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회복지원금은 0과 1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간지점을 찾아 협의할 수 있고, 이를 이끄는 것이 리더들의 몫인데도 '돈을 풀면 물가가 올라간다'는 중학생도 다 아는 경제상식만 반복하면서 정치권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요."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7일 오전 11시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민생고가 표출된 총선이 한 달이나 지났지만 '민생회복지원금'을 두고 정쟁만 반복하는 정치권을 이같이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 과정뿐만 아니라 영수회담에서 제안한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을 거부했고, 박찬대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는 22대 국회 첫 법안으로 민생회복지원금을 예고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우 교수는 "(그동안의) 정책이 마음에 안 들고, 삶이 어렵기 때문에 (총선에서) 정부가 심판받지 않았나"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1분기 GDP(국내총생산)가 1.3% 깜짝 성장했으니 '전국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할 만큼 (경제 상황이) 어렵지 않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플레이션이라고 모든 품목이 다 같이 오르지 않는다. 덜 오르고 더 많이 오르는 게 있지만, 평균을 내 보면 전체적으로 오른다. 특히 오르지 않은 항목 중 하나가 노동의 가격"이라며 "노동도 엄연히 시장서 거래되는 재화 서비스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노동계 협상력이 약화되면서 임금이 물가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생회복지원금은 떨어진 실질임금을 보완하는 정책으로서 유의미하다"고 진단했다.
우 교수는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경제수장들 또한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이 총선 기간 전국에서 민생토론회를 열고 그린벨트 해제, 철도 지하화,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을 약속할 때 '긴축재정이라 돈이 없고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나"라며 "대통령이 추진하면 민생이고, 야당이 추진하면 인플레이션인가? 이 판단 어디에 합리적 근거가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 교수는 처음 민생회복지원금을 제안한 이재명 대표가 "코로나 때 증명됐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도 "그때보단 효과가 떨어진다"며 "지금의 한계소비성향은 높게 봐도 40~50% 정도라서 야당도 분명 이를 인지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급 방식에 있어 '선별'(지급)이냐 '전국민' 지급이냐라고 한다면 당연히 선별이 더 효과가 있다"라며 "그러니 일단 전국민에게 다 지급하되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 소득에 비례해 다시 거둬들이면 된다. 다만 이를 위해선 특별법 입법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우 교수와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코로나 때보단 효과 떨어져... 야당도 인지해야"
- 정부와 여당은 민생회복지원금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반대하면서 역대 최대 재정 조기집행을 감행했다. 모순된 것 아닌가?
"지원금을 풀면 물가가 오르는 건 당연하다. 교과서 얘기다. 국민의 소득을 보전하니 더 많이 살테고 물가와 인건비·재룟값은 당연히 압박받는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정부가 (무조건) 돈을 안 써야 하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부의 재정지출은 민생회복지원금처럼 가계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더 즉각적으로 영향을 준다. 1조 원을 정부가 집행할 때와 가계에 지급해 돈을 돌린다고 할 때 어떤 게 물가에 영향을 빨리 미치겠나? 가계는 돈을 받으면 일부는 소비하고 일부는 저축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쓰지만, 정부는 예산을 남기지 않고 집행한다.
이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 65% 재정을 조기집행했다. 역대 최대다. 관리재정수지를 보면 3.9% 적자다. 평상시 2%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적자 폭이 큰데도, 통상 수준(조기집행률 60%)을 넘겨 재정을 조기집행한 건 어떤 의미인가? 우리나라 재정지출이 630조 정도인데 5%면 약 30조다. 즉 그 정도의 돈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정부도 판단한 것이 아닌가?"
올해 정부는 1분기 총 213조 원을 신속집행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 대비 47조 원 늘어난 것이다. 정부의 상반기 재정집행 목표는 351조 1000억 원으로 전체 대비 65%인데 이는 역대 최대치다.
- 전국민 25만 원에 소요되는 재원이 약 13조 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금액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뜻인가? 그렇더라도 정부 긴축재정 기조가 민생회복 지원금과 상충하는 것 아닌가?
