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강 공원에서 보이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한강 공원에서 보이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 박수아
 
국회의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벚꽃이 졌다. 올해 벚꽃은 22대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했다.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유권자들의 열기처럼 선거 기간 내내 시민들 곁에 피어있었다. 분분한 낙화.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양화 한강 공원을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국회는 다를까?' 길에 떨어진 꽃잎을 보니 나와 처지가 같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 박수아. 1992년생 전세 사기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이건 나의 이야기다.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안녕하세요, 605호 박수아입니다. 이번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이사 가려고 문자 드립니다. 전화를 안 받으셔서… 보시는 대로 바로 연락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605호 박수아입니다. 문자 보시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수신 불가 안내음과 답이 없는 문자, 지난해 9월부터 10월까지 있던 일이다. 임대인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집을 소개한 부동산에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몇 번을 물어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한번 연락해 볼게요", "저희도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없으시네요", "저희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

11월, 임대인이 잠적한 지 2개월이 되었다.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부동산에 연락했다. 그날 저녁, 임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연일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연락은 되었으니까.

이후 임대인과 연락이 두절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임대인은 "자금 융통이 안 된다"라며 3개월의 계약 연장을 요구했다. 계약 당시, 전세 자금을 대출받은 나는, 임대인이 계약 기간 내 보증금을 미상환할 경우 연체자가 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있었던 최선은 특약을 추가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한 줄짜리 동아줄을 계약서에 추가했다.

3개월이 지났다. 임대인은 약속을 지키는 대신 다시 한번 재계약 요구를 했다. 당연히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언성은 높아졌다. 점점 무기력해지던 중, 집주인이 날린 카운트 펀치.

"드릴 돈이 없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구해서 드리면 될까요, 방법 좀 알려주세요. 네?"

난 결국 변호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날, 변호사는 나에게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전세 사기 피해자, 박수아' 그렇게 동아줄이 끊겼다.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 내게 생긴 것이다. 내 검색창은 법률 용어로 가득 찼다. 그러면서 나와 같은 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임대인들의 욕망', 그 너머의 문제들 
 
원희룡 후보 지지자 폭언 사건에 '분통' 김병렬 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 부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원희룡 후보 지지자 폭언 사건 관련 대책위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원희룡 후보 지지자 폭언 사건에 '분통'김병렬 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 부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원희룡 후보 지지자 폭언 사건 관련 대책위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남소연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위원회에서 최종 의결한 전세사기피해자등 가결 건은 총 1만4001건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른 데다 피해자 접수를 안 한 사람도 있을 테니, 아마도 더 많을 것이다. 

나도 전세 계약을 할 당시에 나름 문제가 없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 서울에서 부채가 없는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빚은 감안해야 한다. 문제가 터진 지금 집은 빚 규모가 커 보증보험 가입이 되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지만, 임대인과 부동산 중개인은 "이 정도 빚은 통 건물주라면 으레 있는 데다가, 규모가 있어 빚도 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임대인이 통건물주라고?' 다시 한번 살펴보니 6층. 총 41개의 집이 있는 곳이라 내심 안심했다. 이렇게 통으로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빚이 있어도 안전할 것 같았다. 실제 그 건물에 사는 이웃들에게도 보증금 문제는 전혀 없었다. 나쁘지 않은 매물이었다. 그러니까, 계약 당시에는 그랬다.

물가와 금리가 오르며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임대인은 높은 금리로 대출 이자를 갚기 힘들게 되었다. 그가 운영하던 사업까지 어려워졌다. 집을 내놓아도 전세 보증금을 내고 들어올 사람도 없었다. 이웃들이 하나 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기 시작했다. 결국 2023년 6월부터 등기부등본에는 임차권 등기 등록자가 속속들이 생겨났다.

