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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강만길, 사진)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11빌딩에서 현판식을 갖고 정식출범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강만길, 사진)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11빌딩에서 현판식을 갖고 정식출범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꽃은 그 나름의 빛과 향기를 지닐 때 가장 아름답다>라는 글은 강만길이 1980년대 후반에 신문에 기고한 역사 에세이다. 고유한 우리 문화에 대해 서술하면서 '용광로 속에서도 녹지 않았던' 주체성을 살피고, '불어닥친 강풍'에 대처하는 방식, 민족문화 등을 이야기한다.

이 글에서 그는 민족분단으로 이질화되고 있는 우리 민족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이 왜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지 설파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적절한 명제가 있는 것처럼 세계 문화란 세계 모든 민족사회의 문화가 몇몇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문화 형태로 획일화되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계의 각 민족사회가 각기 그 문화적 특징을 가져야 하고, 그 다양한 문화적 특징들이 모여 하나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올바른 의미의 세계 문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꽃밭에다 비유하면, 세계 문화라는 꽃밭은 아무리 향기 높고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한 종류 한 빛깔의 꽃만으로 이루어진 단종단색의 꽃밭이 아니라 종류와 빛깔이 서로 다른 형형색색의 꽃들이 모여 이루어진 다양하면서도 조화로운 하나의 꽃밭을 말하는 것이다. 꽃들마다 독특한 제 빛깔과 제 향기를 가지고 있을 때 그 꽃들이 모여 이루어진 전체 꽃밭은 더욱 조화롭고 아름답고 향기로워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꽃이 가장 세계적인 꽃'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느 한 민족문화가 세계화·국제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제 문화의 개성이나 특징을 더 선명히 하고 잘 보전하는 일, 둘째 다른 민족문화의 소중함이나 존재가치를 제 민족문화의 그것만큼 인정하는 일, 셋째 다른 민족문화를 적대시하지 않고 그것들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하나의 세계 문화를 형성하려 노력하는 일 등이 중요하다.

제 민족이나 다른 민족이 가진 개성이나 특징을 '후진성'으로 간주하여 내버리고 '선진'이라 생각되는 남의 문화에 동화되어 세계 문화가 획일화되게 하는 길은 결코 아닌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민족으로 남아 있는 우리 민족의 경우 우리 문화의 세계화·국제화 추진도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지만, 한편 민족분단으로 이질화되고 있는 우리 문화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일이 그보다 더 시급하다. 정치·경제적 통합에 비해 문화적 동질성의 회복은 더 중요하면서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민족문화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민족공동체의 다른 한쪽에 대한 적대감이나 증오심을 버리고 친근감을 가지려 노력하는 일, 평화롭고 대등한 처지에서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는 일, 분단국가주의를 극복하고 민족분단으로 사실상 실종된 한반도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민족주의를 다시 회복하는 일 등일 것이다.

평화로운 통일을 앞당기는 일은 민족문화의 이질화를 막는 길이며, 동질성 회복한 우리 문화야말로 그 민족문화의 특징을 높여 획일이 아니라 각 민족문화들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세계 문화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우리 문화의 국제화라 할 것이다.

분단된 상황에서 국제화란 이름으로 우리 문화의 한쪽을 남의 '선진' 문화에 동화시키려 애쓰는 일은 다른 한편으로 민족문화 내부의 이질화를 촉진하는 일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민족문화의 올바른 세계화 및 국제화에 역행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분단되어 시시각각으로 이질화되어 가는 제 민족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하여 그 특색을 살리는 길이 옳은 의미의 세계 문화 형성에, 그리고 우리 문화의 국제화에 이바지하는 길임을 알아야 할 때이다. (주석 1)


주석
1> 강만길, <역사를 위하여>, 창비, 2018, 119~12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강만길평전#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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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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