"정부 재정집행 방침을 보면 13조 원 정도는 물가에 미치는 금액이 제한적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작년에 정부가 세수 56조 원을 펑크냈는데 불용예산 규모가 45조 7000억 원이다. 정부가 쓰겠다고 예산안을 요청해서 국회가 통과시킨 예산을 안 쓴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 예산을 구조조정하고 추경으로 13조 원을 만들어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면 정부가 직접 예산을 집행하는 방법보다는 물가압력이 덜하면서 소비여력을 진작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 그러나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 '재정 지속가능성과 물가 압력을 고려하면 추경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상반기 대통령이 총선 국면에서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고 대규모 돈이 드는 약속을 수차례 했다. 대규모 SOC(사회간접자본) 사업과 철도 지하화를 하겠다고, 그린벨트도 다 풀고, 재건축·재개발할 때 내는 분담금 같은 것도 다 없앤다고 공언했다. 그때 '우리 돈 없다'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니 대통령님 그런 약속하지 마시라' '정부는 돈을 쓸 여력이 없다'고 정부 인사들이 한 번이라도 반대한 적 있나?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45조 1000억 원을 빌렸고, 갚지 못한 금액이 32조 5000억 원이다. 32조는 있는 돈이 풀린 게 아니라 돈이 없어 새로 찍어낸 돈이다. 월별로 따지면 10조의 돈이 새로 풀린 건데 물가를 책임지는 한국은행 총재는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주면서도 '이 돈 절대 안 된다'는 소리 안 했다. 발권은 한국은행 총재의 책임이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기집행까지 해놓고서 단 한 사람도 '물가 때문에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일련의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대통령이 돈을 쓰는 것은 민생이고 야당이 돈 쓰자고 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라는 것 아닌가? 이러한 경제수장들의 주장 어디에 합리적 근거가 있나?"
지난달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대정부 일시대출금·이자액 내역'에 따르면 정부는 1분기(1~3월) 동안 한국은행에서 45조 1000억 원을 빌렸다가 12조 6000억 원을 갚았다. 정부가 일시대출하고 갚지 않은 잔액은 32조 5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 '앞으로도 민생이 어려울 때면 돈을 지급해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이 덮쳤을 때 미국은 세금통장에 역으로 지원금을 꽂아줬다. 유럽은 사회보험을 통해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그 기간을 연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득지원이라는 건 다양한 형태로 필요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소상공인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많은 채권이 부실화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라고 모든 품목이 다 같이 오르지 않는다. 덜 오르고 더 많이 오르는 게 있지만, 평균을 내 보면 전체적으로 오른다. 지금 정부에서 가장 덜 오르는 게 무엇인가? 바로 노동의 가격이다. 노동도 엄연히 재화 서비스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항목인데 가격이 오르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노동계 협상력이 약화하니 임금이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실질임금이 삭감된다.
작년에 6%대던 물가상승률이 지금 떨어져 3%대인데 사람들은 돈이 없어 소비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민생회복지원금이 실질임금이 떨어진 데 대한 보완정책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지급 방식에 있어 선별(지급)이냐 전국민 지급이냐라고 한다면 당연히 선별이 더 효과가 있다. 그러니 일단 전국민에게 다 지급하되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 소득에 비례해 다시 거둬들이면 된다. 다만 이를 위해선 특별법 입법이 필요하다."
"5월이 적기, 협의 충분히 가능"
- 이재명 대표는 코로나 때 민생회복지원금 효과가 증명됐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때보다는 효과가 떨어진다. 평균 한계소비성향(추가 소득 중 저축되지 않고 소비되는 금액 비율)은 15~20%다. 가령 100만 원을 주면 15만 원을 추가로 쓴다는 것이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코로나 때인 2020년 지급한 1차 재난지원금 매출 증대 효과를 30%로 분석했다. 제 연구에서는 팬데믹 시기 한계소비성향이 약 70%였다. 즉 많아도 60~70%다. 민생회복지원금의 정책 효과가 100%를 넘어갈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더군다나 지금의 한계소비성향은 높게 봐도 40~50% 정도라서 야당도 분명 이를 인지해야 한다."
- 민생회복지원금 마지노선은 언제인가?
"시기상으로는 5월이 적기다. 우리나라는 일자리가 없어서 퇴직하고 자영업으로 넘어온 사람이 많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장기적으로 생산성만 따진다면 정리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부의 인식은 1분기 GDP가 1.3% 깜짝 성장했으니 '지표상으로는 어렵지 않다'는 거다. 정작 민심은 경제가 어렵다고 정부를 심판했는데도 (민생회복지원금 같은 정책에) '포퓰리즘' 이라고 비판한다.
소상공인들이 어려워지면 부실화된 채권이 은행의 부채로 남고, 그러면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두 가지 선택이 남았다. 정리할 것인가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버티며 돈을 돌려볼 것인가. 이런 정책 판단이 필요한 시점에 나라의 지도자들이 협의와 협치를 하지 않고 있다."
- 대통령과 여당, 제1야당 대표가 해야할 일은 뭔가?
"지도자는 근거를 갖고 결단해야만 한다. '돈 풀면 물가가 올라간다'는 말은 중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리더는 지금 우리가 단돈 1원도 풀면 안 되는 상황인지, 경제여건을 따져볼 때 5~10조 원 사이는 적당한 건지, 예산 구조조정과 추경으로 13조를 만들어도 괜찮은지 자료를 검토하고 야당과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 민생회복지원금 논의는 결코 0 아니면 1의 문제가 아니다. 중간지점을 찾아 합의할 수 있고 이를 이끌어야만 하는 것이 리더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