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참 모를 일이다. 나는 어떻게 하다보니 글쓰기와 옷입기 두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는데 글쓰기 수강생으로 온 분이 SOS를 요청했다. '선생님, 저희 집에도 와주세요. 코디가 너무 어려워요!' 한 번 스타일 강좌를 수강했음에도 스스로 학습하고 실천해야 하는 강좌로는 성에 차지 않았나보다(사실 코치가 '이렇게 하세요!'라고 하는 게 제일 속시원하긴 하다). 날짜를 맞춰 그녀의 집에 방문했다. 4칸 디톡스를 할 것이기 때문에 옷과 신발, 가방을 마루에 모아 놓으라고 미리 말해 놓긴 했지만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이 나왔다. 이렇게 정갈하게 준비해놓기, '있긔없긔'?
옷은 준비되었겠다. 바로 4칸 디톡스를 시작했다. 4칸을 어떻게 분류할지 설명하고 그에 맞는 상의와 하의를 알맞은 칸으로 이동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거나 아직 초등학생일 경우 엄마의 스타일은 다양해지기 어렵다. 엄마의 케어가 필요할수록 생활의 중심이 아이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옷도 예외는 없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보다는 몸이 편한 스타일을 찾는데 그게 익숙해지면 취향은 사라지고 기능성과 활동성을 최우선으로 하게 된다. 그런 스타일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몸을 중심으로 하다 보면 마음이 허해지는 경우가 있기에 마음이 허해지지 않도록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에 스타일의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주면 되겠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은 생소하기에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민을 하다보면 이 옷이 왜 이 칸에 들어가야 하는지가 보이고 그렇게 되면 4칸 디톡스가 완성이 되는 것이다. 네번째 사진을 봤을 때 어떤 칸의 옷이 가장 많은가? 다행히 마음에 들고 자주 입는 칸의 옷이 가장 많아 보인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만 자주 입지 않는 칸의 옷과 마음에 들지 않고 거의 안 입는 칸의 옷도 꽤 된다. 4번째 칸의 옷은 오래된 옷, 과거의 옷, 취향에 맞지 않는 옷 등으로 현재 가치가 떨어지는 옷이므로 모두 비우기로 했다. 이제 2번째 칸의 옷을 볼 때이다. 마음에 들지만 거의 안 입는 옷은 어떤 옷일까.
귀여운 카라의 어깨에 볼륨이 들어간 옷은 과거에 좋아했던 디자인이었다. 귀여운 이미지도 있던 의뢰인에게 예전에는 어울렸겠지만 40대가 된 지금은 취향이 달라졌다.
개인의 이미지는 정적인 느낌과 동적인 느낌으로 나뉘는데 보통 차분하고, 조용하고, 진중한 느낌이라면 정적인으로 나뉘고 발랄하고, 밝고, 활기찬 느낌이라면 동적인으로 나뉜다. 정적인 이미지의 사람은 과한 패턴이나 세 보이는 디자인이 어울리지 않는데 특히 밝고 화사한 색깔이 잘 어울리는 의뢰인이 어둡고 탁한 원피스를 입으면 그 매력이 반감된다.
멋쟁이 언니들도 나만의 멋을 찾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패션에 대한 시각을 넓히기에는 도움이 되나(이런 스타일도 입는구나!) 나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추천하기에 멋쟁이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패션을 추천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왕 땡땡이 코트는 아웃! 어울릴 거라 생각해 비싸게 주고 산 골지 가디건이 너무 멀쩡했지만 잘 입기에는 어려웠다. 기장이 애매한 아이템은 어떻게 해서든 애매한 기장을 가리거나 보완해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아우터 용도로 입는 아이템은 수선하지 않는 이상 최적의 비율을 맞추기 어렵다.
2번째 칸에 있었던 아이템 중 살리고 싶었던 아이템을 보자. 차콜색 셔츠는 상의처럼 입기에는 좀 벙벙했다. 오버핏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이미지가 아니었기에 안에는 붙는 탑이나 반팔을 입고 가디건처럼 걸쳐서 입는 용도를 추천했다.
연보라색의 얇고 활용도도 좋은 목이 올라오는 니트가 있었는데 이 색이 안 어울리고 어색하다고 생각해서 입지 않고 있었는데 갖고 있는 옷 중에 BEST였다. 이처럼 어떤 이유로 잘 입지 않지만 의외로 입었을 때 '꽤'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 있다. 이런 아이템은 이런 기회를 통해 '소생'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채로 낭비될 수밖에 없다.
갖고 있는 옷을 더 잘 입기 위해서는 혼자 끙끙대지 말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면 돈 낭비와 옷 걱정을 덜 수 있다. 흰색 부츠컷 데님이 길이가 애매했는데 굽이 약간 있는 메리제인 슈즈와 매치하니 찰떡이었다. 어떤 신발과 매치하느냐에 따라서 바지의 수명이 결정되기도 하는데 그래서 코디 조합을 정말 많이 해봐야 한다.
