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오월, 병원 뜨락에 살랑이는 연초록 나뭇잎이 갓돌을 맞은 앙증맞은 아가처럼 귀엽다. 사랑스럽다. 두어 해 전만 해도 그 뜨락에 나가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함께 들었던 오희옥 애국지사, 그러나 장기간 입원으로 기력이 쇠진해져 지난해에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 로비 등지에서 면회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병실 밖 출입이 어려워 침상에 누워계신 상태로 17일 오후 2시에 뵙고 왔다. 올해 98세, 강인한 정신력이 아니면 건강한 몸이라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다.
이번 병문안은 지난해 7월 30일에 뵙고 올해 들어 처음이니 무려 10개월여만이다. 평균 1~2개월에 한 번은 꼭 찾아뵈었는데 이렇게 길어진 것은 그동안 오희옥 지사의 건강 상태에 변동이 있어서였다. 거기다가 코로나19가 여전히 남아있어 병실 면회의 제한이 따르는 등 뵙고 싶어도 뵐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대신 오희옥 지사의 병상을 지키는 아드님 김흥태 선생과 자주 연락하면서 병문안의 기회를 엿보다가 어제 찾아뵈니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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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희옥 지사가 나오는 동영상을 아드님이 보여 드리자, 동영상 시청에 열심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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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0일, 98세 생일 케이크와 왕관을 병실 간호사들이 정성껏 차려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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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진 듯하던 오희옥 지사는 이름을 부르며 기자가 왔다고 귀에 속삭이자, 기자 손을 꼭 잡으면서 눈을 떠 나를 알아봐 주었다. 순간, 안도감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람의 수명이 한 없이 유지되는 것이 아닌지라, 언제나 병문안하고 다녀가는 날에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지만 이내 또 가슴을 졸이게 된다.
"어머니께서 평소에도 자주 말씀하셨듯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가족(오희옥 지사 가족은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으로 아버지 오광선 장군 등 모두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다)들과 함께 안장되실 수 있도록 국가보훈부에 요청한 바 있고, 국가보훈부에서도 다각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 말은 오희옥 지사의 아드님 김흥태 선생의 말이다. 만주벌을 호령하던 아버지와 오랫동안 헤어져 살아야 했던 오희옥 지사께서 사후에 아버지와 어머니 곁에 영면하실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오희옥 지사는 2018년 3월 쓰러져 올해로 6년째 서울중앙보훈병원에서 투병 중이다. 병실을 나오며 곧 또 찾아뵙겠다고 하자 쥔 손을 더욱 꼭 잡으시던 오희옥 지사님! 다음 병문안 때까지 평온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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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뜰에 나와 기자가 만들어 준 꽃반지도 끼고 예쁜 꽃도 머리에 꽂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모습, 오희옥 지사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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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는 누구?
오희옥 지사는 할아버지 때부터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일가'에서 태어나 1939년 4월 중국 유주에서 결성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第5支隊)에서 광복군으로 활약했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당원으로 활동하였다(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오희옥 지사 집안은 명포수 출신인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1867~1935), 중국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아버지 오광선 장군(1896~1967), 만주에서 독립군을 도우며 비밀 연락 임무 맡았던 어머니 정현숙(1900~1992), 광복군 출신 언니 오희영(1924~1969)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령(參領)을 지낸 형부 신송식(1914~1973) 등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