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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퍼센트> 표지 안지현이 쓴 책 <퍼센트>(2024, 이데아) 표지이다.
책, <퍼센트> 표지안지현이 쓴 책 <퍼센트>(2024, 이데아) 표지이다. ⓒ 이데아
 
"우리 주변에서 미처 모르고 지나가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야기 사냥꾼'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JTBC 안지현 기자 홈, 2024년 5월 5일 검색)
 
위 문장은 <퍼센트>를 쓴 JTBC 안지현 기자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글이다. 책 표지 안쪽에서 만난 "주로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라는 글쓴이 소개 부분과 연결하니 그가 조금 보였다. 에필로그에 있는 확신 없는 다음 문장에서 그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숫자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어쩌면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관심인 것 같습니다." (책, 283쪽)
 
글쓴이는 책을 쓰면서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에 신경 썼다고 했다(책, 282쪽). 10초 남짓 되는 시간에 사건과 현상을 드러내는 방송기자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책, <퍼센트>에는 같은 제목의 기획 기사에 다뤘던 40개의 숫자가 담겼다. 0%에서 95.8%까지 다양한 퍼센트가 있다. 다양한 숫자는 "매우 익숙한 것들"이지만,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얘기들"이다(책, 5쪽).

차례에는 익숙한 말들이 빼곡하다. '사이코패스', '마약', 'MZ세대', '학교폭력', '출산율', '카카오톡 먹통', '고독사', '메타버스', '대학 존폐', '주택 가격', 'AI' 등 모든 언론이 떠들썩하게 다룬 단어들이다. '음주 운전', '아동 학대', '경력 단절 여성', '세월호 유가족', '노동자 연차 사용', '성 평등', '장애인' 등도 눈에 익은 주제들이다.

<퍼센트>에 들어 있는 익숙한 주제와 단어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두 가지 면에서 기존 언론 기사와 다르다. 첫째, 너무도 당연해서 그냥 지나칠 만한 지점에서 매우 새롭고 낯선 주제에 다가선다.

예를 들면, "12.4% '과학기술 분야 여성 관리직 비율" 부분이다. '워킹맘'이 겪는 어려움, 일하는 여성의 가사 노동 분담 비율 등 한국 사회의 성 불평등을 보여준 기사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의사나 박사들도 '경력 단절 여성'이 되는 사례를 보여준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사 노동과 육아가 여성에게 기울어져 있는 사회에서 여성의 경력 단절은 학력과 학벌, 직업에 따라 차이가 크지 않을 수밖에 없다. 글쓴이는 우리가 쉽게 놓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붙잡는다.

둘째, 안 기자는 같은 사건과 단어, 주제를 두고도 "한 걸음 더" 들어가 숫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옴표 안 표현은 책 뒷면 표지에 있는 추천 글을 쓴 손석희 전 JTBC 앵커가 자주 했던 말이다.

연예인 사유리의 출산 과정과 그의 아들 모습은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윤리 지침 때문에 '비혼 여성 단독 출산'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언론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일반적이라고 여기는 부모와 미혼 자녀로 이뤄진 가정이 27%뿐인 상황에서 합계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것이 우리 현실이다. '제2의 사유리'는 없는 여성 단독 출산율 0%. 이대로 여전히 괜찮은지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책, 20쪽)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상대로 한 막말을 보도한 기사는 많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가운데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81%에 달하며, 참사 10년이 되는 2024년에 "트라우마를 포함한 의료 지원이 끝난다"라는 보도는 찾기 어렵다.

권력 감시에는 날카롭고 날이 서 있지만, 사회적 약자에게는 따뜻함이 묻어 있는 숫자들은 우리 사회의 심연을 그대로 보여준다. "좋은 일의 퍼센트는 점점 내려가고, 좋지 않은 일의 퍼센트는 계속 올라"간다는 손석희의 말은 단면을 정확하게 잘라낸 표현이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Foucault)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근대 이후 권력의 속성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 두는" 권력이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박정자 옮김, 1998,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278~279쪽, 동문선).

21세기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곳에서 국민은 단순히 관리의 대상으로서 인구 집합이 아니다. 한 명의 사람이라도 '죽게 만들거나 내버려 두는' 권력은 더는 용납되지 않는다. 현대 국가와 권력의 역할은 국민을 살리는 데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 특히 국가는 <퍼센트>에 담긴 숫자들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 깊게 고민하면 좋겠다.

퍼센트 % - 통계로 읽는 한국 사회, 숫자가 담지 못하는 삶

안지현 (지은이), 이데아(2024)


#퍼센트#안지현#이데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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