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21년 12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치료병동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021년 12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치료병동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유성호
 
메르스, 코로나 같은 신종 감염병 사태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은 누가 봐도 '공공의료의 중요성'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국내에서 알아주는 삼성서울병원조차 감염 환자의 대부분을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으로 전원했다. 진료병실이 부족했던 것 외에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확진자 치료를 부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국가가 재난 사태로 규정한 신종 감염병 치료는 국가의 책무이고, 이 책무는 경제적 문제 등으로 공공병원에서 해야 뒤탈이 없다고 본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도 공공병원이 전담으로 확진자 대부분을 입원 치료했고, 주요 대형병원은 중환자 일부만 치료했다. 민간병원은 명령과 충분한 보상을 담보로 일부의 환자만 수용했다. 이는 수익성에 영향을 주는 진료를 최소화하려는 현재의 보건의료 공급 구조의 연장선이다. 다시 말해 공공의료로 인해 민간 의료 공급은 감염병 사태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재난 상황에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빛을 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의료 체계 발전 과정의 잉여적 측면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국 의료 기술은 이제 세계적 수준이다. 이런 의료 기술 체계의 고도화는 아쉽게도 시장 중심적 의료 공급을 통해 이뤄졌다. 우선 수도권,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대형병원 공급이 이뤄졌고, 그것이 고도의료 공급으로 이어졌다.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대형병원 다섯 곳에 소속된 교수들이 일제히 주 1회 휴진을 선언한 가운데 4월 2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로비에 한 환자가 서있다.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대형병원 다섯 곳에 소속된 교수들이 일제히 주 1회 휴진을 선언한 가운데 4월 2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로비에 한 환자가 서있다. ⓒ 연합뉴스
 
전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되는 시기에도 지역엔 1차 의료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다. 지방 중소병원에는 의료 장비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지만 수도권 대형병원은 첨단장비가 줄지어 들어왔다. 그 결과 '빅5 병원'으로 불리는 대형병원들이 최첨단 치료 장비와 치료 기술로 지불 능력이 있는 환자들을 전국에서 빨아들였다. 그렇게 기술의학은 비약적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대다수 중소병원도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지역의료나 2차 진료를 포기하고 전문병원이나 요양병원 등 수익성 중심의 특화병원으로 전환을 꾀했다. 그 결과, 일부 전문 수술 부분은 기술 측면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뤘고 대기 없는 수술이 가능한 체계도 만들었다. 요양병원이 우후죽순 늘면서 집단시설관리 측면의 만성질환 운영 체계가 만들어졌다. 1차 의료 부분의 만성질환 및 지역 기반 방문 진료 등은 더욱 요원해졌다.

최근 벌어진 두 차례 감염병 사태에서 드러난 의료 대응의 우왕좌왕이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시장주의적 방식, 다시 말해 무정부적 의료 공급 체계가 일으킨 부작용이다. 우리는 기술의학 발전과 수익성 중심 의료 공급 체계의 긍정적 측면만 부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난맥상은 생명 존중이라는 의료의 본령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즉 부분을 수정해서 해결할 단계는 이미 벗어났다. 근본적으로 시장 중심의 의료 공급을 국가 책임의 계획적인 의료 공급으로 바꾸고, 의료 공급의 중심에 공공의료를 놓아야 해결이 가능한 단계에 이른 것이다.

공공의료에 대한 세 가지 오해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 본원.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 본원. ⓒ 권우성
 
하지만 공공의료에 대한 불신이 필요성을 가로막는다. 너무 오랜 기간 공공의료가 방치되다 보니 이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민간 의료 옹호 주장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로 '공공의료는 경제적 낭비'라는 논리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현재의 열악한 공공의료 기관의 처지가 한몫했다. 기관 수도 5%도 안 되고 병상도 전체의 10% 남짓인 공공의료 기관은 현재 국공립대병원을 제외하면 저소득 취약계층을 주로 진료한다. 이는 민간의료 기관이 방치한 환자들이 쏠리게 된 필연적 결과와 이를 중심으로 진료 체계를 구축한 정치 권력의 문제다.

공공의료 기관의 대부분이 저소득 취약계층의 진료가 중심이 되면서 주된 초점은 비용을 낮추는 것에 맞춰지고, 이런 진료 행태에 최적화된 의료진이 구비됐다. 당연히 수익성 없는 진료 구조가 재정지원 없는 공공병원 운영의 어려움을 만들고, 이는 공공병원의 낙후화라는 악순환을 낳았다. 만약 최소한의 공공의료 기관이 확보된다면, 임무 분담과 전달 체계 구축을 통해 효율적인 공공 전달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두 번째는 '공공의료는 과소 진료'라는 논리다. 민간의료 기관에서 흔하게 하는 각종 신의료기술과 첨단 검사장비 이용이 공공의료 기관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사실 과소·적정·과잉 진료의 차이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한국에서는 검사가 많고, 문진이나 병력 청취는 짧고, 수술이 많은 의료 공급 구조가 마치 표준진료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반대의 경우가 교과서에 나올 법한 진료일 가능성이 크다. 왜 반대로 여겨질까? 그동안 수익성을 위해서 돈이 되는 검사는 남발하고 돈이 안 되는 병력 청취나 문진은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의료가 잘못된 표준진료 수준을 따르지 않는다고 마냥 과소 진료라고 비난해선 곤란하다. 공공의료 기관에서 검사를 적게 하고 자주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도 이는 실제로는 적정 진료였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런 적정 진료가 과소 진료로 변질될 수도 있는데 이는 1차 진료의 공백 때문이다.

