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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은 지난 10일 세종보재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은 지난 10일 세종보재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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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폐기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물관리위 결정에 대해 "독선적이고 독재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허 전 위원장은 "1기 국가물관리위원회의 수년간 논쟁을 통한 (금강·영산강 보 처리) 결정이 단 15일만에 뒤집는 것을 보고 심한 우울감에 빠졌다"면서 "합리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정책이 바뀌었을 때 저 자신이 완전히 부정당한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허 전 위원장은 지난 10일 세종보 재가동 계획 철회를 촉구하며 보 상류 300m 지점 하천부지에서 천막농성을 하는 현장을 방문했다. 이날 허 위원장은 천막 안에서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임도훈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간사,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40여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결정은 절대 훼손되지 않을 것? 순진했다"

허 전 위원장은 2019년 8월부터 3년 동안 국무총리와 함께 제 1기 국가물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을 지냈다. 그가 물관리위원장을 재임할 당시인 2021년 1월 18일, 위원회는 공동위원장인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재한 회의에서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심의·의결했다.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세종보‧죽산보는 해체하되, 시기는 선도사업‧모니터링과 지역여건 등을 고려,
공주보는 부분해체하되, 시기는 상시개방 하면서 지역여건 등을 고려,
백제보‧승촌보는 상시개방하되, 모니터링 자료 확보‧용수공급대책 등 병행"


국가물관리위는 2019년 9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57차례 이상 회의를 하면서 환경부의 제시(안) 및 후속 연구결과와 과학적인 개방·관측(모니터링) 자료 등을 보고받고 토론과 검증과정을 거쳐 이런 결정을 내렸다. 회의 기간만 1년 3개월, 2017년 6월부터 시작된 모니터링 기간을 포함하면 3년 반 정도의 검증 기간을 거친 셈이다. 또 금강과 영산강, 섬진강 유역물관리위원회에서 각각 합의해서 의결한 뒤 제출한 보 처리방안 의견을 종합 검토한 결과였다.

허 위원장은 "물관리위원회 위원들 중에는 4대강 보로 물이 깨끗해진다는 사람도 있었고 이를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위원들도 있었는데, 저희는 합의된 결과를 목표로 일을 했기 때문에 절충안이 필요했고, 만장일치된 의견으로 최종 결정을 했다"면서 "충분한 조사와 찬반 의견 조율을 통해 어렵게 결정됐기에 앞으로도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단, 15일만에 뒤집힌 결정... 속전속결 '문재인 정부 지우기'
 
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이 지난 10일 세종보재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장을 찾아서 농성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이 지난 10일 세종보재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장을 찾아서 농성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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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결정이 뒤집히기 시작한 건 지난해 7월 21일 감사원이 내놓은 4대강 사업 감사 결과였다. 당시 감사원은 환경부장관에게 "충분한 기초자료에 근거한 과학적이고 객관적 분석 결과가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에 적절하게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환경부 장관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생략한 채, 당일 1기 국가물관리위원회가 결정한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의 재검토를 국가물관리위에 제출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출범한 위원회였다. 결국 그해 8월 4일,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세종보 해체 등의 결정을 취소했다. 단 15일만이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수년간의 과학적 모니터링 결과와 사회적 거버넌스를 통한 결정을 불과 며칠만에 정략적으로 뒤집었다고 거세게 반발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세종보 재담수 계획 등을 진행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윤석열 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문재인 정부 지우기' 작업의 일환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허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국가물관리위원회의 보처리 결정을 번복하는 데 시발점이 된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서는 "자료 보완을 요구한 것이기에 심각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1기 국가물관리위원회의) 보 처리방안에 대한 결정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는 지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허 전 위원장은 "국립환경과학원 등은 계속해서 4대강의 수질 등에 대한 조사를 해왔기에 2년 치의 추가 조사자료가 축적돼있을 것이고 특히 세종보는 지역에서 많은 조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기에, 그 이후 데이터도 많을 것"이라면서 "감사원 지적대로 데이터를 추가로 검토하고, 전문가 포럼 등을 열어서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결정하는 게 순리였다"고 강조했다.

"한화진 장관, 아무 생각이 없다"... "물관리위, 독선적이고 독재적"
 
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은 지난 10일 세종보재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은 지난 10일 세종보재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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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동안 4대강 보에 대해 과학적인 검증을 하겠다고 거듭 강조해왔던 한화진 환경부장관은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허 전 위원장은 "한화진 장관을 직접 만나서 '이 문제를 정치적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접근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본인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을 했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된 날, 보처리방안 재검토 요청을 한 것은) 앞뒤가 없는 일이죠.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그랬다고 봅니다. 한 장관이 하천에 관한 수리수문학이나 수질문제, 생태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면 굉장히 고민하고 결정했을 것 같은데, 저렇게 순식간에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4대강 사업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이 고생도 많이 했고 토의도 많이 해왔는데, 이걸 감사원 감사 결과를 받고 15일 만에 해치울 일인가요. 나는 그렇게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허 위원장은 2기 물관리위의 결정에 대해서도 "우리가 물을 다루는 건 사람이 살기 위해서이고,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우리 강이 살아 있어야 된다, 강이 살아있다는 건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미물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가능하다"면서 "이런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 위원장은 "물관리위원회가 그동안 우리나라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모범이 되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그게 깨져버렸다"면서 "나와 내 아이들, 내 손자들도 대대로 더불어 살아야 할 강이어야 하는데, 무슨 '떳다방'도 아니고... 한 탕 챙기고 떠날 것처럼 결정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위원장은 "2기 물관리위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지역 주민들과 제대로된 토론이 있었는지 의문"이라면서 "1기 물관리위는 가령 세종보, 공주보, 백제보를 철거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주민들과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었고. 심지어 철거를 반대하는 농민단체 대표 12명을 초청해서 토론도 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건 좋게 말하면 독선적인데, 나쁘게 말하면 독재"라고 성토했다.

세종시 부시장에게서 걸려온 전화 "냄새나서 못 살겠습니다"
  
지난 10일, 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이 천막농성자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지난 10일, 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이 천막농성자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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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농성천막이 세워지고, 환경단체들이 각종 성명을 쏟아내면서 이를 비판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오는 6월 세종보 재가동 계획을 강행하고 있다. 허 위원장은 "세종보에 물을 채우지 않으면 당장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급하게 재가동할 필요가 없다"면서 "한화진 장관은 과학적인 자료를 더 모으는 한편,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사회적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허 위원장에게 세종보가 재가동된다면 농성장 주변이 어떻게 변할 것으로 예상되는지에 대해 물었다.

"처음에 세종보 수문을 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당시 세종시 부시장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교수님, 냄새나서 못살겠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주실 수 없나요?' 세종보에 물을 가두면 그 때처럼 강바닥에 펄이 계속 쌓여서 냄새가 날 것입니다. 이런 자갈은 볼 수가 없겠죠. 사람들이 강에 와서 자연을 향유할 수도 없을 겁니다. 굳이 편익을 따진다면 소수력 발전소에서 조금 얻을 수 있는 전력일텐데, 그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잃는 건 많죠."  

태그:#허재영, #국가물관리위원회, #세종보, #금강, #천막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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