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일인 지난 11일 오후 6시 15분에 정읍 소재의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거행된 '동학농민혁명기념제 기념식'에서 이학수 정읍시장은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에게 동학농민혁명대상을 수여하였다. 대상 수상자인 이만열 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정읍 시민이 준 대상에 감사를 표하면서, 대한민국정부가 "2차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인 전봉준 장군과 최시형 선생을 먼저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라는 특별 염원을 밝혔다. 다음은 수상 소감의 일부이다.
"제 수상소감을 끝내면서 특별히 염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점을 공유하여 우리 세대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선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선열들이 아직도 항일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을 반봉건·반외세로 규정하는데 그 외세는 바로 일본을 가리킵니다. 동학농민혁명 제1차 봉기는 분명히 국내 봉건 부패 세력에 대한 반봉건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해 4월에 전주성을 점령하고 5월 전주화약으로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물러나고 집강소를 설치해 일종의 자치를 수행합니다.
이때 봉건 정부는 원세개(袁世凱)를 통해 청에 군사 파견을 요청했고, 천진조약(天津條約)에 의해 일본도 군대를 한국에 파견합니다. 6월 21일 일본군은 경복궁을 침입해 대원군 정권을 수립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조일공수동맹(朝日攻守同盟)이 강제로 체결되었고 8월에는 평양 전투에서 청군이 대패했습니다.
그러자 동학농민군은 9월에 일본군 축출을 목적으로 재봉기했습니다. 동학농민군 2차 봉기는 일본을 물리친다는 척왜(斥倭)의 기치하에 이뤄졌습니다. 일본군 타도를 목적으로 재봉기, 북상한 동학농민군은 10월 말 11월 초 공주 접전에서 대패했습니다.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는 일본군의 국권 침탈에 저항해 국권을 수호하려는 항일독립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제 2차 봉기가 항일 전쟁이긴 했지만 아직껏 항일독립운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교수는 2차 봉기에서 동학농민혁명군이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거하고 국권에 위해를 가하려고 할 때 척양척왜의 기치를 과감하게 내세우게 되었다면서,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선열들이 아직도 항일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였다.
아울러 이 교수는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는 일본군의 국권 침탈에 저항해 국권을 수호하려는 항일독립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계속해서 이만열 교수는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2004, 약칭 동학농민명예회복법)에 1894년 일본의 경복궁 유린에 대항하여 봉기한 제2차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을 항일운동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라며 "2차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인 전봉준 장군과 최시형 선생을 먼저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일제로부터 나라를 보호해야 한다고 기치를 든 동학농민혁명군의 지도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은 1894년 일본의 경복궁 유린에 대항하여 봉기한 제2차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을 항일운동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2차 동학농민혁명전쟁이 항일독립운동의 시작입니다. 독립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도 이에 맞추어 개정, 2차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인 전봉준 장군과 최시형 선생을 먼저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할 것입니다."
이날 장대비가 쏟아지는 단상 위에서 이만열 교수가 낭독한 수상 소감에 행사에 참석한 많은 청중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 장면을 기자는 목격하였다. 동학농민혁명기념제 기념식 행사에는 이학수 정읍시장과 (사)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곽형주 이사장 등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