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매립장으로 인한 갈등과 고통은 1987년 경기 화성 우정읍 주곡리에 지정폐기물매립장이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97년까지 56만 4천 톤의 지정폐기물이 매립되었으며 36년 동안 침출수 처리와 매립지안정화 문제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2003년 송산면 칠곡리 매립장은 2018년까지 증설을 통해 466만 8천 톤의 사업장폐기물을 매립했으며 침출수 사후관리 문제로 갈등을 발생하고 있다.
2009년 발안산업단지 매립장(사업장+지정폐기물)은 매립용량 41만 3천 톤이며 2024년 장안면 석포리 매립장이 들어오면 306만 톤의 사업장폐기물이 매립될 계획이다. 경기도 내에 산업 폐기물매립장이 있는 지자체는 화성시가 유일하다. 하나도 아니고 네 개나 가지고 있으니 독보적 1등이다. 화성시에는 왜 산업 폐기물매립장이 계속 들어오는 걸까.
산지 원상 복구 대신 폐기물 매립장으로?
현재 서신면 전곡해양산업단지(45만㎥)와 비봉면 삼표 채석장(화성에코파크/1,000만㎥)에 산업폐기물(지정폐기물 포함) 매립장 두 곳이 더 추진 중에 있다. 화성에코파크는 삼표산업이 2028년 토석 채취가 종료되는 골재채취장 34만 8110㎡(약 10만5천 평)에 산업폐기물 매립시설을 조성하려는 계획이다. 5월 29일까지 환경영향평가 초안에 대한 주민의견을 받고 있다. 30여 년간 골재 채취로 훼손된 산지를 원상복구 대신 폐기물 매립장으로 이용하려는 자본의 논리에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는 분노하며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채석장으로 잘려나가는 산지를 볼 때마다 산업화와 편리를 위해 훼손되는 자본의 폭력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흙과 나무, 돌과 바위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에 '에코사이드ECO CIDE(생태학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환경정의와 생태적 복구의 기본 의무마저 무시하고 환경영향평가라는 기술적, 행정적 절차를 진행하는 사업자의 행태가 섬뜩하다.
이런 부도덕한 사업을 추진해도 가능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와 행정은 허술한 것인가. 화성시 행정과 지역 주민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자신만만한 것인가. 산업폐기물매립장은 인허가만 받으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기에 대기업을 비롯한 사모펀드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쓰레기 폐기물이 수도권에서 발생하기에 인근 지역에 대규모 폐기물매립장이 위치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화성시는 민원에 대한 소극적 행정과 넓고 값싼 땅과 노령화된 농어촌 마을로 폐기물 관련 민간 사업자에게 최적의 조성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전곡해양산업단지 매립장 예정지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전곡항 국가지질공원과 1km,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흰발농게 서식지가 있는 안고렴섬과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제부리와 전곡리 어민이 청청지역 해산물을 생산하는 생계터전이자, 생물다양성이 풍부하여 경기도 해양공간관리계획(2021년) '연구교육보전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또 2030 화성시 도시계획 상 생태 관광자원을 활용한 '안고렴 해상공원'이 예정된 지역이다.
폐기물 매립장 반대를 위해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립장 예정지 100m 이내에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 번식이 확인된 만큼 환경 생태계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그러나 한강유역환경청은 이토록 중요한 곳에 들어올 매립장에 대해 '영향이 미비할 것이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라는 사업자의 환경보전방안을 그대로 승인하였다. 풍부한 해양자원과 생태적·지형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환경적 공간을 보전해야 할 한강청에 승인한 것이 옳은 것인지 되묻고 싶다.
아름다운 해양 연안이자 연구와 교육의 공간이며 레저와 생태관광 자원인 공공적 자산인 전곡항과 제부도 해역 앞에 민간기업의 이윤만을 위한 폐기물 매립장이 적합하고 타당한가? 전곡해양산업단지 기본계획 상 폐기물매립장은 일반폐기물만 처리하고 지정폐기물은 전량 위탁처리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사업자와 화성도시공사, 경기도 도시공사가 지정폐기물을 매립할 수 있도록 경기도산업단지계획 심의위원회에 상정하여 산업단지 기본계획을 변경하려고 하고 있다. 화성시는 상위계획인 경기도 발전 방향 및 종합계획, 화성시 도시계획과 상충하는 부적합한 계획임을 명확히 하고 계획 변경안 상정을 반려하면 된다. 그러나 아마도 화성시장과 화성시는 행정절차를 핑계 삼아 명백한 반대 입장으로 인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한강청도, 화성시도, 경기도도 계속 책임에 대한 핑퐁게임을 하는 동안 지역 주민은 시청으로 도청으로 한강청으로 찾아가서 민원 넣고 집회하고 호소하고 애원도 하며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을 뛰어다닌다. 온갖 편법이 동원되고 돈으로 일부 지역 주민을 회유해서 주민협의체를 업체에 유리하게 구성하면서 주민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시민단체와 주민, 시의원 등이 합심해서 희박한 확률로 사업이 부결되어도 업체가 대형 로펌에 행정소송을 맡겨서 승소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화성시 주민으로 살아가는 것도, 숲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뭇 생명도 참 고통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갈등과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을 버리고 산업 문명 속에서 편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폐기물에 대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코앞에 닥친 우리 마을 폐기물매립장 반대만으로도 힘에 부치겠지만 전국적으로 연대하고 지역 시민과 함께 폐기물처리에 대한 공론화를 해야 한다.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생활폐기물처럼 산업폐기물도 공공성을 가져야 하며 정부와 광역지자체에서 공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민간기업의 이익 추구를 위해 계속 지역 주민과 자연이 희생하는 불합리한 현행 제도가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공공성 확보도 시급하다. 사업자가 돈을 주고 계약하는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부실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에 공공이 진행해야 한다.
또한 경기도 폐기물매립장 기본계획을 통해 권역별로 분배하여 한 지역에 편중되어 무분별하게 매립장이 난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권역 간 이동을 최대한 제한하고 발생지 처리 원칙이 적용된다면 처리량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조례를 통해 신규 매립장의 경우, 피해지역 주민의 동의를 먼저 진행하고 주민협의체 구성의 적합성·대표성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주민 지원에 대한 협의 원칙을 정하여 민민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기존 매립장에 대한 주민 감시 체계 확립과 신고 권한, 행정 처리기준 강화 등도 필요하다. 매립시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부도로 인해 사후관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도록 관리기금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해결 방법을 알고 있지만 정치적, 사회적 이권으로 실현하기 어렵다고 포기하고 묻어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와 지자체, 사업자와 시민이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간다면 매립장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환경적 피해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