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머문 아침의 길목, 작은 꿀벌이 날아들어 노란 꽃술에 안착한다. 부지런한 날갯짓과 바쁜 몸짓으로 꽃잎 사이를 오가며 꿀을 담는다. 꽃들은 아낌없이 내어주고 꿀벌은 감사의 춤을 춘다. 꿀벌이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며 윙-윙 노래하게 하는 주인공은 찔레꽃이다.
하얀 아카시아꽃이 피고 질 즈음해서 작고 소담한 하얀 꽃이 들녘을 수놓는다. 찔레꽃은 트랙터를 모는 농부의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모내기철에 핀다.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진한 향기를 맡고 벌들이 모여든다. 먼저 피고진 유채꽃, 아카시아꽃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반가운 손님이다.
아로마테라피를 연구하는 강릉원주대 김희석 박사는 "다른 꽃에는 벌들이 보이지 않는데 유독 찔레꽃에 벌들이 모이는 것은 찔레꽃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분이 있어서입니다"라며 "우리 옛 여인들은 찔레꽃 향기 성분만을 모아서 화장수로 즐겨 이용했을 정도로 신선한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예찬한다.
찔레꽃은 전국의 산과 들의 기슭과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좋은 자리는 다른 꽃에 양보하고 거칠고 험한 자리에 터를 잡는다. 찔레꽃은 홀로 있지 않고 무리지어 서 있다. 산과 들녘에 하얀색 작은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는 게 보이면 거의 찔레꽃이라고 보면 된다.
찔레꽃은 작고 수수하지만 향이 강렬하고 짙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꽃이다. 하얀 꽃 한가운데 노란 수술이 벌을 유혹하는 데 한몫을 한다.
찔레 잎은 깃털 모양을 하고 표면은 윤기가 난다. 가지에 달린 작은 잎은 서로 어긋난다. 잎은 타원형으로 양 끝이 좁고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다. 크게는 자라지 않고 사람 키 정도 자란다. 가지에는 예리한 가시가 있다. '찔레' 라는 이름도 가시가 있어서 만지면 찔리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보릿고개 시절 찔레 순은 허기를 달래주기도 했다. 꽃이 피지 않는 곁가지의 순을 잘라 껍질을 벗기고 오독오독 씹으면, 쌉쌀하면서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군것질에는 이만한 식재료가 없었다.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굣길에서 고개를 내민 순을 가시에 찔리면서 잘라먹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이런 추억의 꽃이 사라져 가는 꿀벌을 소환하고 있다. 5월 20일은 벌의 날이다. 성가시고 하찮게 보아온 찔레꽃에 벌들이 모여들고 있다. 꽃은 벌에게, 벌은 꽃에게, 서로에게서 삶을 얻고, 희망을 심어가는 이 작은 이야기가 온 들녘에 퍼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