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스승의 날, 교사들에겐 그 날이 달갑지 않은 손님과도 같다. 날로 추락하는 교사의 권위와 빈번히 발생하는 교권침해. 게다가 지난해 있었던 교사들의 안타까운 사망소식들. 그 모든 것들이 스승의 날을 없애야 할 애물단지와도 같은 존재로 전락하게 했다.
올핸 다행히 부처님 오신날과 겹친 휴일. 연구실에 모인 동료교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휴일이라 정말 다행이다 라고. 나도 동의하는 바지만 한켠으로는 그런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스승의 날 전날인 오늘, 교실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4학년 교실로 가기 전 통로인 5학년 복도가 평소와는 다르게 왁자하다. 아마도 스승의 날 이벤트를 준비하는 모양. 지난해 4학년 제자들이 칠판에 하트를 그리고 손편지를 써서 붙이고 풍선을 달아놓고 파티를 해준 기억이 떠올라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 아이들을 바라보다 내 교실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해와는 사뭇다른 조용한 교실. 아이들은 전날 내가 내준 아침과제인 세줄쓰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주제는 "스승의 날을 맞아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과 그 이유".
어떤 이벤트보다 내가 내 준 과제를 성실히 해내는 아이들의 그 모습에 이보다 더 큰 스승의 날 선물이 있을까? 속으로 생각하며 기특하다는 눈빛을 아이들을 향해 비추며 찬찬히 그 모습을 둘러보다 내 자리로 유유히 걸어갔다.
여느 때와 같이 컴퓨터를 켜고 앉는데 책상위에 놓인 색종이 카네이션 두송이와 작은 손편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스승의 날이라고 내게 전하는 작은 감사들. 그 마음씀씀이에 일순 가슴이 더워졌다. 평소 장난꾸러기라 자주 지적을 받곤 하는 남자아이의 편지도 있어 흠칫 놀라고선 이내 대견한 눈빛으로 그 아이를 흘깃 바라보곤 평상시와 같이 업무를 이어갔다.
1교시 종이 울리고, 심호흡과 스트레칭을 하며 아침을 열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을 맞아 세줄쓰기 발표로 시작했다. 늘 그랬듯이 발표 전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먼저 첫 스타트를 끊었다.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은 선생님은 말이야."
그 말에 아이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우며 이야기에 빠져들기 위해 준비태세를 갖춘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나는 시골에 위치한 한 작은 기숙사 고등학교엘 다녔었다. 아직도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 입에 회자되는 잊지못할 아찔한 그 날. 그 날은 고3 수능이 끝난 날이었다. 주변이 온통 논과 밭에 스트레스 풀 곳이라곤 작은 분식점이 전부였던 우리. 곧 고3이 될 것이라는 압박감이 우리의 온몸을 옥죄어왔던 날이었다. 분위기가 다소 무거운 교실에서 오후 자습을 하던 중 느닷없는 회장의 외침.
"우리 고기 뷔페 갈까?"
별뜻없이 내뱉은 소리었지만 너도나도 홀린 듯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고, 우리의 일탈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성사되었다. 차타고 40분 거리의 고기뷔페집. 25명의 반짝이는 눈빛에 힘을 얻은 회장은 고기뷔페에 전화를 걸어 25명 자리를 예약하고, 버스대절까지 부탁하며 우리의 아찔한 계획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기숙사 학교라 저녁에는 전교생이 함께 독서실에서 자습을 하는 시스템. 사감선생님께 외출계를 내어야만 저녁 자습을 빠질 수 있었는데, 회장은 사감선생님께 담임선생님 허락하에 학급회의를 해야 한다며 거짓말을 하고선 25명의 외출계를 써서 제출하고 승낙을 얻어냈다.