생각할수록 답답했다. 부동산 가격이 끊임없이 오를 때도 나는 집을 사지 않았다. 은행 부채도 세입자에게 받는 보증금도 부채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빚을 지기 싫었을 뿐이다. 그런데 세입자들이 낸 돈과 은행에서 빌린 돈을 합쳐 아주 적은 금액으로 집주인이 될 자격이 생기다니. 남의 돈으로 집을 사고 투자 수익을 노리는 꼴이다.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빚을 빚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레버리지' 이 단어에 혹한 사람들은 집을 사려고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이들에게 장벽은 없었다. 언제나 개구멍은 있었고, 어떻게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정부의 대출 규제나 투지 규제 정책에는 늘 허점이 있었고, 이렇게 흘러나오던 돈이 결국은 주거 안정이라는 제방을 무너뜨려 버렸다. 전세 제도의 허점을 알아보고 빚을 내 주택을 구매하던 임대인들은 주택 가격이 상승하자 그 몫을 챙겼고, 반대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자의든 타의든 그 부담을 임차인에게 돌렸다.

그리고 1만4001건 이상의 전세 사기 피해자가 생겼다. 단순히 갭 투자를 하여 레버리지 효과를 노린 '임대인들의 욕망' 때문일까? 아니다. 그들의 욕망이 빚으로 바뀌어 집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든 정부 정책과 제도와 시스템 실패.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생겨났다. 

KB경영연구소는 '전세 제도의 구조적 리스크 점검과 정책 제언(2023)' 보고서를 통해 현재 전세 제도가 '무자본 갭투자를 기반으로 하여 조직적인 전세 사기가 가능한 구조'라 비판했다. 전세는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인 만큼 매매가격 하락 시 직접적인 손실이 발행하며, 주택경기 호황기에 소자본으로 보유 주택 수를 늘린 경우 손실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임대차 3법 이후 급등한 전세 가격을 기반으로 투자가 증가했고, 최근 공시 가격 하락으로 전세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증가했다며 보증금 미반환 이슈가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함을 우려했다.

22대 국회의원들이 꼭 해야할 일 

나를 포함한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어떤 의미일까? 십 년을 모은 돈에 은행 빚을 얹어 전세 보증금을 마련한 이들. 새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이들을 위해 어떤 법을 만들어야 할까? 계약서에도 끙끙대는 내 법률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이 모든 전세 사기 피해에 대해 정부와 국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든 개구멍으로 흘러나온 물에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익사 중이다.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지고 완전한 피해복구를 해야 한다. 추가예산을 투입하든 전세 제도를 개편하든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는 홍수나 물난리 같은 천재지변에도 각종 지원책을 만든다. 하물며 사람이 만든 재해인 전세 사기 문제를 두고는 왜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가? 22대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묻고 싶다. 

22대 국회의원들이 추진할 1호 법안, 1호 추가경정예산은 전세 사기 피해를 복구하는 일이어야 한다. 당신들을 믿어달라고 외치던 선거를 기억하라. 무엇으로 우리가 당신들을 믿어야 하는가?
 
 떨어진 벚꽃잎과 돋아나는 새순. 그리고 민들레
떨어진 벚꽃잎과 돋아나는 새순. 그리고 민들레 ⓒ 박수아

땅에 떨어진 벚꽃잎을 보며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만히 보니 빛을 바래가는 꽃잎 옆, 연녹색의 싱싱한 생명력이 돋아나고 있었다. 기껏해야 10일 정도 피었다 지는 국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벚나무는 꽃을 떨구어 냈지만 이제 초록의 잎으로 그늘을 만들고 있다.

나는 그 아래에서 더위를 피한다. 이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잎을 피우고 그늘을 만들어 달라는 말에 귀를 닫지 말라. 고통의 소리에 귀를 닫는 정권과 국회는 언제든 추방될 수 있다.

#전세사기#전세사기피해자#전세사기피해청년#의견기사#칼럼
댓글1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92년생 대한민국 청년의 시선을 담다. 시민 기자 박수아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