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2시 속개된 전 해병대수사단장 박정훈 대령 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대통령실 관계자와의 통화 여부를 묻는 박 대령 측 변호인의 질문에 관련 사안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다면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박정훈 대령은 지난해 8월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해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다 빼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제목을 빼라"는 내용의 전화를 유 관리관으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유 관리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한 채 상병 사건 조사기록을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하는 과정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 관리관은 지난해 8월 이시원 당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총 26번 통화했으며, 특히 이른바 'VIP 격노설'이 언론 보도로 흘러나온 시점에 두 사람 사이의 통화가 집중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날 공판에서 유 관리관은 박 대령 측 변호인단이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의 통화, 경북경찰청 관계자와의 통화기록 등을 근거로 어떠한 내용으로 통화했느냐고 묻자 '공수처에 피의자로 입건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면서 관련 진술을 모두 거부했다.
유 관리관은 "대통령실의 개입으로 임성근 사단장이 혐의자에서 빠진 것 아니냐", "대통령실과 소통이 있었냐" 등 질문에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이라며 답변을 거부했으며,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과 여러 차례 통화한 것에 대해서도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유 관리관은 핵심 쟁점 사항에 대해서는 대부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 관리관은 정종범 전 해병대 부사령관(현재 해병 2사단장)이 지난해 7월 31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주재한 회의에 참석해 메모한 내용에 대해서도 자신이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날은 이종섭 장관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을 통해 당초 예정되었던 해병대 수사단의 국회·언론 브리핑 취소 및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한 날이다. 당일 오후 이 장관은 유재은 관리관과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박진희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등이 참석한 회의에 정 전 사령관을 불렀고, 정 전 사령관은 자신의 업무수첩에 10가지 지시사항을 메모했다.
'최종 정리는 법무에서 해야 한다', '누구누구 수사 언동하면 안된다', '경찰에 필요한 수사자료만 주면 됨', '사람에 대해서 조치 혐의는 안됨', '없는 권한 행사'란 등의 내용이었다. 특히 '누구누구 수사 언동하면 안된다'는 의미에 대해 박정훈 대령 측은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을 혐의자 명단에서 빼라는 지시로 해석했다.
정 부사령관은 지난해 8월 4일 군검찰 최초 진술에선 메모 내용에 대해 "(이종섭) 장관 지시로 적은 내용"이라고 했다가,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8일에는 재차 군검찰에 나가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지시였다"고 말을 바꿨다.
그런데 박정훈 대령 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그런 발언을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유 관리관은 어투로 볼 때 자신이 말한 내용은 아니라면서 "제가 (정 전 부사령관에게) 설명을 하면 (이종섭) 장관이 중간중간에 끼어들었다. (정 전 부사령관의 메모는) 그 설명에 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진했다.
그는 또 "여러 가지 이첩 방법이 있다고 이종섭 장관과 정종섭 부사령관에게 설명했을 뿐 단정적인 말투로 말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공판에서 박정훈 대령이 변호인을 통해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자신과의 네 번째 통화에서 일성으로 '이러시면 안 된다. (혐의자명, 혐의내용) 다 빼시라고 했잖은가'라고 말했다고 폭로했지만, 유 관리관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박정훈 대령 측이 요청한 이종섭 전 장관 증인 채택, 이 전 장관과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의 통신기록 열람 등을 받아들였다.
군사법원의 증인채택 방침이 알려진 후 이종섭 전 장관은 변호인을 통해 "절차에 따라 증인으로 채택된 이상, 지정된 기일에 출석해 증언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의 법률대리인 김재훈 변호사는 다만 이 전 장관의 지시엔 위법 소지가 없으며, 대통령실 그 누구로부터도 '특정인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의견을 전달받은 사실은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박 전 단장 측은 장관의 이첩보류 지시 배경에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다는 취지로 꾸준히 주장하고 있으나, 그러한 사실 또한 없다"면서 "이첩보류 지시 등은 오로지 장관의 고민과 판단에 따라 이뤄진 장관의 결정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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