하교시간 후 저녁 급식이 이루어지고 있을 쯤, 이윽고 버스가 학교 뒷문으로 조용히 도착했고,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버스 위에 올랐다. 학교가 멀어지자 환호성을 터트리며 고기뷔페로 향했다. 고기 뷔페에서 신나게 고기를 먹으며 배채우고 뷔페 앞 마당에서 아이처럼 얼음땡 놀이도 하며 2시간을 보낸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아무일 없다는 듯 기숙사로 조용히 돌아와 그 날의 짜릿한 기분을 만끽하며 그렇게 평온한 그날 밤을 보냈다. 그 다음날 일은 꿈에도 모른채.... 다음날, 전날 우리의 모습을 수상히 여긴 옆 반 아이가 우리 반 한 아이를 통해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고, 그렇세 옆 반아이의 밀고로 담임 선생님 귀에도 흘러들어갔다.
우리는 그 소식을 접해듣곤 교실에서 얼어 붙은 채 초조히 아침 조회시간을 맞이했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교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잿빛이 되었다. 평소 온화한 모습과는 달리 입을 굳게 다문 채 들어오신 선생님은 우리에게 조용히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마치 사형선고를 앞둔 사람들처럼 선생님의 말을 묵묵히 기다렸다.
"얘들아 곧 고3이 다가오니 많이 힘들지?"
예상치 못한 그 말에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아무리 고기가 먹고 싶었어도 선생님에겐 말하고 갔어야지,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하지만 절대 이런 일을 벌여서는 안 된다. 사고나서 다치기라도 하면... 선생님은 상상도 하기 싫다."
선생님의 담담히 이어진 그 말에 교실 여기저기서 울음이 간간이 새어나왔고, 모두 한 마음으로 잘못했어요, 죄송해요라는 울음섞인 말이 봇물터지듯 터져나왔다. 선생님은 말없이 그런 우리를 응시하시더니 그날의 화학 수업을 이어나가셨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교장선생님께 불려가 주의를 받고 시말서까지 쓰셨다고 한다. 우리에겐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고선.
그 사건 후 고3이 되고 나서, 수능을 한달여 앞둔 시점엔 우리를 학교 앞마당에 부르시고선 손수 포장한 엿과 초콜렛 찹쌀떡을 한명씩 나눠주시며 수능 화이팅!이라고 외쳐주신 그 따스한 기억이 어슴푸레 남아있다.
교사가 된 지금의 내가 생각해보니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 그 순간에 '힘들지?'라는 말을 먼저하실 수 있었을까? 내 말을 잠자코 듣던 아이들도 그 말에 순간 표정들이 아련해졌다. 사고를 친 순간에 아이들을 원망하고 채찍질하시기보다 먼저 마음부터 물어주신 선생님이라니. 나는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중대한 상황 속에서? 속으로 조용히 생각해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하게 된다.
나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정말 따듯하신 분이다', '뭉클하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물론 그런 일을 벌여선 안되고 정말 큰 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도 주지시켰지만.
이야기 끝에 나는 기억에 남는 이유를 잘못을 먼저 묻기보다 마음을 알아주신 분이라고 얘기를 한다. 아이들은 내 말이 동의하듯 고개를 일제히 주억거린다. 내 이야기의 배턴을 이어 받아 1번 아이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제 4학년인 아이들은 자신을 가르친 1·2·3학년 때의 선생님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간다. 1번 아이는 3학년 때 자신이 왕따를 당했을 때 말 못하고 있던 중, 선생님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상담해주고 왕따시킨 아이들을 불러 얘기하며 남은 학교 생활을 가볍게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맑은 눈빛에 물기가 어린다.
그 다음 아이는 3학년 때 8자 줄넘기를 못했는데 선생님이 옆에서 계속 격려해주고 연습도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셔서 학기말엔 8자 줄넘기를 10개나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또 다른 아이는 1학년 때 선생님이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 그리고 2학년때 친구를 놀리고 기분나쁘게 했는데 그 때 자신의 잘못을 따끔히 혼내주셔서 다시는 잘못한 일을 반복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 선생님이 친절하고 따뜻하게 자신을 대해주셔서 좋았다는 이야기 등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을 위해 애쓴 선생님들의 노고를 떠올리며 가슴 속 숨겨둔 선생님에 대한 마음을 하나둘씩 꺼내놓았다.
