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동 현충원 28번 묘역에는 5.18민주화 운동 항쟁 기간중 계엄군 신분으로 숨을 거둔 병사들의 묘비가 있다.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잡은 이후 줄곧 5.18을 내란(內亂)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처음엔 이들의 죽음 사유가 전사(戰死)였다. 망자와 유족들에겐 순직(殉職)보다는 서훈이 높게 평가되는 전사가 더 영광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20년 동 항쟁은 내란이 아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면서 계엄군의 죽음은 전사가 아닌 순직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전사로 표기되었던 이들의 묘비도 <순직>으로 정정되어 전부 교체되었다. 이들의 사망원인을 살펴보면 시위대와 교전 중 5명, 대치 중 4명, 계엄군 간 상호 오인사격으로 13명 총 22명이 희생되었다는 자료를 볼 수 있다.
필자의 친구중엔 5.18유공자가 있었다. 작년 3월 중순경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날은 투석을 하지 않는 관계로 바람을 쐬고 싶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그를 동작동 현충원으로 올 것을 제안했고, 그곳에서 만나 원내식당에서 점심을 한 후 계엄군 묘역을 찾았다. 감회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덤덤했다. 양심선언을 한 생존 계엄군들을 전부 용서했는데 망자에게 무슨 원한이 있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당시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 하리라 예측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걸 용서할 수 있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용서를 해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친구는 만남이 있은 날로부터 한달 달포만에 서둘러 세상을 떠났고 5.18유공자 묘역에 묻혔다.
필자는 순직자들 보다 1년여 뒤쯤 특전사에서 복무했다. 따라서 객관적 입장에서 광주 희생자의 아픔과, 순직 군인들의 고충을 어느정도 가늠 할 수 있다. 그들은,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 과잉진압에 따른 반발로 성난 군중이 되어 달려드는 기세에 압도 되었을 것이고, 명령에 따라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엄중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시민의 동료나 군대의 전우가 무너지면 쉽게 이성을 잃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지휘관이나 간부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들은 오히려 진급과 명예를 위해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좋은기회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현실에선 정치권을 비롯하여 갈라치기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은 잔인하리만치 순직자들을 자주 불러내고 있다. 어느 정권이냐에 따라 묘역 주변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진보정권 시절에는 유가족외엔 공식적인 추도행사가 없고 조용하게 지나가지만 보수정권에 하에서는 보통 연사까지 동원하여 성대하게 행사를 치른다. 똑 같은 하늘과 땅에서 살고 있지만 어느편에게는 구국의 영웅이고 누구의 눈에는 학살자인 것이다.
이념을 이용하여 편 가르기를 하는 일부 단체들의 행동은 유감이다. 통합을 전면에 걸고 출범했던 보수 정권이다. 진정성을 보여주는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 5.18 민간 희생자들을 폄훼하고 순직자들을 정략적 목적으로 자꾸 부각시키는 것은 상처입은 사람들의 생채기만 깊게 할 뿐 우리사회의 염원인 통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순직군인들 스스로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22인의 군인 중 사병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평범한 아들이고 형, 동생이었을 그들은 왜 갑자기 동원되는지도 모르고 준비태세 하달과 함께 출동명령을 받고, 수송트럭에 태워져 현장에 투입되었다. 간부가 아닌 의무복무 중이었던 병사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장을 보고 진압 행위가 정의로운 행동인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계엄군 사망자 중 일부는 그야말로 불타는 구국충정의 심정으로 잔인한 진압 활동을 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민간인이 다치고 사망했다.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군대가 오히려 국민을 살상하는 불명예를 남긴것이다. 세월이 흘러 돌이켜보니 그들이 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했는지에 대해 어떤 설명도 없다. 그들을 이러한 비극의 현장으로 내몬 자들이 누구였는가?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항쟁 발단의 최고위 책임자들은 호사를 누리다 천수를 다한 후 이미 죽거나 입을 다물고 있고, 피해자들과 먹이를 찾아 헤매는 자들만 남아 이전투구를 하는 형국이 됐다. 독재자들로부터 수혜를 받은 집단은 객관적 사실 여부를 떠나 그저 계엄군 신분의 순직자가 공산주의 폭도들과 싸운 영웅이라는 수식을 부여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위와같은 논리라면 4.19 의거 당시 무차별 발포한 경찰들도 민주주의를 전도하려 한 불순세력(학생)을 척결하려 애쓴 국가 유공자가 되어야 마땅 할 것이다. 떠난자들은 말이 없는데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요란하다.
불행한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우리 세대의 운명이다.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가 동사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숙제를 떠 안았다.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국민들이 먼저 항쟁의 본질을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념,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향후 우리 자식, 손자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떠난 22위 계엄군의 운명을 되풀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무의미한 죽음으로 내모는 자의 출현을 경계하고, 부당한 명령을 내리지 않을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누구를 위해 싸우다 죽었나?" 계절의 여왕인 오월의 찬란함을 뒤로하고 그들의 통곡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순직자의 부모들도 이미 연로한 나이가 되었고 형제자매들의 기억에서도 희미해질만큼 시간이 흘렀다. 아픈기억을 가슴에 묻을 수 있도록 위로하자. 이제는 영혼들을 놓아주는 게 우리의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미투 일환으로 항쟁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재발방지를 위해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비극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사태의 원흉은 나몰라라 하고 떠났는데 피해자들만 남아 상호간의 잘못을 따지는 건 생채기만 남길 우려가 있다. 단체간 대립보다는 국가가 적극나서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을 보듬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