민족자주의 등불 고(故) 배다지 의장 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배 의장이 13일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향년 90세.
장례위는 "비통하게도 배다지 의장께서 13일 오후에 운명하셨다. 민족자주의 기치를 들고 한 평생 이 땅의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해 헌신해 오신 배다지 의장으로, 시민사회장으로 치르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고인은 1934년 3월 부산 기장에서 태어나 1946년 장안초등학교 6학년 때 '동맹휴학'에 참여했고, 1948년 동래중학교 재학 당시 '남한단정수립반대 동맹휴학' 투쟁을 벌였다.
고인은 동래고를 나와 부산대를 다니다 1955년 민족문화협회에 참여했고, 1958년 부산대 4년 중퇴한 뒤 국제신문사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했다.
이후 고인은 1960년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도맹 간사장, 1961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고, 2‧8한미경제협정반대 경남공동투쟁위와 민족자주통일경남협의회 결성에 가담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민주민족청년동맹과 민족자주통일협의회가 해체되면서 지명 수배되었다가 이듬해 해제되었으며, 1964년 옛 마산일보(현 경남신문) 기자 생활을 했다.
배다지 의장은 1968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됐고 징역 3년을 받았다. 이후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다 1987년 자주평화통일부산회의 창립에 참여해 의장대행을 맡기도 했다.
또 고인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부산연합 상임의장으로 있다가 1989년 국가보안법, 집시법 등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6개월간 복역했다.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부산연합 상임의장을 지낸 고인은 1995년 '부산땅 하야리아 되찾기 시민대책위' 상임대표를 맡아 미군부대 기지 반환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배 의장은 1997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1999년 3월 부산흥사단 제정 '존경받는 인물상' 수상, 2000년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대표 겸 부산대표, 2001년 6월~2003년 6월 사이 부산교통공단 상임감사를 역임했다.
배 의장은 2010년 6월 민족광장을 설립해 상임의장으로 취임했고, 같은 해부터 2023년까지 김대중부산기념사업회 창립 후 이사장을 역임했다.
빈소는 아시아드장례식장 3층 VIP실에 마련되었고, 추모식은 14일 오후 6시 빈소에서 열린다. 15일 오전 8시 발인에 이어 오전 9시 30분 부산민주공원에서 영결식을 진행한다.
고인의 유해는 부산영락공원 화장 후 추모공원 가족묘에 안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