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의 폭주에 결정적 제동이 걸렸다. 얼마 전 끝난 4.10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여당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든 참패를 경험한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비례위성 정당까지 포함하더라도 전체 의석수의 3분의 1 수준인 108석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반면 민주당의 175석을 필두로 한 범야권은 무려 192석을 확보했다. 범야권이 개헌과 탄핵이 가능한 의석수인 200석을 획득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안도가 교차하는 가운데 범야권의 200석 획득 실패 원인(?)을 둘러싼 갑론을박도 치열하다. 분명한 건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과 폭정에 주권자들이 준엄한 심판을 했다는 사실이다. 윤 정권은 임기 내내 극단적인 여소야대 국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사라졌으며 국정운영의 동력도 급속도로 소진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에겐 이제 꽃길만 펼쳐지는 것일까? 세상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민주당의 이번 총선 압승을 가만히 뜯어보면 불길한 기운이 감지된다. 전통적인 민주당의 아성이라 할 서울에서 위기징후가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서울 압승의 이면에 도사린 불길한 신호
민주당이 지난 21대 총선에 이어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압승을 했건만 무슨 불길한 신호가 감지된다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서울대첩을 거뒀다. 서울 지역구 의석 총 48개 가운데 37개를 석권했으니 말이다. 물론 직전 총선인 지난 21대 총선에서의 압승에 비하면 의석수를 3개(도봉갑, 마포갑, 동작을)잃긴 했지만 대승이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거둔 서울 득표율을 21대 총선과 비교해 보면 사정이 녹록지 않음을 금방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표는 서울 48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얻은 득표율을 직전 총선인 21대 총선과 비교한 것이다. 참고로 21대 총선 당시에는 서울의 지역구가 49개였다(득표율의 소수점 둘째자리는 표기를 생략했으나 득표율 변화 결과에는 반영함).
위의 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21대 총선과 22대 총선을 비교할 때 민주당은 서울에서 득표율이 감소했다. 평균 득표율이 줄어든 건 물론이지만 질이 더 나쁜 건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득표율이 직전 총선에 비해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직전 총선에 비해 득표율이 미약하게나마 증가한 지역구는 서울 전체 지역구 48개 중에서 고작 11개 지역구에 불과하다.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서 민주당 득표율이 크게 감소한 것도 눈길을 끌지만, 민주당이 수성에 실패한 3개구(도봉갑, 마포갑, 동작을)에서의 민주당 지지율 격감은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다.
서울과는 달리 경기도는 더 강력한 민주당의 아성으로 변신 중
서울에서 민주당이 거둔 압승의 이면에 도사린 불길한 신호는 경기도에서 민주당이 거둔 대승과도 비교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경기도 전체 의석 59개 가운데 51개를 석권했다. 득표율은 54.3%였다. 민주당이 이번 22대 총선에서 획득한 경기도 의석수는 전체 60개 가운데 53개였다. 2석이 늘어난 것이다. 거기다 민주당의 평균 득표율도 지난 총선의 54.3%에 비해 54.8%로 증가했다. 아래 표를 보면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경기도에서 얼마나 맹위를 떨쳤는지를 알 수 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기존에 승리했던 선거구 거의 전부를 수성했고 2석을 추가로 늘렸을 뿐 아니라 경기도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꿈꿀 수도 없었던 이천시, 포천시가평군, 여주시양평군 등에서 국민의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선전했다. 이쯤되면 경기도를 민주당의 아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집값 상승으로 민주당에게 험지로 바뀌어가고 있는 서울
서울은 아주 오랫동안 민주당의 근거지였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민주당이 서울에서 패배하고 승리한 적은 없다. 민주당에게 있어서 서울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략거점이다.
그랬던 서울이 2014~2021년에 걸친 부동산 대세상승을 경험하며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강남3구를 위시해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의 집값이 다락같이 올랐고 그 외 나머지 자치구들의 집값도 급등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서울은 명실상부한 중상층 도시로 재편됐고 부동산 관련 이슈(부동산 관련 세금이나 재건축 및 재개발 등의 이슈)에 다른 어떤 지역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강남3구는 말할 것도 없고 강북에서 손 꼽히게 집값이 높은 공덕동, 아현동, 도화동, 용강동, 대흥동, 염리동, 신수동이 포진한 마포갑에서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에게 패한 건 의미심장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민주당이 승리한 곳 대부분에서 민주당은 직전 총선에 비해 득표율이 줄었는데 정권심판론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이렇게 고전(?)한 이유를 부동산 이외에 다른 곳에서 찾는 건 어려울 성 싶다. 강남과 마용성은 물론이거니와 서울에 주택, 그 중에서도 아파트를 소유한 유권자 상당수에게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의 부동산 감세 정책과 재건축 및 재개발 규제 완화 드라이브가 주효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히 합리적이다. 서울 유권자들의 표심이 이렇다면 민주당이 다음 대선에서 서울 필승을 장담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건 사실 서울이기 때문이다. 20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후보)은 1639만4815표(48.56%)를 얻어 1614만7738표(47.83%)를 획득한 이재명 대표(당시 민주당 후보)을 눌렀다. 두 사람 사이의 전체 표차이가 24만7077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지난 대선의 승패를 갈랐던 건 서울이었다.
특히 충격적인 건 이재명 대표가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서 승리한 구가 11개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표는 은평, 서대문, 강북, 도봉, 노원, 성북, 중랑, 강서, 구로, 금천, 관악에서만 승리했으며 이긴 구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을 근소하게 앞섰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14개구(종로, 중구, 동대문, 마포, 용산, 성동, 광진, 양천, 영등포, 동작, 서초, 강남, 송파, 강동)에서 승리했다. 특히 서초에서 윤 대통령은 65.13%를, 강남에서 67.01%를, 송파에서 56,76%를, 용산에서 56.44%를 얻어 이 대표를 압도했다. 강남, 서초, 송파, 용산에서 윤 후보는 이 후보보다 31만9478표를 더 득표했는데 이것이 대선의 결과를 좌우하다시피했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서 지난 대선 결과가 돌연 오버랩 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분명한 건 욕망에 불을 지르는 국민의힘의 부동산 정책에 효과적으로 맞설 민주당표 부동산 정책, 예컨대 창조적 재건축 및 재개발 대책이 지금부터 준비되지 않는다면 서울이 민주당에게 우호적인 도시로 남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