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만드는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4)’가 4월 23일부터 29일까지(이하 현지시각) 캐나다 오타와에서 진행됩니다. 11월 부산에서 이어지는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위한 마지막 회의입니다. 플라스틱 협약이 과연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한국의 시민사회는 어떻게 대응할지를 서울환경연합 박정음 활동가가 오타와 INC-4 현장에서 짚어봤습니다. [기자말] |
"Plastic production shut it down!" (플라스틱 생산을 중단하라!)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각) 캐나다 오타와 샤우 센터(Shaw Centre) 앞에 선 수백 명은 이렇게 함께 외쳤다. 이 샤우 센터에서는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정부간협상위원회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이날 이들의 외침처럼 우리 일상을 가득채운 플라스틱 생산을 종식할 수 있을까?
2014년 진행된 유엔환경총회에서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오염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플라스틱 오염, 위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후 국제적 논의가 꾸준히 진행된 결과, 2022년 3월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결의안이 175개국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 결의안은 플라스틱 해양오염에 한정하지 않았다. 생산하고 소비하고, 폐기되는 플라스틱의 전주기 관리를 핵심으로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제협약을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이는 전지구적 영향이 예상되며 파리협정 이후 최대 규모의 다자간 환경협약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협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총 다섯 번의 정부간협상위원회(Intergovernmental Negotiating Committee, 이하 INC)를 거쳐 '안'이 만들어진다. 그 중 캐나다 오타와에서 진행되는 회의가 네 번째 회의이며, 마지막 다섯 번째 회의는 2024년 11월 부산에서 진행된다. 이후 2025년 6월 예정된 전권외교회의를 거쳐 최종 체결된다.
INC는 각 국의 정부단과 이해관계자들(과학자, 산업계, 시민단체 등)이 모여 협약의 세부 규제와 이행, 그리고 재원 방안 등에 대해 이견을 조율하는 자리다. 그리고 이번 협약에 대한 각 국가의 입장이 어떤지, 변화는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네 번째 INC는 아주 중요하다. 처음 결의안에서 이야기되던 플라스틱의 전체 생애 주기(생산-소비-폐기)에 걸친 관리에 대한 내용이 약화되고, 오로지 플라스틱 사용 후 관리 및 처리(Downstream, 다운스트림)에 대한 논의로 집중시키려는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INC-4를 플라스틱 조약의 중추적인 내용이 "만들어지거나 끊거나 하는" 순간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플라스틱의 생산과 사용을 줄이는 (Upstream, 업스트림)을 포함한 플라스틱 생애 전 주기를 다루어야 한다고 외치고자 전세계 시민이 모여 행진했다.
플라스틱 시대를 끝내기 위한 행진
캐나다 의회 언덕엔 이른 10시부터 행진에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조금씩 모였다. 오타와 날씨는 6도~16도 정도로 초겨울에 가깝다. 추운 날씨에도 모든 대륙의 원주민 및 원주민 지도자, 최전선 지역 사회 단체, 기후 운동가, 청소년 지도자, 건강 전문가, 쓰레기 수집인(waste-picker), 환경단체, 과학자 등 200명 정도가 모였다. 공기는 차갑지만 행진을 시작하기 전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왜 여기 오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며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날 행진은 플라스틱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환경연대체, BFFP(Break Free From Plastic)가 이끌었다. 2016년부터 활동한 이 연대체는 전세계 3000개 이상의 단체와 개인 서포터들과 함께 플라스틱 오염 위기에 대한 지속적인 해결책을 추진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역시 이 BFFP에 함께 활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기자회견에는 원주민, 노동자, 청소년, 최전선 지역 사회 단체 등의 발언이 진행되었다. 그 중 '리버 워리어 인도네시아 (River Warrior Indonesia)' 의 설립자인 니나( Aeshnina 'Nina' Azzahra)는 이렇게 말했다.
"저와 같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플라스틱 오염으로 가장 고통을 받고 있으며, 우리는 취약한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환경에 플라스틱이 없기를 원하지만, 부디 여러분의 부담을 지구 반대편에 두지 마세요. 이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플라스틱 조약을 협상하기 위해 오타와에 오는 어른으로서,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우리의 권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발언 중간중간 플라스틱 오염에 기여하고 있는 산업계,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면 곳곳에서 비난이 터져나왔다. "Shame!!(수치스럽다!!)"
니나와 함께 온 니나의 아버지는 인도네시아로 흘러들어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매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한국어가 적혀있는 마스크 봉투도 있었다. 귀에 "Shame!!(수치스럽다!!)"이 계속 들리는 것만 같았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럴 때 신명나는 풍물패와 라퍼커션이 행진의 시작을 연다면 여기는 재즈 악단이 행진의 시작을 열었다. 신나는 재즈 음악과 함께 사람들은 몸을 흔들며 음악과 함께 구호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Let's go get'em! Let's go get'em! (가자, 그들을 잡으러 가자!)"
캐나다 의회에서 시작된 행진은 INC-4가 진행되는 샤우 센터(Shaw Centre)까지 이어졌다. 행진 속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피켓을 들고 여러 구호를 외쳤다.
"Cut plastic production NOW!" "Less plastic MORE LIFE!"
(대문자 단어가 함께 외치는 부분이었다.)
서울환경연합과 환경운동연합도 깃발과 함께 행진했다. 깃발에는 "99% of plastics Fossir fuels(플라스틱의 99%가 화석연료)"라고 적혀있다. 바로 옆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은 환경운동연합의 국제적 연대기구인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에서 활동하고 있는 'Sam(샘)'이다. 지구의 벗은 1969년 설립된 환경단체로 WWF, 그린피스와 함께 세계 3대 환경단체 중 하나다.
샤우 센터 앞에 도착한 이들은 구호를 외치다 서로 돌아가며 발언을 이어갔다. 인종, 나이, 성별, 국적에 관계없이 플라스틱이 우리의 삶, 지역, 지구을 어떻게 오염시키고,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들이 전한 이야기는 다 달랐지만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더 이상의 플라스틱 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즉 플라스틱 원료 생산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INC에서 러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은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규제 내용 삭제를 요구하는 등 협약에서 생산감축을 제외하려는 태도를 보여왔다. 또한 미국, 일본, 중국, 인도, 한국 등은 생산 감축보다는 폐기물 '재활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이번 INC-4에서 생산 감축 내용이 담길지가 중요한 쟁점 중 하나로 주목해서 지켜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