공공병원에서 환자를 계속 추적 관찰하지 못 한다면, 지역 1차 의료기관에서 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아쉽게도 1차 의료기관이 매우 부족하다. 동네 의원의 상당수도 전문 진료를 표방하는 클리닉이다. 때문에 지역으로 돌아간 환자들이 내원해야 하는 곳들도 모조리 특정 진료과의 동네 의원이다. 따라서 적정 진료를 받았더라도 추적 관찰은 다시 시장 중심 과잉 진료에 노출되는 괴현상이 벌어진다.

이런 착시를 막기 위해선 공공의료를 단순히 병원급에서 강화해선 안 된다. 지역의료와 1차 의료에서도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운영 거버넌스에서 지역사회 기반이 확대돼야 한다. 그러면 공공의료 기관의 과소 진료 논란은 착시임이 밝혀질 것이다.

끝으로 '공공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많다. 이 주장이야말로 허무맹랑한 모함이다. '의료의 질'을 '과잉 진료'로 착각하는 게 아니라면, 의료의 질은 의료진의 수준과 절대적인 양에 의존하는 문제다.

아쉽게도 공공의료 기관에서도 의료 인력의 수는 매우 적다. 이는 민간의료 공급이 적은 인력으로도 검사나 수술을 남발해 팽창 운영을 해 온 것이 정상적인 병원경영으로 고착화된 결과다. 공공의료 기관이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려고 해도 현재의 지불 구조 등에서는 여타 민간의료 기관의 인력보다 많은 인력 충원은 어렵다. 그렇다고 비슷한 수준의 인력을 가진 공공의료 기관이 검사를 남발해 인력을 충원할 수는 없지 않는가?

즉 인력 충원이 가능한 구조로 가려면 공공의료 기관이 확대돼야 한다는 역전제가 가능한데, 이는 정부가 인력 충원 문제를 방치해 성립하지 못 했다. 지금까지 어떤 정부도 공공의료 기관이 충분한 의료 인력을 갖추도록 지원하지 않았다. 공공의료 기관 지원이라고 해도 인력지원이 아닌 검사나 수술 장비, 병원 건물 등에만 지원해 왔다.

의료의 본질인 인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재정 지원이 없었다는 점은 심각한 악순환을 불러왔다. 게다가 공공의료 기관의 상당수는 의료취약지에 있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의료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 대우를 더 해줘야 한다.

총체적 개념으로서 공공의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난맥상은 생명 존중이라는 의료의 본령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난맥상은 생명 존중이라는 의료의 본령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 Hush Naidoo Jade Photogra
 
우리는 공공의료를 너무 협소하게 보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최소 수준의 '잉여' 공공의료는 공공의료의 실체가 아니다. 메르스, 코로나 때 수익성이 없어도 재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고전분투한 공공의료만이 공공의료인 것도 아니다. 단순히 입원 서비스를 중심에 놓는 공공병원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진단과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 치료의학만이 공공의료의 영역도 아니다. 시장 중심 민간의료의 대항마로서 공공의료만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핵심은 공공의료란 모든 보건 의료 영역에서 구현돼야 하는 공적 의료 공급을 총체적으로 뜻하는 개념이란 점이다. 이는 예방, 건강증진을 중심으로 하는 1차 의료와 골든타임이 중요한 응급의료 그리고 적절한 자원 배분으로 균등하고 평등한 의료 이용을 가능케 하는 모든 의료 공급을 뜻한다.

만약 주치의나 환자등록제 기반의 1차 의료 체계가 있었다면 소아과 오픈런은 없었을 것이다. 주치의가 있다면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이 줄고, 응급실 뺑뺑이도 개선될 것이다. 각 지역에 거점 공공병원이 충분한 의료인력과 설비로 준비돼 있다면 수도권으로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이 원정을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형병원에서 어려운 수술을 마친 환자도 수술 후 관리는 지역 공공의료 기관과 1차 의료기관에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공공의료는 이 모든 연결 체계와 의료 자원의 배분을 국가와 사회가 계획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큰 개념의 문제다. 따라서 이제 공공의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과제다. 언제까지 가난하던 시절의 의료 이용 모델에 따라 국가의 보건 체계를 시장에 방치할 것인가?

이제 의료 개혁의 모든 길은 '공공의료'로 향해야 한다. 공공병원, 공공의원, 주치의제, 공공 임상 교수제, 공공의대, 공공지역 의사제 등등 '공공'이 넘쳐나는 보건 의료 공급 체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덧붙이는 글 | 글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5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의료대란#공공의료#공공병원#주치의제#1차의료
댓글10

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