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달리기 붐이 일어났다.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던 작은아버지께서 달리기를 시작한 후 건강을 회복하면서부터였다. 작은아버지와 함께 달리며, 마라톤까지 출전하게 된 우리 아빠의 얼굴엔 점점 활기가 채워지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운동을 좋아하는 아빠가 어깨와 무릎 통증으로 운동을 못하게 된 후, 오랜만에 찾은 취미 활동이 꽤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는 아빠의 몸보다 아빠의 마음이 더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빠, 아빠는 왜 달려?"
아빠와 난 많이 닮았다. 누가 봐도 '아빠 딸'이라고 할 정도로 외모가 판박이일 뿐만 아니라, 유난히 예민한 성격까지 닮았다. 그런 성격 탓에 스트레스와 고민이 늘 많았던 나에게 아빠는 자신도 고민이나 잡생각이 많아지면 달린다며, "우울해지면 침대에 누워있지만 말고 함 달리고 와!"라고 얘기해줬다. 아빠는 왜 달리라고 얘기했을까?
"짧게 달리면 달리기 하면서도 잡생각 많이 들지. 사실 길게 달려도 잡생각이 잘 없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어. 그래도 달리기는 다른 운동과 달리, 운동을 하면서 내 생각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어. 긍정적 신체 활동을 하다보니, 긍적적인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거지. 10킬로미터 정도 오래 달리면 아무 생각 없어지는 순간도 있어. '러닝메디테이션'의 느낌이랄까? 아무생각 없이 내 몸과 소통을 하는 거지. 몸의 신호를 감지하고 그에 따라 난 속도를 올린다든지 내린다든지. 몸에만 집중하는 순간이 오기도 해."
실제로 아빠의 조언대로 30분 정도 가볍게 달리기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져, 쉽게 고민의 해결책을 찾아냈던 경험이 꽤 있다. 아빠는 달리는 동안 오로지 '달리는 나'에게만 몰입할 수 있는 점이 달리기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몰입한 순간, 그동안 갖고 있었던 부정적인 감정과 복잡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결국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자신감은 긍정적인 사고로 연결되는 것이다.
"대회에 나갈 때도, 5km, 10km, 하프, 풀코스 등 자신의 몸이 허락하는 범위를 목표시간 없이 즐기는 거야. 완주를 목표로 하는 거지. 그러면 패자는 없는 거야,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모두가 승자인 것이지. 그동안 아빠는 축구, 배드민턴 등 순간순간이 모두 승부인 스포츠에 빠져 있었지, 지나보면 그 승부를 즐기던 순간들도 행복했어. 그러나 이젠 아빠도 나이가 있고 러닝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고 살기로 한 거지. 승부는 이젠 그만,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지 말고,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보는 거야. 내 내면과 몸을 들여다 보며."
다른 일반적인 스포츠와 달리 달리기에는 패자가 없다. 스포츠에서 승부의 존재는 사람들을 스포츠에 중독시키는 요소 중 하나이지만, 승부에 집착하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하며 그 속도에 맞춰 달리면 되는 러닝은 오로지 승자만 존재하는 스포츠가 아닐까?
일상 속에서 시시각각으로 다양한 영향을 받는 나에게, '달리기'란 '안정감'이다. 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달리기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신뢰는, 결국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힘을 주는 것만 같았다.
주로 저녁시간에 달리면서 하루를 잘 마무리 한다는 마음과 함께 수면의 질도 높일 수 있었고, 이러한 감정은 그 다음날까지 자신감과 안정감을 갖고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했다.
불쑥 찾아오는 부정적인 생각과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하루의 몇 시간, 몇 분씩 투자한 시간들이 모여 '건강한 자신'이 되었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 그러한 자신감을 갖는 것 또한 스스로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일 것이다.
일반적인 구기운동 등의 스포츠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들의 무대였다면, 달리기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우울한 감정이 자신을 뒤덮는다는 느낌이 든다면, 당장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그저 신발끈을 꽉 매고 달리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