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노인 문제를 알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보기 위해 다양한 노년 관련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기자말] |
*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내 삶에 후견인이 필요해질 순간
문득 질문을 던져본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전혀 못 쓰게 되거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생겼다면 나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당장은 먹고 입고 화장실에 가는 기본적인 일에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겠지만, 그 외에 생활의 전반적인 결정을 내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은행 업무는 누가 대신하고 어떤 이가 재산을 관리하며 거주 문제를 결정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비혼자도 이혼자도 늘어나는 시대, 배우자나 자식이 없거나 혹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는 노인이라면 그 일을 누가 할 수 있고, 해야 할까?
'성년후견인' 제도를 알아두는 것은 이런 상황을 위해 필요하다. 아픈 환자의 신변을 대신 책임질 사람을 법적으로 지정하는 이 제도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 전자민원센터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질병·장애·노령 등의 사유로 정신적 제약을 가진 사람들이 존엄한 인격체로서 주체적으로 후견제도를 이용하고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개정 민법은 금치산·한정치산제도를 폐지하고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성년후견제도는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의 존중'을 기본이념으로 하여 후견 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였고 재산 관련 분야뿐만 아니라 치료, 요양 등 신상에 관한 분야에도 폭넓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정신적 제약이 없는 사람이라도 미래를 대비하여 성년후견제도(임의후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가족이 있는 노인이라면 이 제도가 필요없을까? 그렇지 않다. 노인이 아프면 당연히 그 배우자나 자식이 대신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대부분의 은행 업무는 본인이 직접 처리하도록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일시적인 위임장을 작성한 대리인이 대신할 수 있는 업무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환자를 대신해 행정적인 업무를 볼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성년후견인이 필요하다.
런데 환자 본인은 이미 행정 처리를 하기 힘든 정도의 질병이 있는 상태이므로, 이 신청은 환자의 성년후견인이 되려는 가족이나 검사 또는 지방자지단체장이 가정법원에 '성년후견인개시 심판'을 통해 청구해야 한다. 법원은 신청자가 결격사유가 없는지 판단한 후 성년후견인으로 지정을 한다. 이러한 절차는 각 지방 가정법원에서 상담해 볼 수 있다.
현재는 건강하더라도 질병에 걸릴 때를 대비해서 가족이나 주변의 믿을만한 인물을 후견인으로 미리 지정해둘 수 있는데 이를 '임의후견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공후견인'이라는 제도도 있다. 가족의 상황도 여의치 않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는 독거노인 환자의 경우 법원이나 지자체에서 상황을 판단하여 후견인을 지정하는 경우다. 즉, 노인과 친분은 없더라도 사회복지와 법적 업무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인물을 선정하고 교육하여 해당 노인의 후견인으로 지정하고, 재산과 신변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직업 후견인에 대한 이야기
영화 <퍼펙트 케어>는 미국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후견인 제도를 소재로 한다. 미국에는 전문적으로 후견인 업무를 하는 '프로 후견인'이 있다. 이들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독거노인들의 법정 후견인으로 일하고 노인의 재산 중 일부를 보수로 받는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프로 후견인으로 일하는 말라(로자먼드 파이크 분)가 일하는 방식은 조금 특이하다.
일단, 친분이 있는 의사에게서 혼자 사는 노인 환자를 소개받는다. 특히, 돈이 많은 환자가 대상이다. 말러에게 수수료를 받은 의사는 노인 환자의 상태가 그리 심각하지 않아도 질병이 위급하여 혼자 거주할 능력이 없다고 거짓 진단서를 작성해준다.
의사의 진단서를 판사 앞에 가져간 말러는 자신이야말로 상황이 어려운 노인에게 돌봄의 의무를 다하는 전문적인 후견인이라 설명한다. 위급 상황일 경우에는 판사가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 조항 덕에, 말러는 법원으로부터 쉽게 환자의 전문 후견으로 인정을 받고 이후 노인을 요양원에 강제로 입소시킨 뒤 해당 노인의 재산을 갈취한다.
미국에서는 실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 후견인들의 범죄가 일어나고,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도 이런 사례를 뉴스로 접하고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임의후견인이나 성년후견인을 지정하고 싶지만 영화의 내용처럼 그들이 재산을 마음대로 편취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서로 신뢰 관계에 있는 가족이 후견인을 맡는 경우가 많고,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의 신변 관리를 맡는 공공후견인은 지자체가 선별 과정을 거쳐 선정한 후 특정 교육을 받고 일을 진행한다. 물론 그 어떤 직군에서라도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범죄는 일어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후견인을 선정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결격사유 즉, 미성년자, 파산선고를 받은 자, 형을 선고받은 자, 법원에서 해임된 대리인, 피후견인을 상대로 소송하는 사람 등이 아닌지 판단하는 법원의 절차가 있어 믿을만한 후견인을 선정하는 최소한의 장치는 존재한다.
영화를 통한 현실적 상상
이 영화의 장르는 놀랍게도 '스릴러'다. 복지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꽤 대중적인 스토리로 제작된 상업 영화다. 그래서인지 직업을 악용하여 불법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도 있는 전문후견인 제도의 맹점을 다루기보다는 선과 악, 악과 악이 대립하는 다이내믹한 스토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좋게 말하면 제도에 대한 정보와 영화적인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복지 제도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치고는 사회적인 관점보다는 흥미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영화를 통해 후견인 제도가 무엇인지, 이 제도를 둘러싸고 어떤 이해관계가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자신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질병에 걸려 생활 전반에 대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의존적이 되었을 때, 나는 누구를 믿고 일을 처리하게 할 것인가를 말이다.
지금은 건강한 상태라도 미리 자식이나 배우자 등을 임의후견인으로 정해서 만에 하나 있을 일에 대비해 놓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사람들은 가끔 '내가 죽으면...'이라는 가정을 많이 하지만 현실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 먼저 찾아오는 것은 죽음이 아닌 오랜 기간의 질병 상태일 수 있다. 이 기간에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어떻게 보낼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필요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플랫폼 alookso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