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기농 농장에서 농사 체험하며 일손 돕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듣는 새로운 한국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
"함께 교류하며 세상을 바꿉시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5년 동안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했다는 프랑스 청년 사라가 백화골 팜스테이를 신청하며 보낸 메시지 마지막 문장이다. 세상을 바꾸자는 표현을 보며 이 친구를 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시지가 온 것은 2월이었고, 4월 중순에 온통 초록빛 가득한 봄과 함께 사라가 찾아왔다. 생기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멋진 청년이었다.
"제 이름은 사라이고 30세입니다. 미술사 박사 과정을 하다가 중단했고, 파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여행 전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하루 3만명의 방문객이 방문하는데, 길을 찾도록 돕고, 박물관과 역사와 전시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일을 했어요. 30살에 한 번쯤 인생을 바꾸는 여행을 하고 싶어 10대부터 좋아하던 한국에 왔습니다. 1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여행하고 있어요. 꿈꾸던 한국을 여행하고 있어서 너무 재미있습니다."
수요집회에서 배운 한국의 역사
백화골에 팜스테이 오는 친구들은 다양한 국적이지만 유독 프랑스 친구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 친구들 말에 의하면 프랑스 젊은이들이 유럽에서도 유독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고 한다. 한국음악, 드라마 등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 정치인들이 한국 걸그룹 콘서트에 참석해 사진을 찍기도 한다.
"저도 처음에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케이팝과 영화를 통해 한국 문화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세상으로 가는 문일 뿐이었어요. 그 문을 열고 저는 다양한 한국음악과 미술, 역사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제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열정적인 사람들 중 하나이고, 저는 이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습니다."
사라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1년간 한국을 여행중인데, 서울에서 한국어 공부를 한 후 청주, 대전, 단양, 제주 등을 여행했다. 한국어가 아직 능숙하지는 않지만 발음도 좋고 매일매일 늘어가고 있다.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석했을 때다. 춥고 비오는 겨울날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가 1992년부터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한 할머니가 바닥에 누워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며 슬픔이 몰려왔어요.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전쟁의 상처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이 싸움은 위안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한국 사람들이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라가 도착한 이후 겨울 날씨가 확 풀리며 주변이 온통 초록색으로 변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프랑스와 한국의 정치, 문화, 사회 모습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코로나 시기에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집밖으로 나갈 수 없어 미술사 박사 과정을 포기한 이야기는 안타까웠다. 직접 미술품을 보고 공부해야 하는데 도저히 온라인만으로는 연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뉴스로 보던 유럽 록다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는 상대적으로 이 시기를 편안하게 지냈구나 싶었다. 프랑스에서는 코로나 때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만 갇혀서 지냈다고 했다. 활동적인 성격의 사라에겐 아주 힘든 시기였다.
문제가 있으면 바꿔 나가야
하루는 저녁에 돌아가며 자기 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개하면서 루브르에서 일할 때 박물관 노동자들이 파업하던 사진을 보여줬다. 삶과 사회에 문제가 있으면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특히 프랑스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인기없는 직업이 되어버려 교사가 부족하고, 건물은 노후화되고, 빈익빈 부익부 교육이 심화된 교육 시스템.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으로 우경화 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정치. 무분별한 농산물 수입으로 프랑스 농부들이 절망에 빠져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 등 젊은이답게 자기 사회에 대해 비판이 끝이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할 때 노동조합의 주도 아래 종종 파업을 했어요. 일하는 노동 조건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파업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있으면 바꿔 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에서 '똘레랑스'(관용)는 역사와 문화의 일부지만 점점 희박해지고 있어요. 우리는 많은 문제를 바꿔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라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서 우리 농장에 왔다고 했다. 4월 말이 되어 우리는 제철꾸러미 포장을 같이 했다. 첫 번째 주에는 시금치, 돌나물, 삼잎국화, 배추, 상추, 청경채, 열무, 무시래기, 망초 나물 등 다양한 채소를 수확 포장했다. 사라는 다양한 산나물을 수확하고 발송하는 것도 신기해했지만, 새로운 산나물의 맛을 경험하는 것도 재미있어 했다.
"반찬이 쫙 깔리는 한국 음식 정말 매력적"
사라가 프랑스에도 제철꾸러미와 비슷한 시스템인 아맙(AMAP, Association pour le Maintien de l'Agriculture Paysanne)이 있다고 소개해줬다. 고객이 유기농산물 구입을 약속, 선불로 비용을 지불하고, 유기농 농부는 계속 농사 지을 수 있다. 중간 거래인 없이 이루어지고, 직거래 장터 같은 곳에서 농부와 고객이 직접 만나서 농산물을 나눈다고 한다. 고객이 유기농장에 가서 일손도 많이 돕고, 봉사하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한다.
대기업 위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는 점, 소비자가 회비를 선불로 지불하고 농부는 책임지고 제철 유기농 채소를 공급한다는 점 등이 우리 농장 제철꾸러미와 비슷했다. 유기농산물 구입이 단순히 건강에 좋아서가 아니라 환경운동 차원이라는 점도 강조된다고 했다.
"모든 나라는 장단점이 있지만 외모나 아름다움에 대한 지나친 관심, 위계질서, 장시간 노동, 여성에 대한 편견, 불공정한 정치 등은 한국 사회의 안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전하고, 음식이 맛있고, 열정적으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은 좋아요. 특히 반찬이 쫙 깔리는 한국 음식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사라와 함께 농사 일을 하며 프랑스와 한국을 비교하고, 한국의 매력, 단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일하는 시간도 힘든 줄 모르고 금방 지나갔다. 혹시 한국을 여행하다 보니 여기 살고 싶지는 않냐고 물었더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니 여행 마칠 때 운명의 길을 따라 갈 것이라며 웃었다.
요즘 사라는 저녁을 먹고 나면 날마다 다른 봉사자 친구들과 함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다. 대사나 내용이 철학적이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재밌다고 한다. "오늘도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는 대사처럼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의 유기농부를 응원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 덕분에 봄날 바쁜 유기농부의 하루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앞으로 남은 사라의 한국 여행 길도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한국에는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등불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덕분이지요. 이 따뜻한 마음 속 등불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