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둘째 아이와 함께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에 다녀왔다. 매년 봄 인천대공원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올해로 벌써 22회를 맞았다. 나는 큰아이가 초등생이던 시절, 두어 번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는 코로나 시국이라 집에서 쓴 뒤 우편이나 메일로 제출하는 형식이었다. 작년부터는 대면의 위험성이 누그러져 대회장에서 직접 쓰고 직접 제출하는 백일장 형태로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처음 대회에 잠가할 땐, 아이들에게 왜 이런 대회가 열리는지, 친환경, 생태, 지속가능성 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먼저 설명해줘야 했다. 주제도 친숙하지 않았지만 아이들 모두 평소 글 쓸 기회가 별로 없던 터라 무척 어려워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고 이리저리 계속 쓰다 보니 결국 한 편의 작품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 고무되었다. 큰 상은 아니지만, 아이가 쓴 글이 입선에 들어 매우 뿌듯했던 기억도 있다.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이기에 이번엔 중학생인 큰아이 없이 둘째만 함께 하기로 했다.
언니가 같이 못가 서운한 것도 잠시, 딸아이는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돗자리와 필기구, 모자를 준비하고, 가서 먹을 과일과 음료, 과자를 챙기며 소풍의 설렘을 만끽하는 듯했다. 아이가 더욱 고대했던 건 대공원 근처에 사는 내 친구가 그녀의 강아지와 함께 동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강아지, 고양이, 벌레, 곤충까지 온갖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에게 하루 종일 강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선물과 같았다.
대회 시간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였다. 우리는 대회시작 전 근처 식당에서 미리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 동네 터줏대감인 그녀를 따라 공원 근처 먹자골목 '만의골'에 있는 한 식당에 들어갔다. 탁 트인 마당께 야외 자리가 많아 강아지도 함께 입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 감자전, 칼국수를 시켜 먹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한 입 베어 물자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씹을수록 고소한 것이 그냥 먹어도 맛있고, 김치와 함께 곁들여도 별미였다. 몇 년 전 강원도에서 먹었던 손두부가 너무 맛있었다며, 다시 한번 그곳에 가고 싶다던 엄마 생각이 나서 가게 이름을 잘 새겨 두었다. 대왕 감자전도 바삭하니 맛있고 바지락이 들어간 칼국수도 국물이 시원해 좋았다. 딸아이는 나 한 입, 강아지 한 입 하며 호로록 즐겁게 잘도 먹었다.
친구 덕에 맛난 점심으로 두둑이 배를 채운 우리는 서둘러 대회가 열리는 문화마당으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공원 구경하며 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3주 전에 잠시 벚꽃 구경하러 들렀을 때는 이미 벚꽃이 반은 지고 없어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이제 그 자리에 새순이 돋아나 청명한 봄의 기운을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초록빛을 가득 품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거리를 걷다 보니 내 마음도 봄빛처럼 푸르러지는 것 같았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가족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글 쓸 채비를 하고 있었다. 행사장 주변으로는, 소방관 체험, 만들기 체험, 등 각종 부스가 마련되어 시끌벅적했다. 우리는 행사장에서 조금 떨어진 호수 앞에 돗자리를 깔았다. 호수 안에는 성인 팔뚝 만한 물고기들이 첨벙 대며 아이의 시선을 끌었다. 아이에게 대회장에서 받아 온 원고지를 내밀었지만 몇 자 쓰다 말고는 강아지와 한 번 놀고 물고기 구경 한 번 하며 쉼 없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렸다.
글쓰기를 얼른 마치고 이쁜 카페에 들러 시원한 커피로 분위기를 즐길 계획이었던 친구와 나는 마음이 바빴다. 하지만 아픈 엄마 덕에 외출이 힘들었던 아이에게 이 시간이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하니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결국 대회가 끝날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완성된 원고를 제출할 수 있었다. 그래도 뭐라도 꼭 써내야 한다는 말에 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딸아이가 기특했다.
쓰레기와 돗자리를 챙겨 공원을 나가는 길엔 또 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아직 꽃을 피우진 않았으나 아기자기한 장미넝쿨과 시원한 분수대의 물줄기가 눈길을 끌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갖가지 색의 튤립이 곳곳에 만발해 있었다. 풍차 아래에 넓게 펼쳐진 이국의 땅을 연상케 하는 방대한 튤립 밭에 내 눈도 호강을 했다. 벚꽃이 피고 지고 차례로 피는 꽃들 중에 튤립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아이는 한 손에 강아지 목줄을 잡고, 또 다른 한 손에는 떨어진 튤립 하나를 주워 소중히 들고 갔다. 하루 종일 뛰었는데 지치지도 않는지 엄마와 이모를 한참 앞지르며 잘도 걸었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만큼 회복해서 아이와 이렇게 멀리 외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감사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뭉클할 즈음 아이는 공원 남문 앞에 위치한 이동식 어린이 바이킹을 발견하고 방방 뛰며 기뻐했다. 우리는 시원한 카페에 갈 순 없었으나 대신 신나게 바이킹을 타며 손 흔드는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네가 좋으면 엄마도 좋아. 아쉽지만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아주 길고 알찬 여행을 마친 기분이 들었다. 드넓은 공원에서 푸르른 봄을 맘껏 느끼며 너와 함께 많이 웃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글도 쓴 오늘, 내 마음엔 지워지지 않을 따스한 봄빛이 스며들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