그러던 중 우리 반에서 평소 글쓰기를 잘하는 한 아이의 발표,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참 감사한 것 같다고. 자신이 스스로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1·2·3학년 때 선생님이 계셔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고. 지나간 선생님이라고 잊어버리지 말고 그 선생님들께서 내게 해주신 노력을 떠올리며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 선생님들께서 주신 가르침을 잊지 않고 지금도 꾸준히 이어나가야 겠다고.
작은 속내애서 나온 깊이있는 그 말에 다른 아이들의 눈빛이 아련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하며, 여러분 앞의 선생님도 지금이 있기까지 이 선생님을 가르친 수많은 선생님들의 노고가 내 온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고. 그리고 함께 다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를 가르쳐 준 선생님의 이름정도는 기억하고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실현해보자고 말이다.
1교시를 세줄쓰기로 채우는 바람에 수학수업을 한 시간 뒤로 밀려났지만 그날의 수학 수업곱셈과 나눗셈보다 곱절이나 값진 순간이었다. 일순 교실의 공기가 감사함과 그를 표현하는 따스한 마음으로 포근해진 느낌이었다.
평소 잊고 지내던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스승의 날을 빌려 소환하며 친구들과 공유하고 그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떠올리는 이 시간. 나도 덕분에 잊고 있던 선생님들의 이름, 얼굴, 그리고 내가 받은 가르침들을 어제일처럼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더불어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며 기억에 남는 선생님에 대한 이유를 받아적으며, 나도 학년이 지나고서도 기억에 남을 선생님으로 남기 위해 순간순간 노력해야지 마음 속으로 나직이 다짐해본다. 그 어떤 것 보다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고 최소한 아이들이 가진 어려움 정도는 알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자라고.
수업을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진지했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왁자지껄 소리를 내며 보드게임을 꺼내고 저마다의 쉬는 시간을 가졌지만, 나는 그 한 시간의 여운에 취해 한동안 칠판에 적은 기억에 남는 선생님에 대한 이유를 말없이 응시하고 지난 선생님들도 머릿속에 하나 둘 소환해보며 여운을 달랬다.
아이들이 하교 후, 복도가 시끌해서 보니 지난해 제자들이 찾아왔다. 한 손에는 편지를 한 손에는 과자꾸러미를 들고서. 나를 잊은 줄 알았던 아이들이 내민 편지 속 글귀들.
"선생님, 2월에 헤어질 때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저 아직 배움노트랑 감사일기 열심히 쓰고 있어요."
"작년에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내내 말씀하신 거 잊지 않고 열심히 실천하고 있어요."
"4학년 때 최고로 행복했어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이 같은 학교라 다시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제가 자랐아요, 사랑해요."
그 말들에 식어있던 가슴이 다시 더워진다. 그 어떤 것보다 스승의 날 최고의 선물은 제자들로 부터 듣는 감사의 말이 아닐까? 지나간 선생님이라도 다시 찾아와 감사함을 표현하는 마음들. 내가 지난 1년간 지도했던 것들을 잊지않고 이어가주는 노력들.
그런 말을 듣고만 있어도, 웃으며 내가 보고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왔다. 내가 그랬듯 이 아이들도 앞으로 무수한 선생님들의 가르침으로 성장할 것이다. 스승의 날에 하나 작은 바램이 있다면 지난해 아이들, 올해 아이들 다른 건 몰라도 내 이름 석자를 떠올릴 때 '이 선생님 덕분에 배움노트와 감사일기를 잘 쓸 수 있게 되었어, 참 감사해'라는 마음을 떠올려주길 바래본다.
스승의 날은 불편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결코 불편하지 않다. 아이들의 감사가 듬뿍 담긴 말들과 손편지로 마음이 꽉꽉 채워진 날.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그런 날이었다.
모든 선생님들 스승의 날, 축하합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연재글에도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