<옷장 속 문제>
1) 오래 전 퍼스널 컬러 컨설팅을 받았었는데 가을 톤으로 나와 참고하여 옷을 샀지만 정작 베스트 색은 없었다. (잘 어울리는 연보라색 니트가 애매하다고 생각해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음)
2) 멋쟁이 언니의 추천으로 과감한 디자인의 아이템이 있었지만 의뢰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3) 코디의 색깔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과 편견이 있어서 그렇게만 입다 보니 옷의 다양한 활용이 어려웠다.
4) 아이템이 없는 건 아닌데 필요한 기본 아이템(이너로 입을 티셔츠나 얇은 니트 등)이 없어 갖고 있는 아이템 중 코디가 안 되어 못 입는 아이템이 있었다.
<어떻게 입을 것인가? 스타일 처방>
1) 옷이 단정하다고 신발도 단정할 필요는 없음. 옷이 검은색이라고 신발도 검은색일 필요는 없음.
2) 아이템을 통일시켜야 한다는 '맞춤 강박'에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코디 조합을 시도할 것. 재킷이나 가디건 안에 걸칠 얇은 이너 티셔츠(슬리브 티셔츠)를 구비할 것
3) 모범적인 이미지와 세련된 이미지가 함께 있어 벙벙한 핏이나 후들거리는 소재보다는 형태가 잡혀 있는 소재와 레귤러 핏에 집중할 것
<4칸 디톡스 옷터뷰>
1) 4칸 디톡스를 받아보니 어떤가요?
재밌었구요. 인형 옷 갈아입히기 게임하는 것 같았고, 입을 옷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선생님이랑 이것저것 조합을 해보니까 '입을 만한 게 꽤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항상 쇼핑을 하러 가서 뭘 사야될지 모르다가 엉뚱한 걸 사서 왔는데 '뭐가 없으니 뭘 사야겠다' 하는 게 좀 정리가 되어서 좋았어요.
2) 4칸으로 나눠보니 새로 보이던 게 있던가요?
처음에는 4개로 분류하는 게 기준이 대개 애매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하면서 보니까 내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던 (2번째 칸에 넣었던) 게 자주 안 입다 보니 마음에 안 드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3) 오늘 한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무엇인가요?
나한테 절대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던 연보라색 니트의 재발견이랑 믹스매치 못해서 정장 스타일 치마 반바지에 뭘 매치해야 되나 싶었는데 의외로 줄무늬 티셔츠랑 입었을 때 괜찮아서 신기했어요. 신발도 저는 항상 깔맞춤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위의 옷이랑 같은 색을 신어야 한다는 게 있었는데 직접 비교해서 신어보니까 '아 고정관념이었구나.'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4) 이건 하지 말아야겠다 떠오른 게 있나요?
깔맞춤이랑 남들 따라서 있어 보이고 싶어서 샀던 명품들? 그거 살 돈으로 차라리 나에게 어울리는 것들을 사는 게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5) 가장 후회되는 탑3 아이템을 꼽는다면?
엄청 화려한 패턴의 루이비통 스카프, 주로 스카프들인 것 같아요. 하고는 싶었으나 어떻게 해도 어울리지 않는. 그리고 벨트도 해본 적은 있는데 명품 로고가 너무 눈에 띄어서 괜히 혼자 신경 쓰여서 안 하게 되더라구요. 랑방 트위드 재킷도 어떤 행사에 참여하려고 구매한 건데 그 행사 때는 입었지만 '이거 살 돈으로 더 어울리는 아이템을 많이 살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 재킷은 할머니 될 때까지 입으려구요. ㅎㅎㅎㅎ
6) 4칸 디톡스를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저는 저랑 비슷한 나이인 40대 초반의 엄마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이 나이가 20대 전성기 때 입었던 옷들을 이제는 좀 내려놓고 나한테 어울리는 걸 찾아야 되는데 그 옛날 때 입었던 아이템들을 나중에 어울릴 거라 생각하고 쌓아놓고 그러다 보니 더 나한테 맞는 게 뭐지?를 잃어버린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저 같은 과거의 스타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엄마들한테 추천하고 싶어요.
<코치의 4칸 디톡스 후기>
코치로서 옷을 대하는 가치관 중의 하나는 입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모든 옷들이 다 입었을 때 설레고 좋고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입었을 때 나의 모습을 부정하거나 보기 싫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내 친구들을 봐도 자신을 잘 꾸몄던 사람도 엄마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육아에 에너지를 분산해야 하며 그런 모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편한 옷을 추구할 때는 편하게 입다가 또 그 시기가 지나서 에너지의 비중을 나에게 쏟을 때가 오면 또 나를 위해 쓰면 된다. 엄마라고 다 멋쟁이일 필요는 없지만 옷이 자존감 하락에 영향을 준다면 외면에 변화를 주는 것도 좋다. 자존감을 높이는 건 드라마틱한 변화가 아니다. 옷장이 나를, 내 삶을 잘 담고 있는 것. 많은 40대 여성들과 엄마들이 옷장이 나를, 내 삶을 잘 담고 있는지 생각해봐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옷장경영 4칸 디톡스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참가비는 콘텐츠 사용으로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