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야채 구매 목록에서 쪽파를 지웠다. 쪽파는 메밀국수 재료다. 메밀국수는 가다랑어포로 내린 육수에 간 무와 잘게 썬 쪽파, 고추냉이와 같이 먹어야 맛있다. 엄연히 맛의 한 축이다.
하지만 가격에 항복했다. 깐 쪽파 한 단에 2만 6000원을 낼 수는 없었다. 여름에 1만 4000원 하던 게 3만 원까지 찍을 기세였다. 처음엔 마트에서 가격을 잘못 찍은 줄 알았다. 당시가 겨울인 걸 감안해도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바로 옆 흙 묻은 쪽파는 1만 3900원이었다. 살까 망설이다 생각을 접었다. 쪽파가 아니라도 날마다 무, 쑥갓, 무순, 당근, 양파, 대파, 느타리, 숙주, 양배추, 청양고추를 다듬어야 한다. 쪽파만 끌어안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이참에 쪽파를 대파로 바꿔보기로 했다. 깐 쪽파 한 단이면 대파가 예닐곱 단이다.
테스트해 보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가다랑어포 육수의 진한 감칠맛을 매운 맛의 대파가 잡아줬다. 진즉에 쓸 걸 그랬나. 하지만 대파도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비싸다. 한 단에 875원짜리 대파는 눈 씻고 봐도 없다. 있으면 거래처 연락처 좀 주시라. 부탁이다.
품목별로 돌아가며 괴롭히는 채소값
사실 '널뛰는 물가'는 외식업자의 숙명이다. 2017년에는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계란 공급이 부족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옆 블록 빵집에서 계란을 못 구해 발을 굴렀다. 이때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도 의미가 없었다. 있어야 사지.
결국 우리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돈가스 덮밥을 한 달 가까이 팔지 못했다. 그 기간에 빵집 직원이 다급하게 가게를 찾아와 "혹시, 계란 한 판만 꿔 갈 수 없을까요?"라고 물어 온 적도 있었다.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그 다음에 터진 게 2022년에 벌어진 식용유 대란이었다. 이때도 만만치 않았다. 기름 한 통에 3만 2500원 하던 게 순식간에 7만 1000원을 넘어섰다. 거래처에선 아르헨티나의 콩 농사가 궤멸적인 흉년을 맞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니까, 그때는 시세가 폭등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이유도 없이 오른다.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다. 원인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오르는 게 일상이라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은 걸까.
그래도 저장성이 높은 재료들은 값이 저렴할 때 쟁여놓을 수 있다. 문제는 신선식품이다. 얘들은 매일 새롭다. 요즘엔 아예 품목별로 돌아가면서 기록을 갱신한다.
양배추는 2월에 세 통 1만 700원 하던 게 이번 주에는 1만 4800원이다. 양파는 겨우내 15kg당 1만 9500원이던 게 지금은 2만 9800원을 찍었다. 가격표를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양파는 지금이 제철이라 출하량이 제일 많을 때인데도 이 모양이다. 아무도 이유를 모른다.
그나마 싼 게 없을까 싶어 주변 청과물 가게들에 전화를 걸어 가격을 매일 물어본다. 외식업은 귀찮은 일의 연속이다. 서빙하고 요리하고 청소하는 것도 피곤한데, 날마다 시세까지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재료별로 돌아가면서 사람을 괴롭힌 게 1년이 넘었다.
물가상승률 3%가 무서운 이유
그동안 가격을 18개월 동안 세 차례, 총 2000원을 올렸다. 돈가스와 메밀국수 같은 기초 메뉴 대신 세트나 응용 메뉴 위주로 인상했다. 이대로 가면 기초 메뉴도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려야 한다. 나도 싫다. 물가가 오르면 마진이 남지 않는다.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찾지 않는다. 결국 뭘 해도 헛고생이다.
가격이 오르면 제일 무서운 게 어르신들 지청구다. '왜 저번보다 비싸졌냐'는 얘기가 비수처럼 날아온다. 죄송해 죽겠다. 와 닿는 바가 있어 더 죄송하다. 나도 밖에 나가면 손님이다. 요즘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내가 2035년쯤에 와 있는 기분이다.
당장 내가 즐겨 먹는 맞은편 가게 순댓국도 재작년에 8000원 하던 게 현재 1만1000원이다. 바로 옆 중국집 짜장면은 재작년에 3500원 하던 게 지금은 6000원이다. 그마저도 지금 양파값이 미쳐 날뛰는 바람에 죽을 맛이란다.
그도 그럴 게 물가 상승은 단리가 아니라 복리다. 1000원에서 10%가 오르면 1010원이다. 그 다음 인상률이 10%면 1010원을 기준으로 또 10% 인상이다. 그렇게 소비자물가 3% 상승이 1년 간 지속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소비자물가는 6월과 7월을 빼고 모두 3% 이상 올랐다. 상승 전 물가 대비로는 약 30% 가까이 오른 셈이다. 이런 예금 상품이 있었으면 모두가 진즉에 목돈을 만졌을 게다. 이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의 물가다.
인플레이션? 골목경제는 예전부터 스태그플레이션
매체에서는 작금의 상황을 인플레이션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훨씬 엄혹하다. 팬데믹 종식 무렵부터 골목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국면에도 물가가 상승하는 상태)에 시달리고 있다. 식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경기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채소값은 종류별로 돌아가며 미쳐 날뛰고, 상가 건물마다 눈에 띄게 공실이 늘어나고 있으며, 배달비가 아까워 음식을 포장해 가는 손님들이 점점 늘고 있다. 오후 8시가 되면 거리는 밤 11시가 된 듯 적막하다.
이 와중에 환율은 달러당 1400원을 코앞에 두고 있다. 하필 한국은행은 며칠 전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했다. 벌써 열 번째 동결이다. 물가 불안이 우려돼 섣불리 금리를 내릴 수 없다는 게 요지였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1년째 물가가 요동치는데 통화당국은 금리 인하 시점을 보고 있다.
올라가는 물가를 모른 채 하면 경기가 살아날까? 아니, 여기서 더 나빠질 경기라는 게 있나? 통화당국의 수장이니 가방끈 짧은 나보다 뭐든 더 잘 알겠지. 그나저나 수입 물가가 오르면 연달아 다른 품목의 물가가 또 날뛸 것이다. 한숨부터 나온다. 이게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